5년마다 왕을 뽑고 처형하는 나라
왕은 위엄, 행정부는 효율 英, 신뢰 바탕 서로 견제 왕조 흔적 남은 韓대통령제 文의 축제도 끝나가는데...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어린 시절 헌법을 공부한다. 선생은 “왕은 위엄, 행정부는 효율”이라며 두 권력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둘 사이의 ‘신뢰(trust)’를 강조한다. 미래의 여왕에게 각인된 ‘신뢰’는 향후 처칠, 대처 등 쟁쟁한 총리들과의 관계에서 철칙이 된다. 건강 문제를 숨긴 노회한 처칠에게 젊은 여왕은 “총리는 신뢰를 훼손했다. 국가 안보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했다. 천하의 처칠은 52세나 어린 여왕에게 고개를 숙였고, 둘 사이의 ‘신뢰’는 평생을 간다. 권력은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입헌군주제’에서 왕과 총리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쪽의 독주를 막는다.
현대화된 국가들에서 왕조는 근대화 과정에서 국민에 의해 축출됐다. 그것도 단두대와 총으로 상징되는 처참한 방법이 동원됐다. 이렇게 왕조를 몰아낸 국민은 왕조에 대한 기억은 있어도 미련이나 환상은 없다. 비극의 끝을 봤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 왕조는 국민이 아닌 일제(日帝)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 어느 날 ‘증발’했다. 그래서 국민 마음속에 고종이나 명성황후에 대한 환상이 있다. 부패와 무능으로 국민과 나라를 통째로 버린 구체제 대신 비운의 드라마만 남았다.
이런 기억의 공백 속에 1948년 대통령제가 도입됐다. 한국 대통령은 왕의 ‘위엄’과 행정부 수반의 ‘효율’이 제도적·정서적으로 결합한 기묘한 산물이다. 5년마다 선거를 통해 선출하지만 우리 마음속의 대통령에겐 왕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얼마 전 정세균 총리가 백신 문제를 추궁하며 대통령을 비판한 야당 의원에게 “국가원수에 대한 예의를 지켜달라”고 말한 것도 이런 흔적이다. 정부의 ‘능력’을 물었더니 엉뚱하게 ‘위엄’으로 답변한다. 무슨 연례행사가 된 대통령 기자회견 때마다 “예의가 없다”는 논란이 재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회에서 얼굴을 맞대고 총리를 공격하는 영국 국회의원, 출퇴근길에 총리를 붙들고 사생활까지 물어보는 일본 기자들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한국 대통령에게 왕의 그림자가 있는 것은 국민 정서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처럼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나라가 없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7국 중 이원집정제가 아닌 대통령제를 택한 국가는 미국과 멕시코, 칠레, 한국 정도다. 미국 예를 들지만, 미국은 한국처럼 인사, 예산, 감사 뭐 하나 대통령 마음대로 못 한다. 미국 대통령 권한이 절대적으로 보이는 것은 대통령제라서가 아니라 미국 국력 때문이다. 미국 의회는 한국처럼 대통령의 거수기가 아니다. 한국 대통령은 왕에 버금가는 권력이다.
왕은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신(神)에 의해 권위가 부여되고 계승된다. 그러나 한국은 5년마다 대통령이라 불리는 왕을 뽑고 축제를 즐기다 처형한다. 수십 년째 “누굴 찍은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고 한다. 그러고도 아직 손가락이 남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쳤다. 문재인 대통령도 축제가 끝나가고 있다. 내년, 아니 당장 올해 4월부터 선거라는 이름의 내전(內戰)과 왕위 쟁탈전이 기다린다. 지면 처형되고 이기면 축제가 이어지니 어찌 목숨을 걸지 않겠나.
한국의 대통령제는 벼랑 끝에 섰다. 협치라도 해야 하는데 매번 실패다. 권력분산형 개헌을 해야 하는데, 대선 주자나 국민은 다음 대선만 생각한다. 밤새 내린 눈으로 빙판길이 됐는데 눈 치우겠다는 사람은 없고 차들만 전속력으로 내달린다.
글 / 조선일보 칼럼 / 정우상 정치부장
Lesiem / Justi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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