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식이었다면 큰일날뻔' 신속사격이 승전비결
7년전 제2연평해전과 다른 양상…2분만에 반파된 적함 도주 경고사격금한 좌파정권때 규칙고치고 현장지휘관 판단도 효과
"교전규칙에 따라 대응사격을 실시해 북한 경비정을 퇴거조치 했습니다"
(합동참모본무 이기식 정보작전처장)
7년 전과 달랐다. 군은 10일 오전 11시 27분경 북한 경비정 한 척이 서해 대청도 동방 6.3마일 지점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1.2마일 침범하자 즉각 5차례에 걸쳐 경고통신을 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계속 도발하는 적 경비정에 우리 고속정은 경고사격을 했으며 적이 직접 조준사격을
가해옴에 따라 대응사격(격파사격)을 실시해 단 2분만에 퇴각시켰다.
적 경비정은 반파된 채 연기를 내며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두번의 연평해전을 겪은 뒤 개정한 교전규칙에 따른 것이다.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지난 2002년 6월 29일 벌어졌던 제2연평해전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제2연평해전은 NLL을 침범한 적 경비적 두 척이 대응 출동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를 기습 공격해 발생한
전투다. 20여분간 이어진 교전으로 해군은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장병들이 타고 있던 아군 참수리 357호에는 적의 무차별 공격으로 구멍 난 흔적만 무려 258개였다.
당시 아군이 월등한 화력을 보유하고도 귀한 생명을 잃은 원인으로 '잘못된 교전규칙'을 꼽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지난 6월 제2연평해전 7주년을 맞아 "확전을 우려해 선제공격을 금지한 좌파정권의
잘못된 교전규칙 때문에 제대로 응사조차 못해 대한민국의 귀한 아들들이 산화하거나 불구의 몸이 됐다"고
지적했다.
또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은 "6인이 전사한 주원인은 김대중씨"라며 "6·15 선언 이후 군에 '선제공격 하지마라, 도발행위 하지 마라. 도발을 확대하지 말고 NLL을 사수하되 물리적으로 하지 말고 북쪽으로 밀어내기식으로 해라'고 지시했다"며 분개했다.
이전 교전규칙은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으로 돼있었으며 현장지휘관 재량권도 약했다.
이를 개정, '경고방송 및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으로 교전규칙을 단순화해 신속한 대응이 가능토록 했다.
이날 김대중 정권때 규칙을 따랐다면 대응사격에 앞서 상부보고 등 과정을 거치면서 적의 직접사격에 의한
피해가 또다시 발생했을 가능성이 컸다는 분석이다.
군 관계자는 "교전규칙을 단순화하고 현장지휘관의 재량권을 강화한 것이 주효했다"고 승전 이유를 설명했다.
선진당 박 대변인은 이날 "오늘의 빛나는 승리를 발판삼아 우리 육해공군은 더욱 견고한 대북 대응태세를 갖춰야
한다"면서 "우리 해군 만만세"를 외쳤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우리 해군이 신속히 대응해 피해는 없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군은 철통같은 경계로 또 있을지 모를 북한 도발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유민주·시장경제의 파수꾼 - 뉴데일리/new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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