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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大中 칼럼] 법대(法大) 유감 / '우리 법 연구회'와 '너희 법 연구회

김대중·顧問

깊은 세상 경험과넓은 상식 외면하고
출세로 매진한 법대생을 경계했던 교수님
지금 튀는 판결의 주인공들 바로 그 '법대생' 아닌가

대학 초년생 시절, 민법(民法)을 가르쳤던 김증한(金曾漢)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법과(法科)대학이란 똑똑한 아이들 데려다가 바보 만들어 내보내는 곳"이라고.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성적 좋은 학생들 뽑아다가 판·검사 만드는 학교라서 그렇게 입학경쟁이 치열한데 그것을 '바보 만드는 곳'이라니, 교수의 말장난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교수가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김 교수는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고시공부에 돌입하면서 학교수업은 뒷전이고 절(寺)이나 고향집(당시는 고시촌이 없었다)에 처박혀 육법전서(六法全書)와 씨름하는 학생들이 인문(人文)교육과 세상 물정에 소홀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세상의 이치와 삶의 가치, 교양과 상식. 이런 것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출세를 향해 매진하는 젊은이, 고등고시를 인생의 유일한 지름길로 여기는 학생들이 결국 인간적으로 불완전한, 공부만 잘하면 만사가 형통이라는 오류에 빠진 외골수 인간으로 자라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물론 김 교수의 생각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다. 나라의 발전에 기여한 많은 인재(人材)가 법률 공부를 통해서 나왔고 그것이 나라의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데 큰 틀을 제공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개발의 논리가 득세하고 권력이 거기에 앞장섰던 시절, 법을 수행하는 많은 법조인들이 뒤틀리는 세상을 법으로 지켜 싱그러운 바람을 불어주곤 했었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의 지적은 여전히 옳은 측면이 있다. 인신(人身)을 규제하고 재화(財貨)를 다투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동시에 인간이 인간사에 개입하고 인간을 심판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절대선(絶對善)의 영역이다. 그래도 세상을 아노미 상태로 둘 수 없기에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때 쓰도록 '법'이라는 잣대와 '양심'이라는 보조기구를 두었다(헌법 103조). 법을 제대로 해석하고 양심을 제대로 발동하기 위해 법을 다루는 사람은 보다 많은 지식과 깊은 경험과 넓은 상식을 지녀야 하는데 법대생들은 오로지 사전적(辭典的) 지식에 매달리는 사태를 김 교수는 걱정한 것이다. 그가 말한 '바보'는 법을 다룰 자격이 없는 인간적 장애를 의미한 것이었다.

교수는 이런 의미의 말도 했었다. "가족 중에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은 교통사고 재판을 하면 안 된다. 가족 중에 의료사고를 당한 사람은 의료사고나 분쟁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성(性)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말의 깊은 뜻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어떤 편견이나 선입감도 인간을 재단하는 데 있어서는 방해가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이었다. 사회의 공분을 사는 판결은 대체로 자신의 잣대가 지선(至善)인 양 여기는 아집과 세상에 대한 저항감을 진보적이라고 여기는 착각에서 나왔다.

원로 법조인들은 최근 강기갑 무죄, PD수첩 무죄 등 일련의 '편향적 판결'을 두고 헌법이 명시한 재판관의 '양심'이란 판사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사회에서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이는 가치나 이념을 말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양심은 신념과 다르다. 법은 건전한 상식이어야 한다고 배웠다. 일반사회인들의 법 감정과 맞아야 한다. 과거 사법이 권력에 저항했을 때 박수받은 것은 그것이 일반사회인의 법 감정, 정치감각, 사회적 형평 감각과 맞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용기가 있어 박수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강기갑 의원의 '공중부양'사건이 군부독재 시절 민주탄압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이고 법원이 그에게 무죄 판결을 했다면 온 사회의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일반사회의 법 감정은 만고불변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따라서 재판도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간통죄, 사형제도, 동성결혼 등에 대한 상식과 법 감정은 변하고 있고 따라서 판결도 달라지고 있다. 이번 '튀는 판결'들이 사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법해석이나 '양심'의 문제라기보다 그 판결이 사회적 보편성, 시대적 법 감정 등과 너무나 동떨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사회는 이제 국회의 무기력과 폭력에 분노하고 언론의 왜곡보도를 용납하지 않는 시대로 가고 있다. 그것을 몰랐거나 무식해서 용감했다면 이들은 김 교수가 지적한 '법대생'일 것이다. // 20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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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우리 법 연구회'와 '너희 법 연구회'

 

대법원이 법원 내 일부 판사 서클인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여론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우리법연구회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구체적 내용이 없다"고 했다. 우리법연구회 회장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학술연구단체로서의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법연구회는 자기네 단체가 특정 이념으로 뭉친 단체가 아니라 순수 학술 연구단체라고 주장한다. 대법원에 작년 9월 정식 학회로 등록했고 공개 세미나를 열고 있으며 그 결과를 연구 논문집으로 발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판사 집단 서명을 받아 이른바 '제2차 사법파동'을 일으켜 당시 김용철 대법원장 사퇴를 몰고 왔던 판사들이 만든 단체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사법부 내 '실세(實勢) 단체'로 떠올랐다. 이 단체 회원 출신인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가 결정한 대법관 후보 3명이 마땅치 않다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고, 초대 회장을 지낸 박시환 서울지법 부장판사도 서열 중심의 대법관 인사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표를 던졌다. 박시환씨는 노무현 정권 임기 중인 2005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2008년 11월 촛불시위 담당 판사들에게 재판을 신속히 하라는 이메일을 보낸 신영철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2009년 2월 대법관에 임명되자 이메일을 보낸 사실을 뒤늦게 문제 삼으며 신 대법관 사퇴 촉구에 앞장섰었다.

이 단체가 스스로는 학술 연구단체라고 하지만 상법이나 민법 같은 정치성이 없는 분야에서 어떤 돋보일 만한 법 이론이나 판례 연구를 내놓았다는 소식은 없다. 이 단체 회장을 했던 판사는 자기의 블로그에 "박시환 정신으로 함께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박시환 대법관은 작년 신영철 사퇴 파동과 관련해 판사들이 대법원 징계 절차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 여론이 일자 "절차와 규정은 합리적인 상황에서나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우리법연구회는 법원 내 견해를 달리하는 판사들로부터 '너희 법 연구회'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고 한다. 법원을 한쪽 정치 성향에 치우쳐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젊은 판사들이 점거한 '해방구'로 만들어 오늘의 사태를 불러온 것은 그들이 대한민국 법률을 '우리 법'과 '너희 법'으로 나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201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