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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30년 전 박정희가 남긴 유산

[시론] 30년 전 박정희가 남긴 유산

  • 피터 현 언론인·작가
  • 입력 : 2009.10.25 22:08 / 수정 : 2009.10.25 23:33
피터 현 언론인·작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다. 과거에 난 그가 한국을 부유하게 하고, 강하게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패기 있는 젊은 세대를 관찰하고 난 후, 나는 박 전 대통령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한국인의 가슴에 '자신감'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스며들게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명박 정부의 목표는 결과적으로 G8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현재 이런 목표는 매우 현실적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의 많은 기업의 목표 역시 세계무대에서 정상에 서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기업들은 이런 목적을 달성했다. 삼성과 LG와 현대차를 보라. 많은 한국 학생들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한국 유학생은 두 인구 대국인 중국 인도와 함께 상위 5위 안에 든다. 그들은 매우 광범위한 야망을 갖고 있다. 산업 분야, 국제기구, 나노과학, 생명과학에 도전하고 있다. 그들은 전문분야를 세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며, 선진국의 젊은이들과 비슷한 목표를 공유한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의 경제적 성취가 갖는 중요성에 동의한다. 그는 30년 전에 사망했다. 그가 숨지면서 그의 권력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우리 사회와 민간 산업, 그리고 나아가 미래 세대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게다가 이러한 성장 과정은 한국민이 스스로에게 한국은 더이상 가난하거나 약자일 필요가 없으며 한국도 더 낫게 변화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이런 자신감을 자연스럽게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수십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1963년, 내가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紙)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다. 당시 한국에는 오늘날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위험스러운 징후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많은 국민은 한국이란 나라를 스스로 피폐한 제3세계 국가로 인식했다.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 또 한국의 미래에 비관적이었다. 내가 박 전 대통령에게 그 점을 언급하자 그는 "오늘날 한국인들이 내보이는, 비생산적이고 부정적인 특성은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과거의 외세 침략과 재난의 결과"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목표는 경제를 튼튼히 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인들의 정신세계 속에 '자신감'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불어 넣어주려 했다.

나는 2년 전, 패기만만한 일단의 한국 젊은이들을 뉴욕 한복판에서 만났다. 바로 한국형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함'을 타고 입항한 대한민국 해군의 젊은 장교들이었다. 세계의 수도를 장식한 고층빌딩 밑에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한국군 장교들은 한국의 정치·경제적 이해를 보호할 수 있는 대양해군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현재 대양해군을 추구하고는 있으나,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 그런 해군력을 갖추지 못한 유일한 나라다. 그러나 그날 한국 해군장교들의 눈은 한국 해군이 그런 숭고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자신감으로 불타고 있었다. 나는 내 인생의 전반부를 일본의 강제점령, 6·25전쟁과 같은 불운으로 점철된 한국을 보면서 보냈다. 인생의 나머지 후반부에서 나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재건해 세계 최대 부국(富國) 중의 하나로 발전하는 한국을 봤다.

한국 역시 다른 선진국들처럼 부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이 더욱더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모든 한국인은 나처럼 확신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30년 전 오늘 숨진, 비전(vision)을 갖춘 한 애국자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