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장군이 기록한 '6·25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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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6.25 03:10 / 수정 : 2011.06.26 10:58
윌리엄 T. 와이블러드 엮음|문관현 등 옮김|플래닛미디어|820쪽|3만8000원
"미 육군성 작전연구실 소속 엘리스 존슨 박사가 다음 주 안에 지상군을 근접지원하기 위한 원자폭탄 사용의 가능성과 효과에 대해 비판적으로 분석한 연구결과를 극동군사령부에 제공한다고 제안했습니다."(505쪽)
1·2차 세계대전이나 6·25전쟁 같은 대규모 전쟁에서 고위 지휘관이 하루하루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를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미국 해군에서는 일기 쓰기가 금지돼 있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맥아더 휘하의 미 극동공군사령관이었던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은 일기를 썼다. 앞의 내용은 장군의 1950년 12월 1일 일기에 포함된 내용. 미군이 한반도에서 원자폭탄의 전술적 사용을 심각하고 구체적으로 검토했음을 보여주는 비밀전문(수신은 공군참모총장)이다.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일기는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한·미 양국군이 패퇴해 극도로 혼란스러웠던 전쟁 초기부터 심장발작을 일으켜 극동공군사령관을 그만둔 1951년 5월 20일까지 이어진다. 덕택에 우리는 6·25전쟁의 초반 가장 중요했던 시기에 미 공군의 역할을 상세히 알 수 있다.
- 1·4 후퇴 이후인 1951년 1월 28일 수원으로 날아온 맥아더(가운데)와 함께한 스트레이트마이어(왼쪽)와 제8군사령관 매슈 리지웨이 중장. /플래닛미디어 제공
그의 일기에는 또 원자폭탄 사용 검토를 포함, 여러 비화가 담겨 있다. 미군 전투기의 오인사격으로 유엔군의 일원이던 영국 군인 41명이 죽거나 다친 사건도 소개됐다. 그는 1950년 9월 24일자 일기에서 "아군 전투기가 영국군 여단에 오인사격을 가했다. 현재로선 사상자 규모를 알 수 없다"고 적었다. 일기는 미군기가 한때 구소련의 국경선을 침범, 미군 책임자가 지휘권을 박탈당하고 조종사들이 군사법정에 서게 됐다는 내용도 공개했다. 1950년 10월 12일자 일기에는 "(미군) F-80 전투기 2대가 1950년 10월 8일 15시 20분쯤 소련 수카야 레츠카 인근 공항에서 소련 항공기를 공격했다"고 돼 있다.
미국의 전쟁사가인 엮은이가 서문에서 "스트레이트마이어는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세 가지 전쟁을 치러야 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전쟁은 '공산주의들과 싸운 전쟁'이었고, 나머지는 '언론과의 전쟁' 그리고 '미 육군 및 해군과의 전쟁'이었다"고 적었듯이 그의 일기에는 당시 미 육·해·공군 간의 갈등도 잘 나타나 있다. 최근 국방개혁의 화두가 되고 있는 3군 합동성 강화 문제와 관련해서도 실감 나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전역 후 미국 내 보수주의 운동에 투신한 그가 1954년 '아메리칸 머큐리'란 잡지에 쓴 '오늘날 미국의 14계명'을 보면 군인으로서 그의 정신이 잘 드러난다. '중국 공산당에게 더 이상 1인치의 땅도 내주지 마라'로 시작하는 계명은 '모든 미국 시민들은 지방, 의회,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 투표해야 한다'로 끝난다. 국방부를 출입했던 현직 기자와 공군 장교들이 의기투합해 함께 번역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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