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rrent I

평화의 댐

http://blog.chosun.com/lsh09/4290243
 

'평화의 땜’ 존재가치를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재인식해야





                                 지난 10월 12일 예비역 해병 기독자 모임인 “해병선교회”에서 버스 1대를 대절하여 회원 30여명이 ‘평화의 땜’을  둘러보고 왔다. 이곳은 해병대의 6.25전쟁 5대작전의 하나인 도솔산작전 전적지와도 별로 멀지 않은 곳으로 원래 38도선 이북 땅인데 우리 영토로 수복된 산악지역이다. 우리 일행의 노병들은 이번 field trip을 통하여 국가안보현실과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한 재인식을 통하여 안보역군으로서의 사명의식을 다지게 되었다. 이하에서 평화의 댐을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다시 진단 및 처방해 보기로 한다.








1. 들어가는 말 : 댐 축조 배경





 ‘평화의 댐’은 대한민국 강원도 양구군과 화천군에 걸쳐 뻗어있는 북한강의 상류 강원도 화청군 화천읍 동촌2리 애마골에 위치해 있다. 휴전선으로부터 북한강을 따라 북으로 26km 지점에 금강산댐(임남댐)이 있고, 휴전선으로부터 남으로 10km 지점에 평화의 댐이 있다. 두 댐은 북한강을 따라 36km 떨어져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제2차 댐 공사완공 후의 현재 뚝 길이는 601 m, 높이는 125 m이며 최대 저수량은 26억 3천만 t이다. 북한의 금강산 댐 건설에 따른 수공(水攻)과 홍수에 대한 예방 및 상수도 공급등 다목적으로 1987년 2월에 착공하여 1989년 1월에 1차 완공(당시 높이 80 m)된 뒤, 2002년부터 2단계 증축 공사를 하여 2005년 10월에 최종 완공되었다. 평상시에는 물을 조금 밖에 가두지 않는(5%) 건류댐으로 운영되고 있다.


 1986년 10월 30일 이규효 당시 건설부 장관은 《대 북한 성명문》을 발표해 북한에게 금강산 댐(임남댐)의 건설 계획을 멈추라고 했다. 금강산 댐이 북한강을 통해 휴전선 이남으로 흘러들어가는 연간 18억 t의 물 공급을 차단할 것이고, 금강산 댐을 붕괴시켜 200억 t의 물을 하류로 방류하면 물이 “63빌딩 중턱까지 차오를 수 있다”며 북한이 이를 이용해 1988년에 열릴 서울 올림픽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측의 이야기였다.


 같은 해 11월 26일 국방부·건설부·문화공보부·통일원 장관이 합동 담화문을 발표해 평화의 댐을 건설할 계획을 밝히면서 총 공사비는 1700억원이며 이 중 639억여원은 6개월 동안 국민 성금으로 충당했다. 평화의 댐은 1987년 2월 28일 기공식을 가지며 착공하여 1989년에 1단계로 완공되었다.


 이후 2002년 1월 북한이 수공을 하지 않더라도 금강산 댐의 안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징후가 발견됐다. 김대중 정부는 같은 해 5월, 평화의 댐 2단계 증축공사를 몰래 착공하고 2005년 10월 19일에 완공했다. 제2단계 댐 공사에는 모두 3995억원이 들어갔다.


 평화의 댐에 위협이 되는 임남댐은 북한이 1992년 1월 상류 가물막이 공사를 끝내고 1999년 6월부터 평화의 댐 상류 36㎞ 지점에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2000년 10월 축조했다. 댐 건설로는 이례적으로 단기간에 완성된 것이다. 저수용량 26억여t의 북한 임남댐은 정상부 두 군데에 각각 길이 20m 폭 10m와, 길이 10m 폭 5m의 균열이 발생하는 등 안전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북한은 2000년 완공 당시 높이 88m, 저수량 9억1000만t을 2002년 6월 높이 105m로 증축해 붕괴 위험성도 제기됐다. 임남댐은 자재 부족과 철근·콘크리트 등의 부실로 댐이 부분적으로 터지거나 붕괴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평화의 댐 관리사무소는 "평화의 댐은 북한에서 내려오는 성난 물로부터 강원도와 수도권 등 하류지역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늘 98% 이상은 비워져 있다"며 "2003년 말 증축 완료된 임남댐 저수용량이 26억2000만톤인 것을 감안하면 저수용량이 26억3000만톤인 평화의 댐은 금강산댐이 완전 붕괴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규모"라고 밝혔다.


 다만 2005년 금강산 댐 방류 때 처럼 한꺼번에 많은 물이 내려오면 평화의 댐뿐만 아니라 화천댐 등 북한강 수계 댐들에 일제히 비상이 걸리는 등 위험 요인은 남아 있다.





..2. 황강댐 방류로 주목받게 된 평화의 댐


 지난 9월 6일 북한이 임진강 상류 황강댐의 방류로 남측에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북한강 상류의 ’평화의댐’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강원 화천의 ‘평화의댐’은 저수용량 26억만t 규모로 북측이 금강산댐(임남댐)의 대량 방류 등 유사시 사태에도 남측 북한강 수계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으로 재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항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평화의댐’ 저수용량은 26억3천만t으로 북한의 금강산댐보다 1천만t가량 더 많은 물을 담아 낼 수 있기 때문에 금강산댐 붕괴와 대홍수 등 최악의 사태에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북한강 수계를 거슬러 비무장지대(DMZ) 상류 19㎞ 지점에 있는 금강산댐은 2000년 10월 완공된 이후 지금까지 모두 7회에 걸쳐 물을 남측으로 무단 방류했다. 이 중 2회만 남측에 사전 통보했을 뿐 나머지 5회는 방류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문제는 북한이 이번 황강댐 방류 사태와 같이 아무런 통보 없이 금강산댐 방류 시 남측 북한강 상류 수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무법자답게 국제하천이나 다름없는 북한강 상류의 물을 임의로 흘려보낸바 있다.


 특히 북측은 2002년 1월 17일부터 2월 4일까지 16일간 금강산댐 보수과정에서 3억5천만t의 물을 하류로 처음 방류했다. 당시 평화의댐 하류에 있는 화천댐의 물 유입량이 평시 초당 2t에서 최대 273t으로 급증해 주민 불안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북측은 동포애와 인도주의 차원에서 ’금강산댐 수위조절 계획 사전 통보’ 방침을 밝힌 뒤 2002년 6월과 2004년 8월 2차례 판문점을 통해 남측에 금강산댐 방류 계획을 통보했다. 그러나 2007년 이후 지난해 9월 마지막 방류까지 사전 통보는 없었고, 방류량이 미미해 이렇다 할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평화의댐의 수위는  현재도 평소와 다름 없이 175m 안팎을 균일하게 유지하고 있는데다 바로 아래에 있는 화천댐(파라호)의 수위도 큰 변동이 없는 상태다. 이는 북한이 평화의 댐 2단계공사 완료후 금강산댐(임남댐)의 물줄기를 지하암반굴착을 강행하여 땅굴수로를 통하여 해금강 연안에 금강수력발전소를 건설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평소에는 평화의 댐에 유입될 물이 별로 없는 상황이다. 이로 말미암아 북한강 상류의 우리 땜들은 갈수기엔 물부족도 예상된다.


  평화의댐 관리단 관계자는 “금강산댐의 방류와 수위 변동 등 이상 징후를 평화의댐에서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동하는 만큼 큰 우려는 없다”며 “다만 공유하천의 효율적 이용과 안전성 확보 차원에서 북측의 방류계획 사전 통보에 대한 장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1960년 중반 평화의댐 북방 백암산 계곡 비무장 지대에 근무한 장교였던 한명회씨가 무명용사의 돌무덤을 발견하고는 그 돌무덤의 주인이 자신과 같은 젊은 소위 였을거라는 애상에 잠겨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넋을 기리는 유명한 가곡 '비목'의 가사를 탄생시켰으며 장일남씨가 곡을 붙쳐 70년대 중반부터 널리 애창되어 오고 있다.


 비목공원은 이러한 가곡 '비목'의 발상지를 기념하고 조국을 위해 순국한 꽃다운 젊은 넋을 기리기 위해 1995년 6월, 백암산에서 가장 인접한 이곳 평화의 댐 기슭에 화천군민의 뜻을 모아 우선 노래비와 상징물을 세워 비목공원이라 명명하였다. 또한 해마다 6월이면 비목공원 기슭에서 비목문화제가 개최된다.


 또한 이곳에 설치된  ‘평화의 종’이 우리의 시선과 관심을 끈다. 


세계 평화의 종 제원은 다음과 같다.





                   * 무      게 : 10,000관 (37.5 톤)


                   * 크      기 : 지름 2.76m    높이 4.67m


                   * 형      태 : 신라 범종


                   * 주조년도 :  2008년 10월


                   * 조  주 처 : 성종사


                   * 시 행  처 : 강원도 화천군


         





 세계평화의종은 2005년 부터 2009년 까지 5년간 세계 각국의 분쟁지역에서 수집된 탄피들을 모아 만든 종으로 평화, 생명,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1만관(37.5톤)으로 만들어진 세계 평화의 종은  통일의 염원을 담고자 1만관 중 1관을 분리한                         9,999관으로 주조 되었다가 통일의 날, 떼어진 1관을 추가하여 세계 평화의 종을 완성할 것이다.  2009년 5월 26일 준공식에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전 소련 대통령인 "고르바초프"를 포함해 국내외                                   귀빈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세계 평화의 종 타종식 이 있었다.





  








3.  ‘평화의 댐’ 그 규모 와 효용가치





 □ 사업목적


    북한강 상류지역에 급격한 홍수사태 발생 시 하류지역의 홍수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평화의댐 증축공사 시행


 □ 추진경위


  ◦ 1986. 10         : 북한 금강산발전소 착공


  ◦ 1987.  2. 28     : 평화의댐 1단계 사업착공


  ◦ 1989. 12.        : 평화의댐 1단계 사업준공


  ◦ 1902.  7. 19     : 평화의댐 증축(2단계)사업 추진 발표(건교부)


  ◦ 1902.  9. 30     : 평화의댐 증축공사 착공


  ◦ 2004.  4. 20     : 본댐축조 완료


  ◦ 2005. 10. 19     : 평화의댐 건설사업 준공식


 □ 사업개요


  ◦ 위    치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화천댐 상류 24km)


  ◦ 유역 및 저수지


    ▪ 유 역 면 적 : 3,227㎢(임남댐유역 2,394㎢ 포함)


    ▪ 저수가능량 : 26.3억㎥(1단계 5.9억㎥, 2단계 20.4억㎥ 증)


  ◦ 본    댐


    ▪ 댐  형  식 : 콘크리트 표면차수벽형 석괴댐


    ▪ 댐  높  이 : 125m(1단계  80m, 2단계 45m 증)


  ▪ 댐  길  이 : 601m(1단계 410m, 2단계 191m 증)


    ▪ 댐 축 조 량 : 7,905천㎥           


  ◦ 배 수 터 널  : 직경10m × 4련(1단계)


  ◦ 진 입 도 로  : 69.9km(1단계) , 2.52km(2단계)


 □ 사업효과


   ◦ 북한강수계 댐의 안정성 확보   ◦ 홍수조절용량 26.3억㎥


 □ 사업기간 : 1단계1987~1989), 2단계(‘02~’05)





※ 북한 금강산댐(임남댐)


    -공사기간: 1986.10.~2003.12.


    -규      모: 높이 121m.   길이 710m.


    -총저수량: 26.2억㎥





 노태우 정권하에서 금강산댐의 축조공사가 지연되면서 김영삼 정부시대를 맞아 5-6공을 청산하자는 열기가 높았다. 5-6공의 3대 의혹이 지목됐다. 12.12. 평화의 댐, 차세대전투기사업, 이렇게 세 가지였다. 12.12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공동으로, 평화의 댐은 전두환이, 차세대전투기사업은 노태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추진한 사업은 모두가 사기라는 정서가 팽배했다. 이때부터 평화의댐이 뭇 언론의 몰매를 맞는 동네북이 됐다. 야당 의원들과 민주화세력이 바람을 일으키자  모든 언론들이 같은 논조의 소나기 보도를 했다. 조선일보는 1993.6.17.에 감사원장의 감사결정을 “시의적절한 일”이라 극찬하면서 과거에 평화댐건설을 앞장서 홍보했던 뭇 언론들을 대신하여 반성한다 했다. 옛날에 평화의댐 건설과 국민성금 모금에 앞장섰던 언론들이 이제는 그 모금행위가 대국민사기극이었다고 몰아가기 시작했다. 정론직필과 불편부당이란 언론의 ABC는 간데 온데 없었다. “정권안보용 댐” “독재정권유지를 위한 전시용 댐”"국민을 기만한 사기극“ ”우스개가 된 평화의담“(1993.6.17 조선일보 사설) 등 우후죽순처럼 비난이 사방에서 터져나온 것이다. 참으로 간사한 언론의 생리적 작태라 할만하다.


 2003년 9월4일, 이회창 감사원장이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한마디로 존재하지도 않은 위협을 여론 호도용으로 만들어 낸 사기극이라는 취지의 발표였다. 9월1일, 조선일보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미리 보도했다. “수공 과장 정권안보 이용”이라는 제하의 기사는 감사원의 발표를 그대로 재탕한 것이었다. 이 이회창 감사원장의 발표는 야권과 야당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때부터 국민은 평화의 댐을 “정권안보용” “국면전환용” “사기극”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런 사기극을 벌인 전두환은 코너에 몰리게 되었었다. 감사원 발표는 자연스럽게 국회청문회를 촉발시켰다. 양철냄비 속성을 가진 우리 국민의 분노를 증폭시키기에 족하였다. 


 1993년9월, 국회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에 불려나온 증인들을 향해 국회의원들이 목에 힘을 주면서 죄인 다루듯 목소리를 높이고 삿대질하였다. 증인들은 무조건 고개르 숙였다.   그들의 성에 차지 않는 말을 하면 불호령들을 했다. 건설부 장관, 통일부장관 들이 나가 증언을 했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북괴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결정한 정당한 조치였다고 항변했지만 잘 먹혀들지 않았다. 북한이 금강산댐을 쌓다가 중지한 것은 우리가 대비를 했기 때문에 쌓아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실은 이 때 북한이 금강산 댐 공사를 중단한 것이 아니라 지하암반의 수로 굴착공사를 하여 거대한 물줄기를 동해안쪽으로 역류시켜 발전소 건설을 암암리에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결국 김대중의 결심에 의해 한편으로는 햇볕정책으로 계속 퍼다 주면서 한편으로는 평화의 댐 축조란 모순행각을 ‘울며 겨자먹기’로 자행하였다.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완공된 거대한 오늘의 평화의 댐은 평시엔 안보관광자원으로, 일단 유사시엔 북한강 하류의 홍수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파제 역할을 충분히 할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물 부족 사태를 예견한 수자원의 보고가 될 수 있음이 이제야 입증되어 대다수 국민이 이를 수긍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가히 평화의 댐이 숨은 안보효자로 각광을 받을 만하다.





4. 맺는 말 : 국가안보는 포푸리즘 배격이 필수





 2002년4월 KBS가 금강산댐의 안전문제를 처음 보도했다. 2002년5월7일, 평화의댐을 사기극으로 폄하했던 조선일보가 전혀 뜻밖의 기사를 실었다. “15년동안 천덕꾸러기로 여겨왔던 평화의 댐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동아는 2002년 7월호에서 “금강산댐은 제2의 노동미사일이고, 또 하나의 핵무기다. 고의든 부실공사 때문이든 터지면 전시체제로 돌입할 수밖에 없다”. 여러 신문들이 이에 가세했다. “평화의댐 존재가치 다시 부각”된 것이다. 마치 나폴레옹 장군을 파리 언론들이 엘바섬으로 추방되자 패륜아로 지목하더니 섬을 탈출하여 100일천하로 재등극하게 되자 위대한 황재 파리입성 만세라고 대서특필한 역사적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당시의 인공위성 사진에 의하면 26억톤 이상을 저수하는 금강산댐에 커다란 함몰부분이 생겼음이 확인되었다. 북은 그 해  7월부터 임남댐의 증축 및 보수공사를 시작했다.  2002년8월30일, 남북경협추진위가 열렸다. 여기에서 양측은 금강산댐의 안전문제를 공동조사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은 20일 만에 약속을 깼다.


 이에 우리 정부는 부랴부랴 기존의 80m 높이의 댐을 125m로 높이는 공사를 계획했다. 2002년9월에 착공하여 2004년12월까지 총 공사비 1,95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실제는 2005년5월에 26억3천만 톤의 저수량을 갖는 한국 제3위의 댐으로 증축됐다.  이는 금강산댐(임남댐)보다 1천억 톤이 더 많은 저수량이다. 소양강 댐의 저수량이 29억톤, 충주탬이 27.5억톤이다. 평화의댐은 현재 홍수조절 기능이 아주 훌륭한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평화의댐은 전두환이 건설했기 때문에 사기극이 됐다.  전두환이 한 것이면 무든 것이 가짜라고 질타한 마녀사냥 시절에 이회창은 민주화 여론에 영합하면서 대쪽이미지를 창출해냈으며 그 여세를 몰아 국무총리가 되고 제1야당 당수가 되었다. 그러나 금강산댐을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못한 우를 범하였다.


 이회창은 법조계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소문났던 대법관 출신이고, 전두환은 무골 군인 출신이다. 지금쯤은 이 두 사람을 놓고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한다면 상반된 결과도 나올 것 같다. 전두환은 한 때 독재자로 지탄받았지만, 전직 두 대통령에 비하면 해야 할 일을 한 애국자였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회창은 전두환을 팔아 대쪽 이미지를 창출해냈을 뿐이다. 공명심에 강하여 두 번이나 대통령에 출마하여 낙마하고서도 미련이 남아 지금은 한 야당의 당수로서 초라한 위상을 돋보이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회창은 차세대전투기사업도 이런 식으로 감사했다. 노태우 전직 대통령에게 감사질의서를 보내고, 미국 회계감사원(GAO)에도 질문서한을 보내는 등의 특이한 제스처를 써서 대쪽 이미지를 만들어가면서 차세대전투기사업에 대해 70일간을 감사했다. 하지만 그는 소설 같은 의혹들만 잔뜩 증폭시켰을 뿐, 단 한 개의 비리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가 그의 입으로 직접 제기한 의혹은 태산 같았지만 그 중에서 증명해낸 것은 단 한건도 없었다. 그가 의혹을 사실인 것처럼 증폭시킬 때 국민들은 그를 연호했고, 그래서 그는 대쪽의 영웅이 되었던 것이다. 포푸리즘에 영합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좌파정권 당시의 임진강 상류 북한의 황강댐 건설과 관련한 비화를 소개 한다. 북한이 임진강 상류에 대형 댐을 건설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면서도 쉬쉬하였다.. 동아일보에 보도된 건설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 저수용량 3억∼4억t의 황강댐이 세워지면 임진강 하류인 우리측 파주 연천 등에 연간 2억9300만t의 용수부족이 예상된다고 했다. 만에 하나 댐 안전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1996, 1998, 1999년 잇따른 홍수로 막대한 피해를 본 이 지역에 또다시 엄청난 재난이 닥칠 것이 분명하니 그냥 넘길 일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 된 것이다.


 북한이 국제법상 공유하천을 남측과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임기 말까지 햇볕정책에 매달리느라 이 같은 북한의 위협을 숨기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이다. 김대중 정부는 임기 말에 열린 임진강 수해방지 실무협의회에서 황강댐 문제를 북만 아니라 그 해에  금강산댐에 안전문제가 제기됐을 때이나 북한의 비밀 핵개발 사실이 밝혀진 초기인 지라 정부는 쉬쉬하면서도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정부의


 당시 황강댐 문제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진 정부로서 기본을 망각한 처사임에도, 만약 선거를 앞두고 속으로 지지하는 후보에게 불리할 가능성 때문에 숨겼던 것이다. 최근에 빚어진 임진강 물 폭탄 사태도 MB정부의 포푸리즘적 무사안일과 과거정권 답습의 폐해가 빚은 자업자득이다.


 한국은 지금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 그러나 선진국 진입 조건이 그리 쉽지 않다. 먼저 경제적으로 3만 달라의 GNP를 달성하되 빈부격차가 적은 항아리형 즉 중산층이 60%인 건전구조를 이뤄야 하고, 정치적 선진화를 위해서는 자유와 인권 그리고 평등을 왜곡시킨 포푸리즘을 배격한 참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고, 사회문화적으로 다문화의 공동체로서의 그로벌 스탠다드를 수용 생활화해야 할 것이다. 포푸리즘에 놀아나는 정치꾼들이 야합한 왜곡 편중된 사이비 민주주의를 청산하려면 국가안보우선주의의 리더십을 국가지도자가 과감하게 실천 수범해야 한다.          


   평화의 댐은 사연이 길다. 전두환 정권이 군사독재를 통하여 치부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상대적 객관적 평가에서는 좀 달라 진다. 적어도 국가안보와 경제성장면에서는 지난 좌파정권에 비교할 바기 안 될 정도로 성과를 거두었다. 그가 북한 금강산댐 수골위협을 과장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들리고 있다. 평화의 댐 현장에서 알아본 바로는 이는 사실이 아니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두환 정권은 할 일을 제대로 다 했다고 본다. 김대중 정부가 2002년 평화의 댐 확장, 증설 공사를 시작함으로써 그 점을 먼저 인정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부가 북한의 수공위협을 과장하여 축조하지 않아도 될 평화의 댐을 지었다는 모함은 헛소리임을 알 수 있다. 평화의 댐 공사는 정확한 군사적 위협평가에 따른 대응조치 결과였다. 오히려 초기 대응이 다소 미흡하여 김대중 정부 시절에 댐의 높이를 45m나 더 높여야 했을 정도로 댐건설의 당위성과 필요성은 절실했던 것이다. 요사이도 좌익들과 일부 어용언론은 전두환 정부가 금강산댐이 터지면 여의도의 63빌딩이 물에 잠긴다는 과장을 했다고 감성적인 비판을 하면서 햇볕정책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려고 입에 거품을 내품으면서 험담을 하는 경우가 있으니 숯이 검정 나무라는 격이다.


   평화의 댐은 콘크리트로 된 피라미드를 연상시킨다. 크기는 피라미드 두 개를 붙여놓은 규모이상으로 거대하다. 협곡을 차단한 댐이라서 더 웅장하게 보인다. 주변의 산들은 단풍으로 물들었고 깊은 계곡의 맑은 물은 "아, 이곳이 한반도의 그랜드 캐년(Grand Cannon) 이 아니겠는가"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서울에서 평화의 댐까지는 차로 약3시간 30분 걸린다. 별로 위험하지 않은 잘 정비된 2차선도로가 놓여있다. 하루를 시간 내어서 이곳에 도착한 뒤 주위를 느긋하게 즐기다가 돌아가면 북한의 금강산 관광 이상의 멋진  안보관광코스가 될 것이다. 이곳은 한국에서 가장 멋진 심산유곡이다. 특히 가을의 단풍은 일품이다. 부디 이곳을 다녀간 다음엔 해이되고 오도된 국민 일부의 국가안보의식을 좀 가다듬는 계기가 되지 않겠나 기대해 본다.


   이 깊은 산과 계곡이 품은 물이 춘천방향으로 흘러내리면서 화천댐, 소양강 댐, 청평 댐, 팔당 댐을 거쳐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실감한다. 이 산악지대는 한강의 수원이자 2000만 인구가 집중된 수도권의 젖줄이고 배후 발원지이다. 이 산과 계곡이 없으면 2000만 명이 마음껏 마시고 실컷 쓸 수 있는 물은 구할 수 없을 것이다. 현대사회의 문명인에게 필수적인 고층아파트의 생활용수와 음료수가 어디에서 공급되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곳이 38도선 이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참으로 아름다운 금수강산, 백두대간의 허리이고 6.25전쟁에서 피 흘린 대가로 수복한 곳이기도 하다.


  석양무렵에 화천군의 해산(日山)전망대에 서 주위 일대를 내려다보았다. 해산은 해발 1190m 의 고산이다. 주위의 깊은 계곡에서는 물소리가 들렸다. 만산홍엽이 병풍처럼 산허리에 둘러져 있었다.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대자연의 경관이 북한의 불작란으로 언제 파괴될지 모르는 군사적 위협을 안고 있으니 그것이 분단의 비극이다.


   양구에서 화천을 거쳐 춘천-서울로 돌아올 땐 밤이었다. 여러 호반을 지나왔다. 전깃불에 비친 호수의 물빛은 항구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북녘 땅은 지금 암흑의 세계일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금수강산과 문명사회를 공짜로 먹어치우려는 김정일 일당을 숭상하고 지지 찬양하는 자들이 지금 이 나라의 청와대에도 침투해 있고 평양의 주석궁에 그 원흉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소름이 온몸에 끼쳤다. 필자는 주위의 권고에 따라 차내 마이크를 잡고 일행에게 간단한 시국안보 메시지를 전하고 해병의 좌우명을 다짐하였다.


 이미 고인이 된 권모술수의 달인인 김대중 왈, 평화의 댐은 무용지물이며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몰아세우면서도, 뒤로는 슬쩍 평화의 댐 확장공사를 벌이고 있었으니 세상에 위선자도 이런 위선자가이 어디 있더란 말인가. 김정일의 벼랑끝 전술 1단계인 대결과 긴장고조에 이은 2단계인 전쟁분위기 조성에 겁먹은 김대중이 3단계인 공갈협박과 유화책동의 병행에 말려들어가 북한에 열심히 퍼다 주면서도 안심이 안 되니 전두환을 욕하다가도 댐의 2단계공사를 비밀리에 강행한 2중인격자 다운 작태를 보인 것이다.


 그것도 그를 것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북한에서 2002년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절 위협적으로 금강산 댐 물을 방류하여 남쪽으로 쏘다 부은 사건들이 수차례 있었으니, 김대중은 북한에 상납한 달러의 당근이 약효를 내지 못하면 6/15선언의 제일성인 “한반도엔 더 이상 전쟁이 없다”란 헛소리가 탄로날까봐 두려워서, 국민에게 이를 숨긴 채 2002년 조용히 쓸모없다던 평화의 댐을 폐쇄하기는 커녕 오히려 확장, 증설공사를 강행하여 2005년에 확장을 완성시킴으로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것은 불행 중 큰  다행한 일이었다.


 이번 임진강 물폭탄 사건을 봐도 북한이 우리를 공격하고자 마음먹는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북한의 한반도 적화통일 수단은 핵을 위시하여 대량살상무기는 물론 재래형군사력, 생화학무기, 땅굴을 통한 특수군, 그리고 최근에 확인된 수폭공격 등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남침 공격을 완벽하게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간 우리는 북한강 상류의 수공에 대한 배비태세는 일단 갖춰진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진행 중인 임진강의 상류 댐 공사를 가록 막던 좌경화된 사이비 환경론자들도 이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니, 당국은 최단시간 내에 댐을 완공하여 북한의 잔꾀를 훼파해야 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평화의 댐 제2단계공사는 진입도로를 터널 및 교량으로 변경하여 자연 훼손을 최소화 하였고,  1단계 사업 완료 후 방치되었던 석산 등 댐주변 훼손지를 신 공법을 사용하여 친환경적으로 복원함으로써 댐하류에 조성된 친수공원 등과 어울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음은 다행한 일이며 우리의 거대한 군사잠재력의 일단을 보여준 것이다.


 평화의 댐은 수자원이나 관광자원으로서의 효용가치는 물론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국가가 지켜야 할 전략목표로 지정되어야 할 곳으로서 지극히 중차대한 존재가치를 지닌다. 이는 분명이 휴전선 방어를 위한 중요한 군사시설이며 적의 전략 전술적으로 역이용가능한 주요지형지물이기도 하다. 현재 휴전선과 지근 거리(10km)에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사시 적의 수공작전에 대비한 평시의 철두철미한 방호 및 경계수단이 현장에 배치되어야 한다.  육군 제1군사령부 예하 투입된 전방사단의 방어책임지역내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현재 이를 지키기 위한 아무른 병력배치나 화력 또는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지 않으며 경계감시초소 하나 없는 무방비 상태이다.


 군의 정보판단과 작전판단에 필히 포함될 전투정보의 5요소인 적, 지형, 기상, 시간, 가용부대의 하나 일 진데 왜 도외시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현행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의 규정에 의하면 군사분계선에서 25km 이내 범위에 제한보호구역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이보다 훨씬 가까운 10km지점에 위치한 전략전술적으로 지극히 중요한 이 댐 시설물이 왜 군사제한보호국역으로 지정되지 않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불순분자가 침투하여 댐에 구멍을 낼 수도 있고 시설을 파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댐 관리소에서는 댐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담은 영상물 상영과 홍보책자만 나눠 줄 것이 아니라  댐북방의 휴전선 너머로의 적 병력과 화력 배치 등 군사상황에 대한  강조 및 6.25전쟁과 관련한 현장정보를 관광객에게 함께 제시해줌으로서 안보관광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댐이 휴전선과 불과 10km의 지근거리에 있으며 이곳이 6.25전쟁당시 유명한 혈전의 본거지인 철의 삼각지였음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 여기에 온 일반 관광객들은 평화의 댐이 함축하고 있는 국가안보적 맥락의 뜻을 피부로 전혀 느끼지 못하며 후방지역의 볼거리 정도로 만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끝으로 당국은 평화의 댐이 완공한 이후 평시에 총 저수용량의 약 5% 정도 물만 담고 있으면서 단 한 번도 만수위로 집수시험을 해 본적이 없는 바. 갈수기에 북한의 동태를 잘 살피면서 댐의 저수능력과 배수능력 그리고 하류 댐들에 미치는 영향평가 등을 꼭 테스트해 봐야 할 것이다. 현재의 시험되지 않은 댐 기능과 축조물의 강도 및 안전성 진단 등 미확인된 제반 탁상제원들의 현장 실험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만의 하나 불실과 불찰이 발견될 경우 이를 위한 적절한 처방이 뒤 따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MB도 북한의 화전양면(和戰兩面) 전술에 말려들어 “비핵 300”의 정책기조를 중도 포기하는 우를 절대로 범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