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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30년...그 날의 주역이 말한다(1)"대통령 살해가 쿠데타, 12.12 진실을 바로 세워야"허화평 당시보안사 비서실장 "용의자를 계엄사령관 앉힌 것이 비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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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의 발단은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에 숨진 ‘10.26’이다. 지금은 공원이 된 궁정동 안가에서 박대통령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가수 심수봉, 당시 대학생이던 신재순과 만찬 중 저격당한다. 문제는 이 안가의 바로 옆 동에 김재규의 초대를 받은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0.26 발발 후 직제에 따라 정승화 육참총장은 계엄사령관이 되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합수부장이 된다.
“발화점은 대통령 시해 현장이 있던 사람이 계엄사령관이었다는 것입니다.”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은 시해 동조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을 막강한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이 잘못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5층 건물 1층에서 살인사건이 나면 그 건물 모두를 조사하지 않습니까? 정 총장은 불과 현장에서 수십 m 거리에서 범인의 초청으로 와 있었습니다. 게다가 권총이며 M16 등 총성도 아주 가까이 들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범의 혐의를 벗기가 쉽지 않죠.”
합수부의 조사는 막강한 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정승화 사령관은 거짓말을 되풀이 했다"
우선 신분 격차가 너무 심하니 조사에 제약이 많았다는 것이 허 이사장의 회고다. “정 총장은 수시로 수사기록을 보여 달라고 하고 마음대로 고치거나 빼거나 써넣곤 했습니다. 이걸 제대로 된 수사라고 할 수 없지요.” 허 이사장은 정 총장이 연행되기 전이나 1995년 12.12 주역들을 고발할 때의 얘기나 자서전에서 쓴 얘기가 모두 각각 다르다고 주장했다. “정 총장은 일관되게, 또 살기 위해 거짓말을 했습니다.”
허 이사장은 한 예를 들었다. “정 총장은 합수부 수사관이 ‘김재규가 어디서 박 대통령과 식사를 했느냐’고 묻자 청와대 본관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총소리 역시 자하문에서 나는 소리인줄 알았다고 주장했어요. 김재규가 대통령을 저격한 뒤 험한 몰골로 정 총장에게 왔습니다. 총소리가 나고 얼마 안 지나서인데 청와대 본관 식당에서는 경호 때문에 시해 자체가 불가능하고, 시해를 했더라도 청와대에 가득한 경호원들이 김재규를 그냥 궁정동으로 가도록 두었겠습니까.” 허 이사장은 “6.25를 겪은 4성 장군이 20여m 떨어진 곳에서 난 총소리를 먼 거리의 자하문에서 난 곳으로 알았다면 차라리 코미디”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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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화는 김재규가 추천해 총장된 사람
정 총장은 합수부의 수사에서 계속 “김재규와 잘 모르는 사이다. 도움 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정 총장은 김재규가 추천해 참모총장이 된 사람입니다. 당시 노재현 국방장관은 자신의 동기인 육사 3기 박희동 장군을 밀었어요. 박 대통령에게 ‘인사 적체 해소’를 내세워 육사 5기인 정 총장을 추천한 사람이 김재규입니다.”
허 이사장은 수사관으로서 도저히 정 총장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전두환 사령관이 자신을 동경사(동해안경비사령부)로 전출을 보내려 하자 반발했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릅니다.” 그는 “전 사령관의 동경사 전출을 정 총장이 노 장관에게 건의했지만 노 장관은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일하게 하라”고 말했고 전 사령관도 12.12 이후에 그 얘기를 노 장관에게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허 이사장은 10.26의 밤, 육본 벙커에서의 정 총장 행동도 석연치 않았다고 했다. “대통령이 유고일 땐 당연히 전방 등의 상황을 점검하고 해당 조치를 해야 합니다. 당연히 국무총리와 국방장관, 주한미군사령관에게도 보고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병력을 동원할 수 없어요. 그런데 그날 정 총장은 김재규와 상의해 병력을 보고도 없이 움직였습니다. 당연히 공범 혹은 동조 의심을 받을 만한 것이죠.”
나중에 문제가 된 최규하 당시 대통령권한대행의 재가 역시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허 이사장의 말이다. “합수본부장은 장성을 조사하거나 연행할 때 관례적으로 국방장관과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지만 재가를 얻지는 않습니다. 12.12의 밤에 최 대통령에게 간 것은 재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보고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경복궁 30단에 모여 있던 장군들은 군에 어두운 최 대통령의 이해와 설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허 이사장은 “일반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 같은 군 사정으로 오해가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재규-김계원-정승화의 사태장악, 얼마든지 궁정쿠데타할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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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이사장은 10.26의 세 주역의 지위를 잘 살펴보라고 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정보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김계원 비서실장은 차지철이 없는 청와대를, 정 총장은 군을 장악하고 있었어요. 세 사람의 묵계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 셋이면 얼마든지 궁정 쿠데타가 가능한 상황 아닙니까?”
그는 “물증이 없고 정황 근거만 있는 속에서 수사진은 정 총장의 끝없는 모호한 태도에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이 12.12의 계기였다”고 말했다.
허 이사장은 1995년 문민정부의 12.12 재심의로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그 자신의 상처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좌파가 엄청난 승리를 한 것이 당시의 재심의”라고 평가했다. 국가의 이름으로 국가의 공권력을 단죄하게 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고, 반공의 큰 축을 여지없이 뽑아 버린 일이었다는 것이다.
주객을 전도 시킨 문민정부 재판
조영환 올인코리아 대표는 “12.12사건은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재조명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로, ‘12.12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왜곡’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 쿠데타를 일으킨 김재규와 그 일당을 제대로 수사한 전두환의 합수부가 쿠데타 세력으로 후에 김영삼 정권의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서 규정된 것은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로 역사바로세우기재판은 법적 하자를 재검토를 받아야 한다는 것.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12.12사건 관련자들에게 적용하기 위해 급조한 특별법이 헌법 제 13조의 형벌불소급, 일사부재리, 소급입법제한 등을 위반한 점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 번째로, 1980년 광주 사태 주역과 2008년 광우병 사태 주축세력이 거의 동일하다는 점에서 12.12사건을 쿠데타로 몰아간 민주화세력의 진짜 정체를 환갑이 지난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제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허 이사장은 “좀 더 기다릴 것이다. 때가 되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겠다”고 별렀다.
[자유민주·시장경제의 파수꾼 - 뉴데일리/newdaily.co.kr]
**황장엽 선생에 대한 생각들이 두 갈래입니다.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누가 뭐라 합니까? 문제는 그를 추종하고 ,그의 손발이 되어 주고,그를 널리 칭송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황선생은 글만 쓰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대부분의 행동하는 우익과 글을쓴 우익들과 386 주사파 출신들과 탈북자의 일부를 모두 아우르는 영웅이 되어 하나의 거대한 오르그(세포조직)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김진홍과 한 조직이 됐고,사무실들도 한 건물 같은 층에 집합해 있읍니다. 벌써부터 김문수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재오를 만나 빨갱이라 하더니 지금은 "이재오와 김진홍을 의심하면 바로 그 사람이 검증받아야 할 사람이다"하면서 비호하는 연설까지 했습니다. 성향이 자꾸 바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국민 일반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사람들이 있으면 의심을 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마도 이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의심하는 사람을 분열주의자요 극우요 반공병에 걸린 정신병자라며 매도합니다. 빨갱이들이 만들어 놓은 망국의 문화인 것입니다. 신지호가 전향을 했다면서 가장 강조한 것은 '반공정책의 포기' 였습니다. 이것이 전향입니까?
김동길 선생님도 남신우 선생님도 이러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기수님은 황장엽을 최고의 애국자라고 추켜 올리고 계십니다. 저는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저보다 정보를 많이 접하는 사람과 대화를 갖습니다. 항선생이 전향했다고 누가 보증을 했던가요?북한 주민의 실상은 황선생으로부타가 아니라 수 많은 탈북자들의 수기들과 책으로부터 더 많이 습득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계신 남신우 선생님은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를 읽으라고 일독을 권하시지만 그 책에는 아래와 같이 김일성 찬양이 듫어 있습니다 정보 판단을 하려면 첩보가 많이 있어야 합니다.그가 완전전향해서 애국자가 되었다는 판단은 무슨 근거, 몇 개의 근거를 가지고 하셨는지 자문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전 .현직 정보기관 사람들과고 의견을 나누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제가 아는 한 그런 증거는 없습니다.**
지만원-시국진단 9월호 ...'필자가 만난 간첩들 '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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