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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Why] [달팽이 박사 생물학 이야기] '트랜스포머 세균'… 내성균 죽으면 DNA 주워먹고 수퍼박테리아로

[Why] [달팽이 박사 생물학 이야기] '트랜스포머 세균'… 내성균 죽으면 DNA 주워먹고 수퍼박테리아로

  •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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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5.09 03:00

      "야, 무슨 이런 일이?" 1928년 여름, 휴가를 보내고 연구실에 돌아온 영국 세균학자 플레밍(A Fleming·1881~1955)은 탄성을 질렀다. 휴가를 떠나기 전 실험대에 아무렇게나 밀쳐놨었던 배양접시 중 하나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고름 세균의 일종인 황색포도상구균을 배양한 접시의 화농균은 모두 멀쩡한 상태였는데, 그중 하나가 푸른곰팡이에 감염돼 모조리 죽어버렸던 것이다. 그해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 항생제(抗生劑)를 처음 찾아내 숱한 생명을 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알고 보니 이웃한 다른 실험실에서 천식 알레르기 연구용으로 키우던 푸른곰팡이의 홀씨가 날아와 자라서 페니실린(penicillin)을 분비, 세균들을 죽였던 것. '바람에 실려 온 페니실린'이다.

      한 끗 차이로 극락에서 지옥으로 가는 수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플레밍은 이렇게 말했다. "수천 가지 곰팡이가 있고, 수천 가지 세균이 있는데 마침 알맞은 시간과 장소에 푸른곰팡이 홀씨가 떨어진 것은 복권에 당첨된 것과 같다." 억세게 운 좋은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디 페니실린 꿈이나 꿔봤겠는가?

      
	플레밍
      플레밍은 1928년 세균을 죽이는 페니실린을 발견한 공로로 1945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인터넷 캡처
      하지만 우연한 발견이란 노력하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법이다. 플레밍은 또 다른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페니실린을 발명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이 만들었죠. 난 단지 그것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내가 단 하나 남보다 나았던 점은 그 대상을 흘려보내지 않고 끝까지 추적한 데 있었습니다." 얼마나 진솔한 울림을 주는 말인가.

      '페니실린(penicillin)'은 푸른곰팡이(Penicillium notatum)의 학명(學名) 중 속명(屬名)인 페니실리움(Penicillium)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플레밍은 기초과학 연구자였던 탓에 정제된 페니실린을 얻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하여 병리학자 플로리(H Florey)와 생화학자 체인(E B Chain)의 도움으로 1945년에 천연 페니실린을 생산했다. 그해에 이 3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미생물들도 죽살이치며 싸운다. 항생제란 세균이나 곰팡이가 상대를 해치기 위해 만드는 화학 물질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 오랑캐를 써 오랑캐를 무찌르듯 세균과 곰팡이에서 얻은 항생제로 되레 그들을 살해한다. 항생제는 세포벽 합성 효소 기능을 억제하거나 세포벽 파괴 효소 기능을 항진(亢進)시키며, 핵산(DNA) 복제를 저해하거나 세포막 구성 물질의 합성을 방해하여 상대편을 죽인다. 이렇게 항생제가 반응하는 부위나 기능이 각각 다른 까닭에 병원균의 특성에 따라 달리 처방한다.

      그런데 항생제도 함부로 쓰면 판판이 뒤탈이 난다. 세균들이 항생제에 만만하게 당하지만은 않는다. 동일 세균에 같은 항생제를 자주 쓰면 세균이 항생제의 작전을 잽싸게 알아차리고 맞선다. 일례로 돌연변이체인 내성 세균은 페니실린 분해 효소로 페니실린을 녹여 무력화시킨다. 그리하여 강력한 항생제에도 끄떡 않는 난공불락의 수퍼 세균이 생겨난다. 이런 균이 죽으면 보통 세균이 그놈의 DNA를 덥석 주워 먹고 곧바로 수퍼 박테리아가 된다.

      사람도 몸 안팎 수많은 미생물에게서 도움을 받는다. 가까운 예로 피부과 의사들이 목욕 시 때를 밀지 말고 샤워할 때 비누를 가능하면 쓰지 말라고 권한다. 살갗에 늘 붙박이로 사는 상재균(常在菌)이 항생제를 분비해 해로운 세균과 곰팡이를 죽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