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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asure I

문무대왕 푸른 기상 위로 동해의 태양이 떠오른다

문무대왕 푸른 기상 위로 동해의 태양이 떠오른다
포항에서 부른 희망의 노래
  • ◇1000년 넘게 동해바다를 지켜온 문무대왕릉 주변에서 전해지는 역사적 ‘장엄함’이 하얀 포말 위를 나는 갈매기 날갯짓이 주는 ‘낭만’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새해 첫 레저 기사를 준비하면서 잠시 고민했다. 대상지를 추리다가 조건을 꼽아보았다. 겨울 이미지를 드러내는 곳이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과거의 오롯한 경험과 미래의 희망이 담금질되는 곳이라면 더 좋다. 거기에다 여행의 낭만과 생활의 활력을 동시에 간직한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성싶었다.

    그래서다. 포항과 그 주변 여행은 그렇게 결정됐다. 포항의 구룡포만 하더라도 쇠락의 길을 걷다가 이제는 전국의 미식가를 불러 모으고 있다.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호미곶은 100년 넘게 불을 밝히며 뱃사람에게 희망을 선사해 왔다. 또 포항을 떠받치는 듯한 인근의 경주는 과거의 알찬 경험을 차곡차곡 간직한 곳이다. 포항이 주된 목적지이지만 경주 토함산에서 일출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 것은 이 이유에서다.

    #문무대왕릉에서 역사를 만나다

    토함산에서 일출을 맞이한 미안함 때문에 아침 일찍 문무대왕릉을 찾았다. 모든 길의 세계적인 지향성과 모든 길의 역사적인 숙명을 갈파한 소설가 김훈이 평가한 바로 929번 지방도로 끝에 문무왕릉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동해안을 찾는 대다수 여행객에게 낭만의 도로는 7번 국도다.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한 7번 국도는 해안선을 친구 삼으며 남북으로 달리다가 포항 언저리에서는 내륙으로 방향을 틀고 만다. 포항과 경주 즈음에서 접하는 아쉬움은 31번 국도와 929번을 비롯한 몇 개의 지방도로로 달랠 수 있다.

    929번 지방도로는 경주와 감포읍 대본리 바다를 잇는다. 김훈은 이 지방도로를 가리켜 바다를 향한 7세기 신라의 인후(咽喉·목구멍)이며, 인간의 꿈의 힘으로 살육의 피를 씻어낸 신라의 지성소(至聖所)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되새기며, 세계 유일 수중릉 문무대왕릉 앞에 섰다. 신라 호국의 성역 앞에서는 여행의 낭만 대신에 역사의 치열함이 밀려왔다. 경주 양북면 봉길리에 자리한 문무대왕릉은 문무왕의 호국 정신이 발현된 곳이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에게는 왜구가 걱정거리였다. 죽어서라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이 나온 배경이다. 유언은 “죽으면 화장해 동해에 장사를 지내라”며 “동해의 용이 돼 신라를 왜구로부터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부왕의 은혜를 입은 아들 신문왕은 감은사를 완공하고, 대나무 피리를 불어 왜구를 쉽게 격파하곤 했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문무왕이 동해의 용왕이 돼 신라를 지켜낼 정도로 비원을 들어주었으니, 개인적 기원도 등장했을 터다. 미역과 오징어를 팔고 있는 김순례 할머니는 “입시철이나 정월 초하루, 대보름 무렵에는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고 설명한다.

    인간사의 가르침을 이해라도 하는 듯, 갈매기들은 대왕릉과 해안가를 반복해 비행하며 영겁의 시간을 들려준다. 역사의 가르침을 온전히 체감하기 위해 한참 머물러 있자, 태양은 좀 더 높이 솟아 있다. 그 와중에 역사의 주연과 조연, 해안 절경의 주인과 이방인을 잠시 혼동해 본다.

    #동해의 바닷바람이 만드는 구룡포 과메기

    경주를 벗어나 북쪽으로 31번 국도를 달리면 맨 처음 마주하는 게 포항 장기면 신창리다. 이곳에서도 거친 바다를 뒤로하고 떠오른 동해의 태양이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작은 각도이지만 마냥 오른쪽으로 운전대를 돌리다가 왼쪽으로 조금 방향을 틀자 겨울철 포항을 상징하는 과메기 덕장이 연이어 펼쳐진다. 덕장들은 바로 구룡포가 가까워졌다는 ‘살아있는 관광 안내도’인 셈이다.

    과메기를 만들기 위해 꽁치를 손질하고 이를 덕대에 내거는 어민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구룡포의 과메기가 유독 인기를 끄는 것은 이곳 바닷바람에 사흘 정도 말리면 비린 냄새가 없어지는 천혜의 건조방식을 가져서다. 지형적 특성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매서운 구룡반도의 북서풍이 꽁치를 얼리고 녹이기를 반복해 비린내를 씻어준다.

    과메기는 원래 꽁치가 아닌 청어를 말린 구룡포의 명품이었다. 실학자 이규경(1788∼?)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청어를 연기에 그을려 부패를 방지하는데, 이를 연관목(煙貫目)이라 한다”고 해 과메기의 근원을 알려준다. 청어의 눈을 꼬챙이에 꿰어 말렸다는 뜻의 관목(貫目)이 변해 ‘과메기’로 굳어졌을 개연성이 크다.

    예년보다 빠른 설을 쇠고 한 달이 지나면 과메기 덕장도 자리를 감출 것이다. 보통 11월 중순에서 이듬해 2월 말이 제철이기에 그 이후의 과메기는 냉동돼 사계절 고객을 찾아간다.
    #100년 넘게 길잡이를 자임한 호미곶 등대

    구룡포에서 10㎞ 정도를 달리자 울릉도와 독도를 제외한 반도 땅 최동단 호미곶이 서울에서 온 여행객을 반긴다. 이름부터 기운을 차리고 희망을 갖게 한다. 툭 튀어나온 호랑이 꼬리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 호미(虎尾)곶, 거기에서 등대는 땅을 삼킬 듯 거친 바다의 길잡이 노릇을 담당한다.

    1908년 12월 준공된 호미곶 등대는 포항 앞바다를 중심으로 겨레와 함께 100년을 지내왔다. 호미곶 등대(26m)는 울산의 화암추 등대(44.5m)에 이어 국내에서는 두 번째로 높다. 한 세기를 지켜온 등대와 앞바다에서 이 땅 사람들이 화합과 이해의 또 다른 수백 세기를 함께하기를 기원해본다. ‘희망과 화합’을 떠받치는 듯한 ‘상생의 손’처럼.

    포항=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