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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서로 무슨 원한 졌다고 정권 출범 석 달 만에 이 파국을 자초하나

[사설] 서로 무슨 원한 졌다고 정권 출범 석 달 만에 이 파국을 자초하나

조선일보
입력 2022.08.27 03:26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를 마치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황정수)는 이날 이준석 전 대표가 당 비대위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낸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주 위원장의 직무 집행을 본안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정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이덕훈 기자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이준석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법원이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직무를 본안 판결까지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지난 16일 출범한 주호영 비대위가 불과 열흘 만에 좌초하면서 국민의힘은 혼돈에 빠졌다. 작년 이후 전국 선거를 세 번 연달아 이겨 정권을 창출한 집권 여당이 새 정부 출범 넉 달도 안 돼 집안싸움으로 지도부 실종 사태를 맞았다. 세계 정당사에 유례가 없을 기이한 일이다.

법원은 국민의힘이 이준석 대표를 몰아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비상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았고 이는 정당의 민주적 내부 질서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정당 내부 문제에 이처럼 세부적 잣대로 제동을 건 것은 흔치 않다. 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준석 대표를 밀어내고 비대위로 전환하는 과정이 무리하게 비친 것은 사실이다. 이 대표 관련 의혹에 대한 수사기관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징계를 밀어붙인 것부터 순리라고 할 수 없었다.

이번 사태를 보면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국 선거에서 연전연승한 정당이 여세를 몰아 국정 운영과 개혁에 나서기는커녕 매일 유치한 감정싸움을 벌였다.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 이 대표를 ‘내부 총질’로 비판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문자 메시지가 유출되는 일도 생겼다. 결국 집안싸움을 법정으로 끌고 갔고 이 사태를 만들었다.

 

이 정권에선 절제와 자제, 인내라는 덕목을 찾아볼 수 없다. 이 대표는 어차피 임기가 정해져 있고 물러나게 돼 있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문제인데 그걸 기다리지 못한다. 권력은 마구 휘두르면 동티가 난다. 이 대표는 한때 청년 정치의 희망이었지만 매사에 절제하고 자제하는 법이 없다. 최근엔 대통령을 향해 연일 막말을 퍼붓고 있다.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기관차 같다.

여권이 합심해 국정을 개혁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국민들로선 어이없는 일이다. 국민의 실망을 넘어서 이 정부가 여당 지도부의 진공 상태를 안고 어떻게 경제 안보 위기를 헤쳐갈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권의 특징 중 하나는 정치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는 이런 상황의 최대 피해자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치적 노력도 하지 않는다. 무슨 큰 원한이 있다고 정권 출범 석 달 만에 이런 파국을 자초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