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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asure I

[백두대간 에코 트레일ㅣ28~29구간 생태] 산악인을 닮은 강인한 나무, 생강나무

[백두대간 에코 트레일ㅣ28~29구간 생태] 산악인을 닮은 강인한 나무, 생강나무

  • 글 신준범 기자
  • 사진 최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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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3.18 22:02

    3월의 산에서 가장 먼저 피는 봄의 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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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랗게 꽃을 피운 생강나무.
    노랑은 봄의 색깔이다. 우리는 ‘봄’이라고 발음할 때 무의식적으로 노란색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까닭은 예부터 우리 땅에 노란색 봄꽃이 많아서다. 도시의 길가엔 개나리가 흐드러지고, 양지 바른 곳엔 양지꽃이 피고, 냇가엔 동의나물이 특유의 순수한 노란빛깔로 봄을 대변한다. 우리 산, 백두대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노랑은 생강나무다. 
    생강나무는 우리나라 산에 정말 많다. 보통 남부지방, 전라도권, 중부지방, 강원도권 등 많이 자라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지만 생강나무는 전국 어느 산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또 계곡 일대나 7부 능선 이하 사면, 고산 주능선처럼 산의 특정한 곳에서 자라는 수종이 많은데, 생강나무는 가릴 것 없이 산 전체에 골고루 분포한다. 
    그래서 등산인들은 생강나무와 자주 마주친다. 3월의 산에서 가장 먼저 겨울에 반기를 드는 용기 있는 노란꽃이 생강나무이며, 사람 눈높이에 있어 눈에 잘 띈다. 높이가 낮고 기온이 따뜻한 남도의 산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다운 산에서 처음 피는 봄꽃이 생강나무꽃이다. 등반으로 치면 가장 대담하고 실력 좋은 선등자이며, 무거운 짐을 솔선수범해서 지고 선두에서 러셀하는 봄의 대장격 나무가 생강나무다.
    이번 구간인 백두대간 이화령~포암산 주능선에서도 어렵지 않게 생강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흔히 “생강이 열리는 나무냐?”고 묻는 이들도 많은데, 잎이나 가지를 잘라 비비면 생강냄새가 난다고 하여 이름이 유래한다. 음식에 넣는 생강은 열대 아시아권이 원산지다. 
    한방에서는 매화처럼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일찍 꽃이 핀다 하여 ‘황매목’이라 한다. 가지를 잘게 썰어 약용으로 썼다는데, 위와 간을 튼튼히 하고 복통과 해열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꽃잎은 말려서 차를 만들어 먹고, 어린잎은 봄나물과 함께 무쳐 먹었다고 한다. 열매는 기름을 짜서 여인들의 머릿기름으로 썼다. 보통 동백나무 기름을 머릿기름으로 알고 있는데, 날씨가 추워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는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생강나무를 산동백나무라고 불렀다.  
    생강이 없던 옛날에는 실제로 향료로 썼다고 한다. 어린 가지와 잎을 말려 가루로 만들어 향료로 썼다는 것. 때문에 봄산에서는 생강나무 덕분에 눈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특유의 생강나무 향기도 산행하는 이들에게 맑은 자극을 준다. 
    우리나라 전역, 산의 지형과 고도에 상관없이 잘 자라는 만큼 생강나무는 생존력이 강하다. 우리나라가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려 노력하던 시절의, 작고 왜소하지만 억척스럽게 자식을 키웠던 우리 어머니들을 닮았다. 
    생강나무는 크지 않아, 최대한 자라도 3m를 넘지 못하는 관목이다. 하지만 참나무나 소나무 같은 큰 나무들 사이에서도 부족한 햇볕과 수분을 받아들이며 인내하고, 또 적은 양분을 아껴 쓰며 잘 자란다. 막강한 지배력의 소나무숲이나 참나무숲에서도 잘 어우러지며 자라는 친화력 높은 나무다.
    ‘식물 좀 안다’는 등산인들은 봄이면 항상 “이 꽃이 산수유일까? 생강나무일까?”하고 일행들에게 퀴즈를 낸다. 멀리서 보면 노란 꽃이 비슷해 보이지만 생강나무는 꽃이 둥글게 뭉친 모양이고, 산수유는 불꽃이 터지는 순간처럼 활짝 펼쳐져 있다. 또 산수유는 산에 없다. 도시나 마을 기슭에서 사람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다. 산에서 잘 사는 강인한 나무가 생강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