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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울시민은 걷고 싶다… 인도 보행 막는 무단 적치물

[서울] 서울시민은 걷고 싶다… 인도 보행 막는 무단 적치물

  • 기사
  • 입력 : 2011.10.03 03:06

[상가밀집 지역들 통행 힘들어]
상품 진열장 같은 거리 - 을지로 2·3·4, 퇴계로 4·5가 "사람이 차도로 통행할 정도"
단속에 반발하는 상인들 - 과태료 부과해도 30% 안 내… 주의 주는 구청직원 폭행도

지난달 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이화여대 근처 옷가게 앞을 지나던 대학생 이지현(여·25)씨는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인도 반대편에서 오던 행인을 피하려다 길에 진열한 옷을 넘어뜨리는 바람에 가게 주인과 시비가 붙은 것. 하필 이날 도로는 바닥이 젖어 있었고 쏟아진 옷들이 더러워지자 주인은 이씨에게 변상을 요구했다. 이씨는 "사람이 다니는 길에 물건을 둔 게 잘못 아니냐"며 따졌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경찰이 출동하고 주인이 옷을 가게 안으로 옮기는 것으로 상황이 마무리됐지만 이씨는 불쾌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이처럼 인도에 물건을 쌓아두는 건 불법이다. 도로법 제38조에 따라 별도로 허가를 받지 않으면 인도 등 도로에 함부로 쌓아둔 물건은 모두 불법 적치물에 해당한다. 공사나 하역을 위해 임시로 도로변에 물건을 쌓아두는 게 아닌 이상 사유지가 아닌 곳에 함부로 물건을 장기간 둘 수 없다.

2일 오후 중구 을지로6가 평화시장 상점 앞 인도에 널린 불법 적치물들 사이로 행인들이 걸어가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인도가 상품 진열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서울 시내 곳곳은 무단 진열한 상품이나 광고물 등 '불법 적치물'로 혼잡하다. 상가 밀집지역이나 재래시장 등에서 더 심하다.

철물점이 밀집한 을지로 2~3가 일대 폭 1m 남짓한 인도는 상점에서 내놓은 물건들이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었다. 인테리어 상점 앞에는 7~8㎏ 나가는 벽재 타일들이 행인이 부딪치면 금방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게 서 있고 공사에 쓰이는 목재, 철 제품 등이 먼지를 날리며 쌓여 있었다.

을지로 4가 가구 거리에서는 상인들이 커다란 탁자와 소파 등을 인도에 깔아놓은 채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퇴계로 4~5가 사이 500m '오토바이 거리'에는 상점마다 오토바이 20~30대를 인도에 세워놓아 걸어 다닐 공간이 거의 없었다. 송현숙(51·강동구 명일동)씨는 "여길 지나려면 번번이 차도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래도 되는 거냐"고 되물었다.

각종 스포츠의류 상점이 모인 평화시장 앞 도로에는 포장도 뜯지 않은 상품이 성인 키만큼 쌓여 있고 이들을 운반하는 데 쓰이는 손수레와 자전거가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공간만 남아 있었다. 15년 동안 가방 장사를 해온 김석필(47)씨는 "같은 품목을 파는 가게가 많아서 경쟁적으로 물건을 내놓지 않으면 손님들이 장사 안 하는 줄 알고 지나가 버린다"며 "오랫동안 이랬는데 이제 와서 보행권이라고 트집 잡으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서창수 중구 건설관리과장은 "적치물에 걸려 옷이 찢어졌다는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자주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두영 서울시 가로환경개선팀 주무관은 "불법인 만큼 길을 걷다가 불법 적치물에 걸려 넘어지거나 다치면 업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불법 적치물에 대한 단속 권한은 각 자치구에 있다. 보행이 불편하다는 민원이 자주 들어오거나 계속해서 불법 적치물을 쌓아두다가 걸리면 위반 면적 1㎡당 과태료 10만원을 매긴다.

작년 불법 적치물에 대해 각 구는 모두 9519건(22억1749만원)의 과태료를 매겼으나 6548건(16억5238만원)만 납부됐다. 걸린 3명 중 1명은 과태료를 내지 않았다. 김병철 서울시 가로환경개선팀장은 "상인 반발이 심해 자치구 직원들이 단속에 나가도 과태료를 매기기보다 주의를 주는 데 그쳐 잘 개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종로구 옥인동 한 마트에서는 길가에까지 판매 상품을 진열해놓은 것을 단속하려 하자 마트 직원 정모(28)씨 등 3명이 "왜 어려운 우리만 단속하느냐"며 단속 나온 종로구 직원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적용 기준이 애매한 곳도 있다. 종로구 공평동 안쪽 거리에 있는 술집·카페 등은 가게 앞 도로에 테이블을 놓아두고 장사하고 있었다. 이두영 주무관은 "건축법 제26조에 따라 각 자치구에서 건축 허가를 내줄 때 도로에서 2~3m 되는 '건축후퇴선' 구역은 나중에 도로 확장을 위해 쓰일 수 있어 영리나 개인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주들은 "어차피 비어 있는 땅 놀리면 뭐하냐"며 버젓이 장사하고 있고, 구청 직원들도 과잉 단속이라 느끼는지 대체로 그냥 주의해달라고 당부만 전하고 돌아온다.

길가에 나부끼는 입간판, 에어라이트(풍선 형태로 만든 광고물) 등 불법 광고물도 골치다. 주로 종로구나 중구 등 도심 상권에 여기저기 널려 보행을 방해하고 경관을 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