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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프리미엄][수요동물원] 인간의 폭력에 하늘의 별로 사라진 매혹적인 맹수들

[프리미엄][수요동물원] 인간의 폭력에 하늘의 별로 사라진 매혹적인 맹수들

최근 미국서 딱다구리 멸종, 사우디서 표범 복원 발표
바바리사자·카스피호랑이·콰가얼룩말 등 금세기 사라져
매혹적인 외모 하고 있지만 인간의 남획에 절멸

정지섭 기자

입력 2021.10.05 00:00

 

 

 

 

얼마 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멸종 위기 동물과 관련한 엇갈린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우선 미국에 사는 딱다구리류중에서 큰 덩치와 아름다운 생김새로 이름났던 상아부리딱다구리가 공식 멸종 선고를 받았습니다. 미 어류·야생동물보호국은 이 새를 포함한 23종에 멸종위기종 해제를 최근 권고했습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200마리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 아라비아 표범 복원 소식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프린스 사우드 알 파이잘 야생연구센터에서 지난 4월 태어난 암컷 표범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최근 절멸되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은 거의 100%가 인간 때문에 숫자가 급감한 경우입니다. 이런 소식이 들려오면 인류의 한 사람으로써 죄책감을 느끼게 될 수 밖에 없지요. 이제는 박제나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동물이기에 사라져간 지구상의 동물들의 생김새는 유독 아름답고 화려하게 느껴집니다. 오늘은 사람의 손아귀에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 세 종의 전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가장 크고 아름다웠던 바바리 사자

백수의 왕이자 동물의 왕국 단골 주연인 사자는 지금은 딱 두 종류만 있습니다. 동·남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무리를 지어사는, 가장 잘 알려진 사자인 아프리카 사자. 그리고 인도 구자라트 주의 기르 숲에서 인도 정부의 세심한 보호를 받으며 극소수가 살아가고 있는, 상대적으로 왜소한 덩치의 인도 사자가 있지요. 하지만 지금부터 1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북아프리카 일대를 호령하고 다니던 우아하고 멋진 생김새의 바바리 사자가 있었습니다. 바바리(Barbary)는 튀니지·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지역을 일컫는 말입니다. 사실 이집트·모로코·튀니지·리비아·모리타니 등의 나라가 포진해있는 북아프리카는 주민들의 인종이나 자연환경, 인문지리환경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험준한 산맥도 있고, 황량한 사막도 있습니다. 이곳을 호령하고 다녔던 바바리 사자는,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웠던 그 사자로도 알려져있습니다.

미국 몬타나주의 한 야생공원에서 사육중인 수사자가 갈기를 휘날리며 질주하는 모습이 마치 '라이온킹'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유달리 덥수룩한 갈기와 큰 몸집을 보이는 이 사자는 과거 북아프리카를 호령하던 바바리사자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Alamy

거칠고 추운 곳에서도 생존하도록 적응한 것일까요? 바바리 사자는 몸집면에서도 기존 아프리카 사자를 압도했고 갈기도 훨씬 진하면서 덥수룩했습니다. 이런 위풍당당한 사자의 적은 바로 인간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인들에 이어 아랍계 왕조, 그리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유럽 식민세력들이 이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들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근사한 사냥감이었고, 농사와 목축을 방해하는 훼방꾼이었던 것이죠. 1922년 프랑스 식민세력 사냥꾼에 의해 모로코에서 포획된 것이 최후의 야생 바바리 사자로 알려져있습니다. 이후에도 알제리와 모로코 등의 험지에서 사람의 눈을 찾아 극소수의 야생 개체가 생존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만 극히 일부 개체는 야생이 아닌 외국의 동물원에서 명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얼굴을 넘어 배까지 덮은 덥수룩한 갈기를 가진 사자들이 일부 동물원에서 길러지고 있는데, 이들이 바로 바바리 사자의 후손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야생 절멸전에 유럽으로 건너간 개체의 후손들로 추정되고 있죠. 위풍당당한 모습, 식민세력에 의한 남획, 생존에 대한 기대감…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흐르는 ‘한국 호랑이’ 서사와 놀랍도록 비슷하지 않나요.

◇전설이 된 카스피 호랑이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지방에도 흐릅니다. 그것도 호랑이가 주인공입니다. 1950~60년대를 기해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진 카스피호랑이입니다. 혹자는 또한 페르시아호랑이라고도 하죠. 호랑이는 지역에 따라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 또는 한국호랑이)·아모이호랑이·벵갈호랑이·수마트라호랑이 등의 종류가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시베리아호랑이 또는 아무르호랑이라고도 불리는 한국호랑이가 이 중 가장 몸집이 크고 털빛깔도 아름답다’고 교과서적으로 인식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다소 낯선 이름인 카스피호랑이는 터키와 이란,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국경 일대까지 서식했던 호랑이입니다. 그런데 당당한 풍채와 융단 같은 털빛깔은 아무르호랑이에 못지 않았다고 해요.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일대에 서식했지만 금세기 멸종된 페르시아호랑이의 모습을 그린 삽화. 아무르호랑이(한국호랑이) 못지 않은 위풍당당한 몸집과 아름다운 털가죽을 가지고 있었다. WWF/Helmut Diller/WWF

그래서 주요 서식지역은 매우 떨어져있지만 아무르호랑이와 카스피호랑이는 사실상 한 개의 종이었을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분석과 추정도 나왔습니다. 페르시아·오스만튀르크·몽골 등 대제국들의 역사와 함께 해온 이 호랑이 역시 제국의 지배자들에게는 용맹과 승리의 아이콘이었겠죠. 털가죽을 노린 인간에 의해 꾸준히 포획돼왔지만, 날벼락을 맞은 것은 20세기 들어서입니다. 중앙아시아를 편입한 소련이 농작지 개간 등의 목적으로 대대적인 사냥에 나서면서 숫자가 급감했습니다. 이란 등에서 뒤늦게 멸종위기종 보호조치를 취했지만 이미 때는 한참 늦었고 결국 2003년에 공식 멸종이 선언됩니다. 카스피호랑이의 주서식지 중 한 곳이 아프가니스탄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고양잇과 4대 맹수인 사자·호랑이·표범·치타가 모두 포효하던 곳이었죠. 그러나 이제는 사람도 제대로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됐습니다. 사람과 짐승의 신산한 삶이 씁쓸합니다.

◇전설이 된 얼룩말, 콰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초식동물인 얼룩말은 몇가지 종류가 있는데 대개 줄무늬로 쉽게 구분됩니다. 유달리 촘촘한 흑백무늬에 큼지막한 몸집을 한 그레비얼룩말, 상대적으로 무늬의 간격이 넓은 그랜트얼룩말, 사바나얼룩말, 산얼룩말 등이죠. 그런데 얼룩무늬가 몸의 앞쪽 부분만 있고, 나머지 부분은 말이나 당나귀처럼 갈색을 한 희한한 종류의 얼룩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콰가’입니다. 마치 무늬만으로보면 얼룩말과 말의 절반씩을 닮은듯한 이 전설의 얼룩말은 남아프리카 일대에만 서식했는데 역시 19세기에 유럽 정착민들이 고기와 털가죽을 노리고 무분별하게 살육했습니다. 188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동물원에 있던 암컷 콰가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이 독특하고 매혹적인 무늬를 가진 얼룩말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사람들은 깨달았다고 합니다.

19세기 멸종된 콰가의 박제가 박물관에 전시돼있다. 남아프리카에 살던 콰가는 몸의 절반만 얼룩무늬가 있는 독특한 외모를 가졌다. /Quagga Project

1987년부터 현지에서 진행중인 콰가 복원사업을 통해 과거 콰가와 비슷한 무늬를 가진 얼룩말이 태어나고 있다. 다만 이 작업을 성공적 복원으로 평가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Quagga Project

관심을 끄는 것은 30년 넘게 진행중인 복원작업이 현재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는 중이란 것이죠. 1987년부터 남아공에서는 콰가를 복원시키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중입니다.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남아프리카 평원의 얼룩말들을 선별적으로 교배 중인데, 예전의 콰가와도 엇비슷한 반 얼룩무늬의 말들도 태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일부 외신들은 ‘콰가가 100년만에 돌아왔다’고 제목을 뽑아 보도하고 있기도 하고요. 다만 유전자상 완전한 복원으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단시간 내에 한 종을 절멸시킨 인간의 이기심과 잔혹성까지 용서받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수요 동물원#디스커버리

 

 

정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