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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칼럼] '가짜 토론'은 민주주의의 敵이다

[윤평중 칼럼] '가짜 토론'은 민주주의의 敵이다

  •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  

    입력 : 2012.12.06 22:50

    이정희 후보의 强性 화법은 감정적 독설과 인격 모독이란
    反토론적 기법에 의존한 것… 잠시 대중 현혹했을지 몰라도
    선동과 궤변의 악영향을 입증… 민주주의는 '사실 존중'서 시작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지난 4일 밤 열린 18대 대선 후보 첫 TV 토론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스타 탄생! 이정희'를 자축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은 각기 자당(自黨) 후보가 선전(善戰)했다고 자위하면서도 볼멘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TV 토론을 주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와 토론 방식을 결정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이하 선방위)에는 시민의 항의가 빗발친다. "초등학생 토론만도 못하다" "토론의 의미조차 모르는 선관위" 등의 비난이 쏟아지는 중이다.

    선관위와 선방위로선 억울할 수도 있다. 특히 2004년에 창설된 선방위는 그동안 여러 선거를 치르면서 공신력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추천한 위원을 포함, 11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선방위는 치열한 논의 끝에 현행 토론 방식을 결정했다. 후보자들에게 "반론과 재반론의 기회를 주고 토론의 긴장성을 높여 후보자의 정책과 자질을 판단하는 데 획기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룰을 정했다"는 게 선방위의 변(辯)이다.

    하지만 지금의 후폭풍은 선방위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입증한다. 기계적 공정성에 너무 신경을 쓴 탓에 토론의 긴장도가 떨어지고 정책 검증이 부실해졌다는 게 객관적 총평(總評)이므로 토론 방식을 바꾸는 게 적절하다. 하지만 2·3차 TV 토론을 남겨 둔 이 시점에 문제의 핵심은 선방위의 시행착오 여부가 아니다. 이해 당사자들이 동의한다면 토론의 룰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선방위가 정한 토론 방식과 민주정치의 큰 원칙을 후보자들이 1차 TV 토론에서 충실히 지켰느냐 하는 점이다.

    이런 잣대로 보면 '이정희의 원맨쇼였다'는 평가는 정확지 않다. 오히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토론이 낙제점에 가까운 데 비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평년작을 거두었다. 얼핏 이정희 후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달변가로 보인다. 명쾌한 어투, 신속한 공격, 상세한 구체적 사례 제시로 논적(論敵)을 자신의 프레임 안으로 자유자재로 유인해 함정에 빠트린다. 대표적 사례가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직후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한 박근혜에게 유족 생활비 조로 건넨 6억원에 대해 "결국 부정한 돈 아니냐"며 몰아쳐 박 후보로 하여금 사회 환원을 약속하게 만든 장면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정희 후보의 강성(强性) 화법은 독설과 인격 모독을 통한 감정 건드리기라는 반(反)토론적 기법에 의존한다. 유창한 그녀의 언변은 기실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 의도 확대의 오류, 논점 일탈의 오류 등 각종 논리적 오류의 전시장이라 할 만한 화려한 테크닉에 힘입고 있다. 상대방에겐 즉답을 강요하면서 막상 자기 쪽 약점인 북한 미사일 발사나 서해 NLL 문제에 대해선 철저히 논점을 흐리면서 교묘하게 연막을 치는 태도는 토론의 기본 원칙인 정직성과 상호 신뢰성을 정면에서 위반한다.

    가장 치명적인 대목은 이정희 후보가 민주주의와 토론의 최대 공적(公敵)인 이분법적 흑백 논리를 시종일관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만이 정의와 진리를 대변한다며 낡은 운동권 논리로 모든 걸 난폭하게 재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논변의 달인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 이 후보의 화사한 언변은 궤변으로 타락하고 만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정수(精髓)였던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를 붕괴시킨 주범(主犯)이 바로 소피스트(궤변론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역사는 증언한다. 화려한 궤변으로 치장한 선동가가 현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인기 대중 정치인으로 떠오르는 개탄스러운 현상도 반복된다.

    이정희 후보는 잠시 대중을 현혹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선동과 궤변이 민주정치를 어지럽힌다는 쓰디쓴 교훈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이에 비해 박근혜 후보는 순발력은 부족했지만 안정감이 돋보였고, 문재인 후보는 존재감이 흐렸지만 진정성을 각인시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 후보와 문 후보가 선방위 지침에 따라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과 증거를 사용해 정책 경쟁을 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안의 다양한 가치관도 사실 판단이라는 궁극적 기초 위에서 비로소 존중될 수 있다. 민주적 삶의 근본이 사실을 존중하는 진실한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번 1차 TV 토론회가 보여준다. 진짜 토론과 가짜 토론을 구별하는 시민의 정치적 판단 능력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성패(成敗)를 결정하는 힘이다. 민주주의의 적(敵)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허위와 궤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