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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에세이]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시니어 에세이]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입력 : 2014.12.29 10:20

“눈 깜짝할 사이 한 해가 지나갔다.” 이렇게 말한다면 지나치게 짧은 과장인 걸까. 아니, 어쩌면 오히려 너무 긴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눈 깜짝할 사이라면 1초. 그런데 아득하게 긴 인류의 역사가 겨우 1초에 해당된다니 말이다.

사람이 문명을 발달시킨 건 길게 잡아 7,000년 정도이고, 구석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50만년이란다. 하지만 150억년에 달하는 우주의 역사를 1년이란 시간으로 축소해 놓고 봤을 때 인류의 역사는 1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1년이란 시간에서 12월 31일 오후 11시 59분 40초부터 시작된 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11시 59분 41초에 살고 있는 건가.

우주의 역사에 비할 때 인류의 역사가 겨우 1초의 찰나라는데 허무한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현재 이곳에서의 1초는 결코 헛되이 지나는 시간이 아니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배트에 맞고 다시 투수에게 날아가는 시간, 인간의 주먹이 1t의 충격량을 만들어내는 시간, 재채기를 하면서 터져 나오는 침이 공기저항을 받지 않을 때 100m를 날아가는 시간, 총구를 떠난 총알이 900m를 날아가 표적을 관통하는 시간이다.

또한 대지를 적시는 420t의 빗방울을 피하기 위해 달팽이가 1cm를 달려가는 시간, 곤충이 생존을 위해 200번의 날갯짓을 하는 시간, 두꺼비의 혀가 지렁이를 낚아채는 시간,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486억kw의 에너지를 받는 시간, 2.4명의 새 생명이 탄생하는 시간, 1.3대의 승용차와 4.2대의 텔레비전이 생산되는 시간, 5,700ℓ의 탄산음료와 51t의 시멘트가 소모되는 시간, 22명의 여행자들이 국경을 넘으며 79개의 별이 사라지는 시간이다.


‘데스 워치’ 또는 ‘해피니스 워치’

교육방송에서 인상 깊게 보고 메모해뒀던 1초의 시간들이다. 우주력에서는 1초를 지날 뿐인 존재지만 지금 여기서는 이렇듯 엄청난 일들이 생겨나는 1초의 순간을 이어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런데 여태껏 잘 살아왔는가, 잘 살고 있는가, 잘 살아갈 것인가? 한 해가 저무는 이제 곰곰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1초의 의미를 새삼 짚어보게 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지금부터의 삶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스웨덴의 한 발명가는 남은 일생을 표시해 주는 손목시계를 개발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티커’라는 시계인데, 작동법은 간단해서 자신의 현재 나이와 건강 상태를 입력하면 그만이다. 건강 상태에는 운동량과 몸무게, 음주와 흡연 습관, 과거 병력과 가족력, 알레르기 증상까지 넣는다. 모든 걸 입력하고 나면 시계가 착용자의 남은 일생을 년 월 일 시 분 초 단위로 보여주게 된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알려주는 ‘데스 워치’라고 할 수도 있겠다.

발명가는 그러나 “남은 삶을 소중히 여기고 도움을 주는 ‘해피니스 워치’”라고 불렀다.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는데 의미를 부여하는 행복한 시계가 되느냐, 시간을 소홀히 보내면서 섬뜩한 죽음의 시계가 되느냐는 오직 착용자에게 달렸다. 설혹 습관과 병력 때문에 남은 일생이 시계에 적게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실제는 또 다를 수 있다. 병력이 있거나 술과 담배를 즐겨하면서 장수하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남은 일생을 굵고 길게 만드는 절대적인 요인은 없는지도 모른다. 단 하나, ‘성숙한 방어기제’만이 절대적이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대처하는데 현재와 미래의 행복이 달려 있다는 얘기다. 어떤 경우에도 “그럴 수 있으려니”하는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란 것이다. 자학은 말할 것도 없지만 자기도취나 이기주의가 아니다. 자신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부터 가지란 것이다.


내 마음속 누군가의 한마디

며칠 전 친구가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김창옥 서울여대 겸임교수의 강연이었다. 올해 여기까지 잘 왔노라, 나를 너그러이 받아들임으로써 내년을 잘 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내용이었다. 부친상을 당한 날도 웃으며 강의를 마무리해야 했다는 그는 “사는 게 강의처럼 그렇게 재밌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면서 “여러분은 삶이 날마다 즐겁고 신나나요?” 물음으로 말을 시작했다.

“강의한지 10여 년이 되는데 그 절반을 넘길 즈음 우울증이 오더라. 연세 많은 신부님께 상담을 했다. 눈감고 한마디 하시더라. ‘침묵을 배워.’ 2주간 프랑스의 수도원에 들어갔다. 아침에 산책하며 몸으로 땅을 만나보고, 기도하고프면 하고, 자기랑 대화하고프면 하라고 했다. 기도든 대화든 거짓말해선 안 된다, 짧게 하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니 내 마음속 누군가가 명확히 한마디 하더라.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근데 눈물이 나더라. 여러분도 그렇다. 여기까지 힘들게 온 자기를 한번만 봐주고 알아주면 좋겠다. 아침 저녁 시간되면 핸드폰 끄고 산책하고, 그 끝에 마음 편안해지면 거짓말하지 말고 짧게 자기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해보거나 기도를 해보는 게 좋겠다.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