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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문물

가짜 학살 영상까지...“적을 헷갈리게 하라” 푸틴의 기만 술책 역사

가짜 학살 영상까지...“적을 헷갈리게 하라” 푸틴의 기만 술책 역사

러시아 군의 독트린 ‘마스키로브카( masking)’
특수부대원 투입해놓고 “우리군 아니다”
미사일 유도 위해 가짜 풍선 탱크 배치
”인도적 지원 트럭”이라더니 전투지원용

입력 2022.02.04 15:45
 
 
 
 
 

3일 미 국무부는 “러시아가 러시아 영토나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마치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인들과 러시아어를 쓰는 우크라이나인들을 학살하는 듯한 동영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동부는 2014년 친(親)러 분리주의자 반군 세력이 장악한 이래 러시아군이 직접 들어가 군사 지원을 하는 곳이다.

미 국무부는 “러시아 정보당국이 밀접하게 관여한 이 비디오 제작에는 우크라이나산(産)‧나토(NATO)군 무기를 사용하는 장면, 유혈이 낭자한 파괴 현장에서 배우들이 유족인 양 우는 모습이 포함돼 있다”고 발표했다.

미 국무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런 조작된 동영상을 퍼뜨리고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구실로 삼을 것으로 보고, 사전에 이런 첩보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 정보당국은 최근 친러 쿠데타나 기간산업 파괴 행위 등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부에 혼란을 초래하려고 배후에서 조종해 온 움직임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정보의 입수 과정에 대해선 “정보원 보호”를 들어 공개하지 않았다.

◇마스키로브카(maskirovka): 상대를 끝없이 헷갈리게 하라

전쟁에 앞서, 또 전쟁 중에 러시아는 다양한 형태로 기만((欺瞞)과 왜곡정보 퍼뜨리기‧위장 전술을 벌인다. 부인(否認)과 속임수, 위장, 내부 교란 작전 등을 통해 상대를 속이고 결코 아무 것도 시인하지 않는 ‘마스키로브카(masking‧위장)’는 러시아군의 전형적인 독트린이다.

푸틴과 최고위 러시아 관료들은 지금도 “전쟁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 “러시아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유럽 대륙 전체의 안보가 위험해진다”는 등 상충되는 발언을 쏟아낸다. 이미 우크라이나 국경 3면에 13만 명의 중무장 병력을 밀집해 놓고도, 푸틴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미국과 나토가 계속 추측하게 하는 것이다.

◇ 푸틴, 정예 특수부대 보내고도 “러시아군 아니다” 우겨

2014년 2월말 아무 휘장도 없는 녹색 군복 차림에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군인들과 수백 대의 러시아 탱크‧장갑차량이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에 들이닥쳤다. 곧이어 얄타와 세바스토폴 등 주요 도시를 점령했다.

그린맨인가, 러시아 침략군인가. 서방 언론은 2014년 2월말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침공한 이 휘장 없는 녹색 군복의 무장군인들을 '그린맨'이라고 불렀다./BBC 웹사이트

러시아 외무장관과 유엔 대사는 러시아 무기를 휴대한 이들이 러시아군이 아니라고 우겼다. 푸틴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군복과 비슷한 것은 가게서도 살 수 있다. 러시아군이 아니다”라고 거짓말했다. 서방 언론은 이들을 ‘그린맨(green men)’이라고 불렀다. 푸틴은 나중에 침공이 완료된 뒤, 2015년 3월 “내가 러시아 특수부대(스페츠나츠)들의 동원을 지시했다”고 시인했다.

이 ‘그린맨’들은 그해 8월 말에는 러시아어 인구가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3000~4000명 대거 출현해, 분리주의자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맞서 싸웠다. 그린맨들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포로로 잡히자, 러시아 정부는 “휴가 중인 러시아 군인들이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기 보다, 친러 분리주의자들을 도우려고 전투에 자원했다”고 둘러댔다.

 

◇텅 빈 군트럭을 ‘인도적 지원물품’ 수송 차량이라고 속여

같은 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동부가 맞닿는 국경 초소엔 러시아어로 ‘인도적 지원’이라고 쓰인 흰색 페인트 트럭 260대가 도착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 세력 간 교전으로 참상이 벌어진 이 지역의 주민들을 돕기 위한 2000여 톤의 식량과 설탕, 유아용 음식, 침낭, 발전기 등이라고 밝혔다.

2014년 8월 인도적 식량과 물품 2000톤을 실었다는 러시아의 흰색 트럭들이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에 도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의 본격적인 반군 지원으로 보고 이를 막았다. 이 트럭들은 나중에 대부분 텅 빈 것으로 밝혀졌다./EPA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이 트럭들을 반군 세력에게 제공하고 러시아군을 동원해 ‘직접 침공’하는 것으로 의심했고, “정말 인도적 물품이라면, 모두 우크라이나 정부가 제공하는 차량에 옮겨 실으라”며 러시아 트럭의 국경 통과를 거부했다. 옥신각신 끝에 러시아 트럭들은 되돌아갔다. 나중에 이들 트럭의 대부분은 비었고, 반군을 지원하려고 했던 것임이 드러났다.

◇ 1983년 레바논 내전 개입 때는 ‘관광객 동무’들 투입

1983년 러시아는 친러 정권인 시리아가 깊숙이 개입된 레바논 내전에 수천 명의 러시아군을 파병하기로 했다. 러시아 군인들은 모두 머리와 수염을 기르도록 지시 받았고, 가벼운 정장 차림으로 크루즈선에 올랐다. 이들은 서로 ‘관광객 동무’라고 불렀다.

1983년 크루즈선을 타고 가 레바논 내전에 투입된 러시아의 특수부대 '관광객 동무'들. 이들의 존재는 생존한 '관광객 동무'들이 러시아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면서 드러났다. /러시아 특수부대원 출신 발레리 S 아니시모프

이들에 대한 기록은 러시아 정부 내에서도 사라졌지만, 생존한 ‘관광객 동무’들이 러시아 정부에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면서 존재가 드러났다.

◇공기를 불어넣어 만드는 가짜 탱크‧미사일‧전투기

공기를 주입해 단시간에 탱크와 전투기 형태를 만드는 더미(dummy) 무기들도 러시아군이 즐겨 쓰는 ‘마스키로브카(masking)’ 수법이다. 정찰위성이나 정찰기가 공중에서 볼 때에 실물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공기를 주입해 만드는 러시아의 S-300 방공미사일시스템과 미그31 전투기 더미(dummy)/Rusbal사

물론 2차 대전 당시 미군도 이런 팽창 모형물을 사용했고, 일본군도 대나무로 만든 전투기와 탱크 모형을 세웠다. 현재도 각국은 적이 값비싼 미사일을 소진하도록 정교한 실물 모형의 디코이(decoy)들을 제작하고 있다.

 

◇2016년 스웨덴에서 ‘나토 가입’ 논의가 일자…

2016년 중립국 스웨덴 사회가 나토 가입 여부를 놓고 토론을 벌이자, 갑자기 왜곡 정보들이 소셜미디어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웨덴이 나토 가입하면, 나토동맹군은 스웨덴에 핵무기를 쌓아놓을 것이다” “정부도 모르게, 스웨덴 땅에서 나토가 러시아를 공격할 것이다” “면책 특권을 가진 나토 군인들이 스웨덴 여성들을 강간할 것이다”…. 모두 가짜 정보였지만, 소셜미디어에서 시작한 이런 루머는 곧 전통적인 뉴스매체로 옮겨갔다. 누가 이 루머의 배후에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서방 정보당국은 러시아를 지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