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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문물

★ Alaska를 Russia에서 사들인 William Se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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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ska를 Russia에서 사들인 William Seward

 

링컨과 스워드

Abraham Lincoln vs William Seward

 

미국 역사상 위기(crisis)를 기회(chance)로 만든 두 정치인

Abraham Lincoln과 William Seward

알래스카를 여행하면서 가끔 눈에 띄는 단어는 ‘스워드(Seward)’입니다.  

‘스워드’라는 이름의 항구도시가 있고,  

‘스워드 하이웨이(Seward Highway)’ 라는 고속도로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알래스카 주 사람들은 스워드라는 이름에 고개를 숙이고

그 이름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나아가  

후손들에게 물려주려 하고 있을까요? 

  

알래스카는 미국정부가 1867년 3월 30일 제정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를 주고 사들인 땅입니다.

  

1에이커 당 2센트를 주었으니,  

우리가 사용하는 평수로 환산한다면 1,200평에 2원을 준 셈입니다.  

그러나 146년 전의 달러가치로 환산했을 때 미국정부가 부담 하기에는 

 그렇게 녹녹치 않은 돈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미국 정치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알래스카 매입을  

주도한 사람은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스워드(William Seward)였습니다.  

당시에는 미국이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1861-65) 직후에 남부의  

산업화와  서부개발이 우선순위에서 먼저였기 때문에 거액을 지불하고

알래스카를 구입하겠다는 스워드의 제의에 대해 미국 의회와 언론은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먼 미래를 내다보며 알래스카의 전략적 가치를 예견했던  

스워드  장관은 사면초가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땅을 구입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 했습니다.   

당시 의회와 언론은 스워드가 사들인 알래스카를 ‘스워드의 무용지물 

(Seward’s Folly)’이라고 조롱했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앤드류 존슨의 이름을 따서 ‘앤드류 존슨의 북극 별장(Andrew Johnson’s Polar Bear Garden)’이라고 비난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엄청난 자원을 공급하는 원료공급기지로 부각되면서 미국 국민들은 알래스카가 단순한 하나의 주를 넘어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지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49년에 미국의 49번째 주로 승격되었습니다.

알래스카를 구입할 당시 스워드 장관은 핵무기나 핵잠수함 시대를 예견하지 못했

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알래스카를 매입한 덕분에 1세기가 난 후 미국은 태평양을 영해처럼 사용하며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에 탕을 둔 세계전략을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래스카 사람들은 스워드 국무장관의 혜안이 없었더라면, 알래스카는 러시아의 영토로 남아 냉전시대에 수천기의 핵미사일이 미국을 향해 배치되었을 것 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알래스카 사람들에게 스워드는 미국 역사상 한 인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본토에서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든다면 링컨, 레이건, 워싱턴 대통령을 꼽지만, 알래스카에서는 스워드 장관이 1위에 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인구 2,700명의 항구 도시 스워드, 스워드 항에 정박 중인 잠수함 지원함 USS McKee 함과 핵잠수함 USS Alaska. 

자, 이 정도 되면 스워드라는 인물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스워드는 앤드류 존슨 대통령 당시 국무장관으로서 알래스카 매입을 추진했지만,

그를 처음으로 국무장관에 임명한 사람은 바로 링컨 대통령이었습니다.

 

스워드와 링컨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경쟁자였습니다.

스워드는 사실 링컨보다 훨씬 화려한 경력을 지닌 정치인이었습니다. 약관의 나이에 뉴욕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에 각각 두 번씩이나 당선되었으며,

젊은 변호사 시절부터 급진적일만큼 흑인인권 보호에 적극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지명도에서 앞서 있던 스워드에게 시골 출신의 링컨이 도전장을 던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경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스워드는 링컨에게 패하고말았습니다. 패배 당시 스워드가 느꼈을 상실감과 자괴감은 굳이 스워드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선에서 패한 스워드는 패배를 깨끗하게 시인하고 다음 날부터 미국 전역을 돌며 경쟁 상대였던 링컨 지원 유세에 열성적으로 나섰습니다.

 

이후 대통령에 당선 된 링컨은 스워드를 국무장관에 임명하였습니다.

스워드는 국무장관으로서 링컨 정부의 남북전쟁 수행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

하였습니다.

 

대통령으로 손색이 없는 두 정치인이 파트너가 되어 혼란기의 내각을 이끌어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스워드와 링컨 두 정치인이 후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이유는 자신보다 화려한 정치적 경력을 가진 경쟁자를 국무

장관으로 발탁할 수 있었던 링컨의 포용력 때문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국무장관으로서 충실하게

봉사했던 스워드의 겸손한 자세와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penetrating eye)’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까지 여러 면에서 미숙한 우리에게 링컨과 스워드 두 사람의 삶은 많은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런 점에서 저는 한 문장을 생각하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은 누군가를 따른다.(Everyone follows someone.)”

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 여러분은 누구를 따르며 살아오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여러분을 따르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모든 사람은 누군가를 따른다Everyone follows some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