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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쏟아지는 尹대통령 홍보... 오바마 사진가에 답이 있다

비판 쏟아지는 尹대통령 홍보... 오바마 사진가에 답이 있다

[아무튼, 주말]
오바마 대통령실 홍보라인은
어떻게 국민들을 감동시켰나

입력 2022.08.27 03:00
 
 
 
 
 
2012년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을 덮쳤을 때, 현장을 찾은 오바마 대통령이 피해 주민 할머니를 감싸 안고 있다. / 피트 수자

2012년 10월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동부 지역을 강타했다. 220명 이상이 사망했고, 수만 명이 집을 잃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가 뉴저지주 피해 현장에서 이재민 할머니를 꼭 끌어안고 있는 사진 한 장이 전 세계로 전파됐다.

강렬한 사진 한 장이 때론 열마디 설명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재난 현장에서 포착한 이 사진은 오바마 대통령의 발 빠른 위기 대응 능력과 리더십, 인간적인 매력까지 보여준다. 허리케인 샌디가 오바마의 정권 재창출을 결정적으로 도왔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사진을 찍은 이는 오바마 대통령 전속 사진사였던 피트 수자. 2020년 뉴욕타임스는 그에 대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람직한 대통령상을 그려낸 작가”라고 평했다.

취임 100일. 많은 이들이 “윤석열 정부는 왜 이렇게 홍보를 못하느냐”는 비판을 쏟아낸다. 오죽하면 “홍보라인이 안티”라는 말까지 나온다. 오바마와 대통령실 참모들이 일하는 사진이 감동을 주는 이유, 윤석열 대통령실 사진들이 그렇지 못한 이유를 들여다봤다.

◇“카메라로 역사를 기록한다”

피트 수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모든 스케줄과 일상을 함께했다. 처음 전속 사진사 직책을 제안받았을 때 그가 내민 조건이 ‘완벽한 접근권’. 대통령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가까이에서 촬영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했고, 오바마는 흔쾌히 조건을 받아들였다. 민감한 국가안보회의, 촌각을 다투는 현장, 온갖 브리핑 장소에 그가 있었다. 그의 사진을 주제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내가 보는 방식(The way I see it)’에서 수자는 “대통령 사진사는 홍보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카메라로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통령 임기를 역사에 기록하고 싶으면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매일 24시간 쉬지 않고 준비돼 있어야 한다. 언제 이미지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으니까.”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 당시의 상황실. 중앙에 앉은 마셜 브래드 웹 준장 옆에 오바마 대통령이 쪼그려 앉아있다. / 피트 수자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 때 찍은 백악관 상황실 사진은 그렇게 나왔다. 상황실에 모인 오바마 정부 당국자들의 눈은 일제히 현지 작전 영상에 쏠려있다. 주인공은 정중앙에 앉아있는 마셜 브래드 웹 준장이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 옆에 쪼그려 앉아있다. 수자는 영화에서 그날의 뒷얘기를 들려준다. “대통령이 들어서자 준장이 의자를 양보하려 일어섰다. 대통령은 이를 말리면서 그냥 옆에 앉겠다고 했다.” 실무자를 최대한 존중하며 권위에 집착하지 않는 리더의 모습이 저절로 표현된 것이다.

이 사진이 강력한 이유는 “아무도 인위적으로 포즈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모진은 긴장된 표정으로 손으로 입을 막거나 팔짱을 낀 채 현지 작전을 지켜보고 있다. 수자는 오바마 재임 8년간 200만장, 하루 평균 700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은 지근거리에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도 한 번도 중단시킨 적이 없었다”며 “시각적 이미지의 중요성을 아는 영리한 대통령”이라고 했다.

◇어설픈 연출은 역효과만

2019년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의 수괴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회의실 테이블 정 중앙에 앉아 작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셰일라 크레이그헤드

반면 2019년 도널프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하는 상황실 사진은 사뭇 다르다. 미국 특수부대원들의 작전으로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의 수괴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사망했을 때다. 백악관이 공개한 사진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회의실 테이블 정 중앙에 앉아 작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대통령과 참모진 모두 정복과 정장 차림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트럼프 전속 사진사였던 셰일라 크레이그헤드는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사진을 공개할지에 대해 일일이 자신의 허락을 거치도록 했다”고 밝혔다. 가까운 접근도 허용하지 않았고, 얼굴 색깔을 밝아 보이게 해달라는 등의 외모 보정 요구를 자주 했다고 한다.

취임 100일을 맞아 대통령실이 공식 SNS에 올린 카드 뉴스. / 20대 대통령실

우리는 어떨까. 지난 17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대통령실이 공식 소셜네트워크(SNS)에 ‘10대 성과’를 뽑아 카드뉴스로 올렸다.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았습니다. 무너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세웠습니다’…. 하지만 네티즌 반응은 냉랭했다. 한 50대 남성은 “너무 많은 문장을 색색깔로 빼곡히 채워서 촌스럽고 내용도 눈에 안 들어온다”며 “진짜 문제는 어설픈 연출 사진”이라고 했다. 7월 8일 열린 ‘제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사진이라는데, 참석자들은 대통령 집무실 소파에 둘러앉아 자료를 읽고 있고, 윤 대통령은 어디에 앉아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강진규 AFP 특파원은 “권위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회의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대변인은 선 채로 전화를 받고, 대통령님은 이걸 읽는 척하세요’ 하고 만든 사진”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을 어설프게 따라 하려다 나온 웃픈(웃기지만 슬픈) 결과물”이라고 꼬집었다.

 

◇리더십의 기본은 공감과 위로

피트 수자는 한 강연에서 “대통령 전속 사진사로서 특히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어느 한순간도 쉬운 게 없었지만, 제일 힘들었던 건 오바마 대통령이 참변을 당한 가족을 만날 때였다”며 “안타깝지만 그런 순간을 기록하는 것도 내 일이었다”고 답했다.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이 총기 규제 강화를 발표하면서 샌디훅 총기 난사 사건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닦는 모습. / 피트 수자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 가장 힘들었던 날은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때였다. 아이 20명과 성인 6명이 사망했다. 오바마는 눈물을 흘리며 담화문을 발표했고, 이틀 뒤 뉴타운에 가서 2시간 30분 동안 유족들을 만났다. 6살 아들 벤을 사고로 잃은 데이비드 휠러씨는 “수행원들이 대통령 일정을 급히 진행하려고 하자 대통령이 말렸다.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괜찮다고 했다”며 “대통령은 들어와서 아내를 가만히 안아줬다”고 했다. “아무것도 공감을 대체할 수 없다. 그건 인간 대 인간의 근본적인 관계니까.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이 이렇게 마음을 쓰고 관심 갖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다큐 ‘내가 보는 방식’)

반면 2017년 허리케인 하비로 텍사스주에 물난리가 났을 때 트럼프 대통령의 처신이 도마에 올랐다. 트럼프는 피해 주민들을 만나서도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고, 자신을 보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군중을 보고 “정말 많이 모였네요”라고 감탄했다. 또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판매 중인 40달러짜리 야구모자를 쓰고 수해 지역을 돌아봐 “국가적 재난을 개인 사업의 홍보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남의 일이 아니다. 대통령실이 최근 윤 대통령이 신림동 반지하 주택 침수 현장을 방문한 사진을 홍보용 카드뉴스로 제작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한 정치학자는 “공감과 위로라는 기본 마인드를 늘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는 동안 보좌관들이 스피커폰으로 경청하는 모습. /피트 수자

◇무엇을 홍보할지 국정 어젠다가 먼저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근무했던 A씨는 “지금 대통령실 홍보에는 세 가지가 없다. 능력 있는 홍보 전문가, 메시지를 집중할 체계적인 시스템, 그리고 무엇을 홍보해야 하는지 국정 어젠다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실에는 광고 전문가, 실력 있는 디자이너 등 민간 출신 홍보 전문가들이 많았다. 실무진이 홍보 콘셉트를 잡고 회의를 거쳐 홍보 수석에까지 보고가 올라가면, 이를 대통령 주재 수서비서관 회의에서 논의하고, 그 결론이 다시 실무진에 내려와 보완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며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 중도 실용’이라는 슬로건을 강하게 치고 나가면서 위기를 돌파했는데, 지금은 가치와 정책을 담은 슬로건이 없으니 문제가 터질 때마다 임기응변식 대응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시영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는 “카드 뉴스 하나에도 디자인 전문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있다. 타깃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채,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은 “문제의 본질은 홍보를 해야 할 국정 운영의 방향과 큰 그림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을’ 홍보할지, 윤석열 정부가 집권 5년 동안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거시 방향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 진짜 문제라는 것이다. 노 위원은 “난삽하게 흩어진 여러 정책 과제를 모아 공통점을 찾고,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과 철학을 귀납적으로 도출해 그것을 기반으로 홍보 전략을 재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