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인의 유전자, 코로나 사망 위험 두 배 높인다
[사이언스카페] 폐 상피세포의 바이러스 차단 기능 무력화
입력 2021.11.07 11:30
유엔개발계획(UNDP)은 코로나 피해를 크게 입은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네팔에서 긴급 식량 지원에 나섰다. 사진은 방글라데시에서 이뤄진 UNDP 원조 모습./UNDP
남아시아인들은 코로나 중증과 사망 위험을 두 배나 높이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영국에서 인도나 방글라데시 출신이 유럽계보다 코로나 사망 위험이 최대 4배나 높았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제임스 데이비스 교수 연구진은 지난 4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유전학’에 “남아시아인들은 코로나 감염 후 호흡기 기능 손상과 사망 위험을 두 배 높이는 유전자를 60%가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반면 유럽계 백인들은 해당 유전자를 15%만 갖고 있었다. 아프리카-카리브해 출신자들은 약 2%만 코로나 위험 유전자가 확인됐다. 동아시아계도 1.8%에서만 이 유전자가 나타났다.
◇폐 상피세포의 바이러스 방어 무력화
연구진이 코로나 환자 수만명의 유전자 해독 정보에서 찾아낸 코로나 위험 유전자는 LZTFL1이다. 이 유전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폐의 상피세포에 침투하는 것을 차단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곳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폐세포의 바이러스 차단 기능이 무뎌지면서 오랫동안 코로나 바이러스가 폐세포에 손상을 줄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영국의 남아시아계에서 코로나 사망자가 많고 인도에서 코로나 피해가 심각한 것을 설명한다고 밝혔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9~11월 영국의 2차 코로나 대유행 당시 방글라데시 출신들은 코로나 사망 위험이 평균보다 3~4배 높았다. 파키스탄계는 코로나 사망 위험이 2.5~3배, 인도계는 1.5~2배 높게 나와 남아시아계가 전반적으로 코로나 고위험군이었다.
데이비스 교수는 “인간 유전자를 바꿀 수 없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고위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백신 접종의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보여준다”며 “코로나 위험 유전자는 면역체계가 아니라 폐에 작용하므로 백신으로 면역력을 높이면 코로나 중증과 사망 위험을 차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호흡기 세포에 감염된 코로나 바이러스(노란색)의 전자현미경 사진./NIH
◇폐 세포에 작용하는 치료제도 가능
또 이번 결과는 코로나 위험 유전자를 공략하는 새로운 치료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코로나 치료는 대부분 바이러스에 반응하는 면역체계에 집중됐는데 이번 결과를 이용하면 폐세포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방식의 치료방법도 가능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번 결과는 추가 연구를 통해 확증해야 하며 소수 민족 집단의 코로나 위험을 높이는 사회경제적 요인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옥스퍼드대의 나즈룰 이슬람 교수는 가디언지 인터뷰에서 “LZTHL1 유전자 비율을 판단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 일부 민족 집단은 수가 너무 적다”며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번 결과는 정책결정자가 ‘모든 게 유전자 때문이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할 핑계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1997년 이후 줄곧 과학 분야만 취재하고, 국내 유일 과학기자 기명칼럼인 ‘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에서 자연과 역사, 문화를 과학으로 풀어내길 좋아하는 이야기꾼, 이영완 과학전문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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