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팔자 고치기' 우리만의 노하우
- 입력 : 2010.01.26 22:02
- ▲ 김창균 정치부장
우리도 잘살고 싶다는 개발도상국들, 한국 發展史에 관심
식민지-내전 딛고 일궈낸 고속 성장 자랑스러운 브랜드 삼자
최근 만난 총리실 관계자는 "외국에 나가면 '한국이 부럽다' '한국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인사치레만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콩고 민주공화국(옛 자이르)을 방문했을 때 얘기를 꺼냈다.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39)은 그를 반갑게 맞더니 "한국으로부터 도움받고 싶은 것이 딱 하나 있다. 잘사는 나라가 되는 노하우를 전수받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난 2005년 한국을 방문,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공장 등을 둘러봤던 카빌라 대통령은 한국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신 나라는 식민지(植民地)였고 내전까지 겪지 않았느냐. 한때는 우리보다 못살았다. 그러나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한국은 저만치 달려갔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작년 봄, 폴란드 시사(時事) 주간지 기자를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 온 그는 30분가량 관련 주제에 대해 묻더니 "솔직히 개인적으로 궁금한 일은 따로 있다"며 화제를 돌렸다.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는 그는 "잘사는 나라가 됐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는 "한국엔 어떤 리더십이 있었길래 초고속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냐"고 물었다. 한국 와서 만난 몇몇 사람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독재(獨裁)정권이라서 가능했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독재가 경제성장의 열쇠라면 동유럽 국가들은 벌써 4만달러 클럽에 가입했을 것"이라면서 그런 설명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필자는 국가지도자가 우리 여건에 맞는 수출(輸出)주도 성장전략을 선택한 점, 선택(選擇)과 집중을 통해 한정된 자원의 효율을 극대화한 점, '잘살 수 있다'는 비전 아래 국민 에너지를 결집한 점 등을 어설프게나마 설명했다.
가정이나 국가나 형편이 넉넉지 못한 공동체는 "남 부럽지 않게 잘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그래서 살림이 여유로운 이웃을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부(富)의 규모만을 따진다면 대한민국은 정상급 국가는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순위는 15위이고, 1인당 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아직 50위권 밖에 머문다. 그런데도 개발도상국가들은 한국을 주목하고 한국을 배우고 싶어한다. 왜일까.
우선은 한국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맨주먹으로 출발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문화관광부 고위 관계자는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보다 한국의 경제발전 스토리에 훨씬 관심이 많다. 19세기 말에 이미 제국(帝國) 열강 반열에 올랐던 일본은 애초부터 별세계 얘기인 반면, 한국은 '따라 하기'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또 하나 한국의 경제성장이 초고속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미래의 번영(繁榮)을 위해선 현재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즐거움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쓰는 일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100년 뒤, 혹은 그 이후에나 결실을 볼 수 있다면 선뜻 결심이 서지 않는다. 자식 때쯤부터는 살림이 피기 시작해서, 손자 세대에는 처지가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을 때 "그래, 한번 참고 노력해 보자"는 각오가 생긴다. 반세기 전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품었던 바로 그 결의다. 그 결의는 실천에 옮겨져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
우리는 남의 원조(援助)를 받아 경제의 기틀을 세웠고, 이제 막 '남을 원조할 수 있는 나라' 클럽에 명단을 올렸다. 현금이나 물자를 지원하는 것만이 원조가 아니다. 우리 형편이 남을 돕는다고 여기저기 거액을 내놓을 만큼 여유있는 것도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해방된 전세계 140여개국 중 60년 만에 유일하게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한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것 자체가 개발도상국들에겐 절실한 일이다. 이런 도움을 주고받다 보면 경제협력도 활발해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제2의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제3세계 국가들에게 '두 세대 만에 나라 팔자 고친' 노하우를 우리 브랜드 삼아 마케팅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우리 현대사를 되돌아보는 각종 이벤트가 준비 중이다. 더할 수 없이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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