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진 김병연은 조선 후기의 풍자시인이다. 한문과 한글의 음과 훈을 교묘히 섞어 써 내려간 풍자시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그는 선천부사로 있던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때 항복한 것을 풍자한 시로 장원급제 하였으나 그가 바로 자신의 조부였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과 죄책감에 평생을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방랑하며 시를 쓰며 일생을 보냈다. 참으로 불우하기도 하지만 그의 고결한 인품과 바른 양심에 고개가 숙여지는 이야기 이다.
아직도 적화전략으로 우리를 물고 늘어지는 빨갱이들의 친일파 타령, 이제는 듣기조차 지긋지긋 하다. 일제 36년간의 세월은 한사람의 거의 한평생에 이르는 기나긴 세월이다.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변함없이 일제에 대항하여 싸웠던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오랜기간 독립의 희망을 품었던 사람들도 일제치하 말년에는 더 이상 희망을 잃고 목숨이나마 부지하기 위해 포기하고 일제에 협조한 사람도 있고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협력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일본이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공격하고 승승장구 하고 있었으니 우리의 독립은 불가능 한 것으로 자포자기한 상태 였으리라.
이런 암담한 시기에도 중국과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 하였으나 사실 이런 독립운동이 우리의 독립에 미친 영향은 극히 미미한 것이었다. 우리의 독립은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얻어진 결과였을 뿐이다. 소련은 종전이 되기 불과 며칠전에 연합군의 승리가 절대적으로 확신되는 시점에서 참전해 승전국의 지위를 어부지리로 얻었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독립이 있게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미국의 공과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
우리의 독립이 일제에 대항하여 싸운 독립군들의 공이라 우기며 친일파를 척결하라고 외치는 자들에게 묻고싶다. 과연 독립군들이 수십년간 중국과 만주등지에서 싸울 수 있었던 것이 그들만의 힘이겠는가? 옛날 수양제가 113만의 병력으로 고구려를 침입 했을때 전투부대는 30만이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보급부대나 행정부대였다. 살수대첩에서 30만의 병력이 거의 전멸했기 때문에 나머지 80만의 병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퇴각하였다. 이와같이 전쟁에서는 직접 싸우는 병력보다 지원하는 병력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독립군이 머나먼 타국 땅에서 일제와 싸울 때 이들에 대한 지원은 누가 했겠는가? 수많은 국민들이 아무도 모르게 지원한 덕분에 그나마 독립군의 명맥을 유지한것 아니겠는가? 이들 중에는 친일로 위장하여 일제의 의심을 없애고 암암리에 지원한 사람들도 있고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을 도운 사람들도 있다.
지금 친일척결을 외치는 사람들이 모두 독립군의 후손인가? 무슨 자격으로 친일척결 운운 하는가?
돌아가신 내 부친은 이들의 기준대로라면 친일파였다. 일제시대 9년동안이나 계속하여 동네구장(이장)을 하고 모범관리로 표창도 받고 부상으로 큼직한 벽시계도 받았으니 친일파 아닌가? 하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단 한명도 징용이나 정신대에 끌려간 사람이 없다. 술을 워낙 좋아하시고 酒精(빼갈의 원료, 순수 알콜)을 우동대접으로 대여섯잔씩 마시고도 끄떡없을 정도로 두주불사였던 부친께서는 징용자나 정신대를 모집하러 왔던 일본 순사를 술로 녹여서 징용에 끌고가지 못하게 막았었다. 워낙 술을 좋아하시다 보니 집에는 항상 밀주가 끊이지 않았고 애주가의 부인답게 모친의 술빚는 솜씨도 일품이었었다. 일본인 순사도 어지간히 술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나 보다. 자신의 임무보다는 술맛이 우선이었던지 찾아오면 우선 술부터 한잔 찾았으니 아무리 그가 술고래라도 먼저 떨어져 버리니 실적을 올릴 턱이 없었다.
하루는 위에서 어지간히 닦달을 받았는지 오자마자 부친의 수염을 한손에 움켜쥐고 자신에게 술을 권하면 그냥두지 않겠다고 으름장 이었단다. 부친께서는 "자네는 안마시더라도 나라도 마셔야 할 것 아니냐?"며 술을 갸져오라 하시더니 수염이 잡힌 채로 연거푸 세잔을 마시니 그 순사 녀석이 도저히 참지 못했는지 침을 꼴깍이며 "아무리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혼자만 마시냐?"면서 마당에 서서 부친의 수염을 잡은채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징용 대상자였던 이웃집 청년에게 연락이 되어 산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걸 보고 일본순사는 노발대발하여 초점이 안맞는 눈으로 총을 쐈으나 맞을 턱이 없었고 부친은 "이왕 달아난 토끼 놔두고 술이나 더 하자."고 달래서 마지막 위험까지 무사히 넘긴 그 청년은 3개월을 산속에 숨어 지내다 해방을 맞았고 그 후 면장, 군수까지 했었다. 그 3개월 동안을 산속에 암자를 만들어 놓고 비구니 생활을 하던 백모께서 남모르게 먹을것을 가져다주어 무사히 넘길 수가 있었다. 그 순사가 얼마나 악질적인 사람이었는지 해방과 함께 몰려든 다른 부락 사람들한테 맞아 죽었다고 한다.
암울한 시기였던 일제 식민 치하에서 서로 알게 모르게 이웃을 돕고 지내 왔기에 해방이 되고 나서도 진짜로 악질적이었던 친일파에 대한 문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주민들 서로간에는 별다른 마찰도 없이 지냈다.
그런데 이제와서 새삼 무슨놈의 친일파 타령이란 말인가? 그 시대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일제의 압제에 제대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하며 죽어지냈다. 그렇다면 저항할 능력도 없고 일제에 저항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지낸 그런 사람들이 애국자였단 말인가? 엄밀히 말하면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일제의 식민통치를 정당하게 받아들였던 일제가 원하던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니던가?
어찌됐든 좌파들이 척결하자고 하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마지막에 변절을 했든 안했든 긍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는 언제 올지도 모르는 해방된 조국을 기다리며 일제의 학문과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침묵하며 가슴에 칼을 품고 기다려 온 사람들도 있고 적을 알기 위해 적군에 투신하여 적의 전술을 연마하던 분들도 있다. 그리고 이들은 해방이후 국가재건 과정에서 크나큰 역할을 해 왔던 분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암울했던 시기도 넘길 수가 있었고 지금의 경제번영도 가능했다. 이런 분들 또한 광야에서 말달리며 몸으로 때우던 분과 같은 선구자가 아닌가?
박정희 대통령 같은 선구자를 향해 친일파라 외치는 작자들아! 아무런 용기도 없이 꽁무니 사이로 꼬리 집어넣고 한마디 짖지도 못하고 뒷구멍에 숨어 오줌이나 싸고 있던 못난 똥개들의 자손같은 놈들아! 진짜 친일파를 척결하고자 하면 자랑스런 통일조국하에서도 친일행각을 일삼던 김대중과 노무현부터 비난하라.
친일파 운운하는 자들의 말대로라면 일제치하에서 공부해서도 안되고 관직에 나가서도 안되고 그저 일제가 시키는 대로 하는 무지렁이가 되었어야 한다는 말 아닌가? 이들이야 말로 아무런 저항감도 없이 일제가 시키는 대로 따르고 협조하고 신사참배하고 천왕폐하 외치던 진짜 황국신민이고 친일파가 아닌가? 친일파 척결을 하고자 한다면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일제가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고 협조하던 사람들부터 척결대상이 아닌가?
자신의 조부가 했던 일에 대한 부끄러움과 조부인지도 모르고 그를 비난했던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평생을 얼굴을 가리고 방황했던 김삿갓과, 자신의 조상들이 무슨짓을 했는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친일파 척결을 외치는 철면피한 자들을 비교해 보며 이들의 행태에 분노를 떠나 허탈감마저 든다.
아직도 친일파 척결을 외치는 구제불능한 무리들아! 진정으로 너희들이 원하는 친일파 척결을 하려거든 혼란과 좌절의 역사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부끄럽게 한시대를 보냈던 그대들 조상의 묘를 파헤치고 그대의 조상들 먼저 부관참시(剖棺斬屍) 하고나서 무슨 말이든 지껄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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