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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산행 르포 | 구례 오산] 오산과 함께하는 섬진강 ‘벚꽃엔딩’

[벚꽃 산행 르포 | 구례 오산] 오산과 함께하는 섬진강 ‘벚꽃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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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4.18 11:13

섬진강 벚꽃 놀이와 풍수명당 사성암 품은 오산~둥주리봉 종주 산행

[벚꽃 산행 르포 | 구례 오산]
오산만큼 구례를 속 시원히 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오산 활공장에 서면 구례 일대와 섬진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섬진강은 미인이다. 모래의 살은 하얗고 매끄러우며, 바람은 부드럽다. 허공에서 강물로 벚꽃이 흩날리고, 물결은 쉼 없이 봄의 황홀한 몰락을 실어 나른다. 마을 어귀에선 ‘벚꽃엔딩’ 노래가 흘러나오고, 지나간 사랑이 떠오른 여인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4월은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벚꽃 때문이다. 벚나무 만발한 길에 바람 불어 핑크빛 폭설이 쏟아진다면, 제 아무리 무뚝뚝한 사내라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첫사랑의 열병 같은 아름다움이 가슴속을 폭풍이 휘몰아치듯 뒤집어 놓으니 말이다.

[벚꽃 산행 르포 | 구례 오산]
섬진강 벚꽃이 용틀임하듯 가지를 휘감으며 만발했다. 4월 초, 오산과 둥주리봉 아래의 섬진강 일대는 벚꽃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 사진 구례군청 제공

봄은 짧고 여름은 길다. 벚꽃이 지면 봄도 지는 것. 기후가 변한 것이다. 짧은 봄을 즐기는 제대로 된 방법은, 벚꽃이 흩날리는 향기로운 바람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벚꽃 놀이 나온 인파에 섞여 나도 벚꽃이 되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가 보는 것이다. 그리곤 산에 올라 개운하게 땀 쫙 빼고 열린 하늘을 가슴에 담으면, 단 하루의 봄날이었다 해도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월간<山>은 벚꽃 여행과 산행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벚꽃 산행 르포 | 구례 오산]
둥주리봉의 백미인 배바위. 바위 정점에 데크 전망대가 있어 파노라마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구례는 지나치는 곳이었다. 용산역에서 도망치듯 밤 기차를 타고 내려와, 지리산 종주를 위해 성삼재로 혹은 화엄사로 가는 관문. 조금 긴장된, 설레는 지나침의 땅이었다. 지리산을 뺀 구례는 놀라웠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고 있었던 게 들통 났다. 산수유가 많은 건 알았는데 벚나무가 이토록 많은 줄 몰랐다. 

산꾼이 차로 이렇게 산을 올라도 되나 죄책감이 들 만큼 고도가 높아졌다. 사성암주차장에서 몇 걸음 딛자 생각을 삼켜버리는 장면이 나왔다. 노고단은 물론 넓은 구례 땅이 지도를 펼친 것처럼 드러났다. 날개가 없어도 도움닫기를 하면 날아오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야말로 날아오르기 좋은 활공장이었다.

고승들이 도를 닦은 사성암

[벚꽃 산행 르포 | 구례 오산]
섬진강을 따라 절정을 이룬 벚꽃 무리. 둥주리봉에서 동해마을로 하산하면 벚꽃이 만발한 섬진강변이다. 오산 초입인 죽암마을까지 벚꽃 데크길을 따라 걸으면, 자연스런 벚꽃 여행이 완성된다. / 사진 이원규

깎아지른 절벽에 거대한 기둥을 세운 약사유리광전 앞에서 눈이 휘둥그레진다. 보통 정성으로 지은 암자가 아니다. 법당에는 바위 절벽에 손톱으로 그렸다고 전해지는 약사여래의 선각線刻 그림이 있고, 이를 유리창 너머로 볼 수 있다. 암벽 사이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자 산신을 모신 산왕전이다. 옆으로 도선굴이 있다. 어둡고 습한 바위틈 속, 불자들이 밝힌 촛불과 복전함이 덩그러니 있다.

산신령을 모신 산왕전 앞에선 실로 왕의 경치가 펼쳐진다. 도선국사가 풍수공부를 완성했다는 곳임이 실감날 정도로 강과 들판, 지리산이 넓게 드러난다. 사성암은 배산임수의 전형으로 꼽히는 명당이라고 한다.

[벚꽃 산행 르포 | 구례 오산]
마고마을 갈림길 부근의 암봉에 올라 트인 경치를 즐긴다.

해발 530.8m에 불과한 오산을 두고 옛 현인들이 ‘백두산에서 대간을 타고 내려온 큰 산의 기운을 다시 백두산으로 반사경처럼 되돌리는 산’이라 해석했다. 산 속에 있으면 그 산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법, 오산은 지리산에서 수련하던 이들이 마무리 공부를 위해 찾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를 반증하듯 4명의 고승인 의상대사〮원효대사〮도선국사〮진각국사가 여기서 도를 닦았다고 하여 사성암四聖庵이라 불린다.

사성암을 떠나 제대로 산행해보려 마음 잡아보지만, 몇 걸음 안 가 오산 정상이다. 전망데크와 팔각정이 다시 한 번 속 시원한 경치를 보여 준다. 섬진강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송아지 눈처럼 순한 빛깔로 흘러가고 구례 평야와 지리산 줄기가 산수화처럼 뻗었다.

지리산은 닿을 수 없는 세상 밖 공간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반면 관광객으로 시끄러운 오산은 속세의 한가운데 같다. 오산은 구례읍에서 보면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 물을 자라가 먹고 있는 모습이어서 ‘자라 오鰲’자를 써서 오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능선을 타고 종주를 시작하자, 고요가 온 몸을 감싼다. 오산에서 남진을 시작하면 탈출로가 많지 않아 둥주리봉까지는 가야 하는데, 오르내림이 많고 하산 지점까지 9km 거리로 짧지 않아 체력에 자신이 없거나 여행 삼아 온 이들은 대부분 돌아선다. 

마지막 소나무 왕국, 오산

[벚꽃 산행 르포 | 구례 오산]
사성암 산왕전 앞에 서면 할 말을 잃게 하는 벼랑 끝 열린 경치가 반긴다. 우측으로 아스라이 반야봉의 엉덩이가 보인다.


[벚꽃 산행 르포 | 구례 오산]
배바위로 올라서는 계단길. 암릉구간엔 계단 같은 시설이 있어 위험한 곳은 드물다.

[벚꽃 산행 르포 | 구례 오산]
천국으로 이어질 것만 같은 핑크빛 벚꽃길. 구례 문척면 월전리 섬진강변길. / 사진 이원규

어느 산을 가더라도 생활력 강하고 영리한 참나무류 활엽수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기 마련인데, 오산은 드물게도 소나무의 땅이다. 주릉은 물론 지릉 위아래 가릴 것 없이 초록빛 솔잎이 상큼하게 영역을 과시하고 있다.

이미 경치를 과식했기에 소나무에 둘러싸인 매봉 꼭대기가 섭섭하지 않다. 수염 도사 같은 노간주가 간간이 섞여 날씬한 몸매로 다이어트를 권한다. 봄날의 햇살과 솔 내음 음미하며 걷는 이 길에 몸과 마음이 스르르 녹아든다. 차분히 정돈되는 기분, “잘 할 수 있어”라는 응원보다 말없이 함께 있음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산은 알고 있다. 

[벚꽃 산행 르포 | 구례 오산]

마고마을 갈림길에서 서쪽으로 툭 튀어나온 다이빙 점프대 같은 선바위에 올라, 바람을 맛본다. 햇살이 워낙 따스해 신록 전이건만, 봄 향기가 바람에서 묻어나는 것 같다. 한참 능선의 물결에 빠져 있는데, 퍼뜩 깨어난다. 개괄지가 나타난 것이다. 동쪽 사면의 나무를 모두 베어 민둥산이 되었다. 개괄지 가운데에 판잣집이 있고 편백나무 묘목으로 빼곡한 것으로 보아 산주가 편백숲을 일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득 임도를 만나는 곳에 솔봉 팔각정이 있다. 올해 여름은 얼마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려는지 3월의 햇살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뜨겁다. 팔각정 평상에 배낭을 배게 삼아 누워 벌컥벌컥 물을 들이킨다. 오산은 적재적소에 팔각정이 있어 경치와 그늘을 내어 준다.

능선종주가 심심해질 쯤 용의 등골처럼 힘 있게 솟은 배바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힘 쓸 것 없이 계단을 따라 바위를 올라서니, 풍경이 맛깔스런 전망데크다. 동쪽 맞은편 계관산과 사이 계곡인 중산천이 훤하다.

둥주리봉은 해발 690m, 모처럼 거칠게 숨을 내뿜으며 고도를 높인다. 정상엔 역시 2층 구조의 팔각정이 있어, 그늘에서 쾌적하게 땀을 식힌다. 북쪽 지리산은 아득하고, 남쪽 백운산의 영역에 가깝다. 호남정맥의 맹주 백운산이 막강한 덩치로 왕조를 이루었다.

시선을 멀리 두면 봄이 오고 있음이 실감난다. 능선 곳곳에서 투명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이, 씀바귀가 파릇파릇 살아나고, 작고 작은 노루귀가 그 섬세한 꽃잎을 틔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대부분의 등산객은 정상에서 동해마을로 내려가지만, 답사를 위해 용서마을로 길을 잡는다. 예상대로 등산객이 많지 않은 탓에  길이 낙엽에 묻혔으나 지능선이 뚜렷해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이정표의 팻말이 다 떨어져 기둥만 남은 갈림길에서 지능선을 버리고 내려선다. 빛깔이 고운 병풍바위가 든든한 용서마을에 닿자 토실토실한 백구 새끼 두 마리가 아장아장 뛰어와 손가락을 물며 장난친다.

산을 떠나는 길, 섬진강이랑 벚나무가 짝을 이뤄 뻗은 길을 차로 달리다 멈춘다. 오후의 햇살을 받아 살아 있는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섬진강, 끝없이 뻗은 벚나무, 5분이 넘도록 차 한 대 지나지 않는 시골 특유의 편안한 여백이 마음을 잡아끈다.

4월을 상상해 본다. 온 섬진강이 벚꽃의 몰락으로 가득할 그날을 그려본다. 아무렇지 않게 사람의 감각이 녹아나가고, 문득 지나간 사랑이 떠오른 사내가 쓴 웃음을 짓는다.

[오산]

530.8m
전남 구례군 문척면

산행거리 9.5㎞
산행시간 4시간 30분
산행난이도 중하(9부 능선에서 산행 시작할 수 있어)


[벚꽃 산행 르포 | 구례 오산]

산행길잡이

사성암 아래의 죽연마을에서 사성암 셔틀버스(010-5043-0188)가 운행한다.

10분 각격으로 운행하며 요금은 왕복 3,000원. 사성암 주차장에서 활공장을 거쳐 산왕전으로 올라서면 소원바위 뒤편으로 산길이 이어진다. 산길이 뚜렷하고 이정표가 많아 길찾기는 쉽다. 암릉 구간에는 데크계단이 있어 위험한 곳은 없다.

마고마을 갈림길 지나면 간벌한 개괄지가 나오고, 능선 사면 우회로를 지나면 임도가 나타난다.

간이 화장실이 있고 솔봉 이정표를 따라 100m만 가면 쉼터로 제격인 평상 정자가 있다. 둥주리봉에서는 동해마을로 바로 내려서는 길과 능선따라 100m 더 진행 용서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취재진은 답사를 위해 용서마을로 내려섰으나, 교통편이나 벚꽃 구경을 감안하면 동해마을로 하산하는 것을 추천한다.

동해마을에서부터 섬진강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벚나무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다.

벚꽃의 낭만을 즐기며 3km를 걸으면 죽연마을에 닿는다. 하산 후 자연스럽게 벚꽃 놀이로 연결되는 원점회귀 코스가 완성되는 셈이다.

교통

구례터미널에서 오산 입구인 죽연마을로 가는 버스가 1일 4회(07:30, 10:00, 13:20, 18:10) 운행. 동해마을에서 죽연마을을 거쳐 구례터미널로 나가는 버스가 1일 2회 운행. 동해마을에서 구례구역까지 1.7km 거리이므로 걸어서 이동해도 부담스럽지 않다. 용산역에서 구례구로 가는 KTX와 새마을·무궁화호 열차가 30~40분 간격(07:05~22:45)으로 운행한다.

구례지리산콜택시(061-781-3900).

숙식(지역번호 061)

[벚꽃 산행 르포 | 구례 오산]

구례읍내의 동아식당(782-5474) 가오리찜(대 3만 원, 중 2만 원)과 돼지족탕(대 3만 원, 중 2만 원)이 유명하다. 막걸리가 어울리는 시골식당으로 화려한 진미는 아니지만 요즘 유행하는 자극적인 요리들이 흉내 낼 수 없는 편안함이 있다. 읍내의 어부의집 (783-7155)은 식사하기 좋은 곳. 생선구이(1만 원)와 김치찌개 (8,000원)가 별미다.

가장 깔끔한 대형 숙소로 화엄사 입구에 한화리조트(782-2171)가 있다. 구례읍내에 게스트하우스 구례옥잠(010-7435-5353), 예일각모텔(782-5500) 등이 있다. 구례구역 앞에 섬진강모텔(783-0448)이 있다. 오산 입구에 장씨네펜션(781-0020)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