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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1.22 05:07
- ▲ 김상민 기자
단잠에 빠진 기자는 꿈인 줄만 알았다
한 남자가 고함치듯 외쳤다 "나가!"
몸을 일으켰지만 모두 휘청대고 있었다
순간 땀이 났다… '지진이다!'
지난 20일(현지시각) 오전 6시 10분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한국 선교사가 운영하는 고아원 거실 바닥이 심하게 기우뚱거렸다. 단잠에 빠진 기자는 꿈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머리가 심하게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내 한 남자가 고함치듯 외쳤다. "나가!"
아이티 취재에 동행한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 김이수 대리의 목소리였다. 눈이 번쩍 뜨였다. 생시였다. 자고 있던 사람들이 건물을 뛰쳐나가려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좌우로 휘청대고 있었다. 잠이 깨지 않은 탓이었을까. 아니었다. 내 눈은 좌우 시력 모두 1.5다. 순간 땀이 났다. '지진이다!'
거실 바닥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내 몸은 무릎이 다 펴지기 전부터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넘어졌고, 기었다. 미친 듯이 기었다. 이틀 전 포르토프랭스 시내에서 봤던 시신이 기억났다. 콘크리트 건물 천장에 샌드위치처럼 깔려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 팔꿈치와 무릎은 모두 찢어져 있었다. 오른쪽 손바닥은 벽돌가루가 묻어 하얗게 변했다. 왼쪽 손바닥은 10㎝ 정도가 찢어져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양발 엄지발톱에서도 피가 흘렀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여진이 멈췄고 다행히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날 아침 지진 강도가 6.1였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아이티에 도착한 17일 이후 하루가 일주일처럼 느껴졌다. 지진이 다시 엄습할 수 있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여진은 이번이 두 번째 경험이었다. 18일 아침 처음 여진을 겪었을 때 '그러려니'하며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잤다. 하지만 지진으로 죽은 사람들 모습을 직접 본 뒤로는 건물 밖에 놓인 평상에서 자기 시작했다. 19일 저녁엔 평상에 자리가 없어 1층에서 잤는데 지진이 또 찾아와 생명을 위협했다.
지진을 두 차례나 겪게 되자 아이들이 탁탁거리며 뛰어다니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진으로 다친 환자들이 모인 포르토프랭스 시내의 한 병원을 방문했다. 병원 환자들은 건물 밖에 나와 있었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조명선 팀장은 "환자들이 여진에 겁을 먹고 밖으로 나온 것"이라며 "의료진이 병원 주변에서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진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만난 소녀 죠시(14)는 혼자였다. 12일 지진으로 부모를 잃었고 왼쪽 팔도 잃었다. 죠시와 환자들은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도와 달라"며 애원했다. 병원을 떠난 뒤로도 죠시의 얼굴과 목소리가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았다.
조선일보와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가 함께 펼치는 아이티 돕기에 21일(오후 9시)까지 12억3878만원 상당의 금품이 모였다. 효성그룹 5만달러, 하이텍알씨디코리아 2765만원,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 1000만원을 각각 보내왔다.
▲아이티돕기 계좌번호: 우리은행 1005-201-048577(예금주 굿네이버스)
▲문의: (02)671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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