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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문물

삼성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규탄하며, ’工商農士‘ 로 의식을 혁명하자!’

삼성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규탄하며, ’工商農士‘ 로 의식을 혁명하자!’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어제 3년 만에 법정 구속되었다. 죄명은 국정농단이다. 그러나 이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참담한 재판이다. 무엇이 국정 농단인가? 농단이란 뜻을 알기나 하고 사용하는가? 누가 정치를 좌지우지 하는가? 무엇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이 법정에 섰나? 도대체 국민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죄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 처음엔 ‘묵시적 청탁’이라 했다.

묵시적 청탁이 무엇인가? 아무 청탁도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속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다?  판사가 어떻게 아는가? 설사 그렇다 해도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죄가 된다는 것인가?  정말 미친 판결이다. 보석가게의 보석이 탐나지만 돈이 없으니 흥정만 하다 나와도 절도죄가 된다는 것인가? 또 많은 선수들이 기업의 지원을 받아서 운동연습을 한다. 그것도 전부 뇌물인가? 판사가 귀신인가? 참으로 썩은 짓거리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본다. 그런데 그 판사는 이 부회장의 파기 환송심 재판부터 삼성에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마련 등을 제안하면서 이를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특검이 이를 ‘재벌 봐주기’라고 반박하고 재판부 기피 신청도 했다.

판사라는 자는 자신이 제안한 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을 인정하지도 않고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판사는 양심도 없고, 자기의 말에 책임도 못 지는 쓰레기 수준의 인간성을 가진 자가 아닌가 싶다. 또한 판단할 수 있는 역량도 없는 인간인가. 양심이 아니라 욕심으로 판단한 것은 아닌가. 과연 이 부회장을 구속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죄가 있었다면 4년을 수사하며 괴롭혔으면 충분히 죄를 받고도 남은 기간이었다.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세계 최고의 기업 경영자를 법정 구속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인가 싶다. 그 정도면 인신구속을 하지 않는 다른 형을 선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 GDP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CEO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한 것은 판사의 준법감시제 제안 등을 고려할 때 정말 사안의 본질을 바꾸는 사법부의 폭거다. 삼성이 사업 보국이라는 경영이념을 실천하며 국가에 기여한 것에 나라가 이렇게 참혹한 보복을 하는가? 국민들은 이를 기업을 망하게 하려는 속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삼성이 망하면 나라에 무슨 득이 되는가?

아직도 우리 사회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프레임에 갇혀 산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 된다고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시촌과 학원에서 창창한 젊은 날을 죽이고 있다. 또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기 위해 수많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어느 초등학교 아이들의 미래 꿈 설문조사에 공무원 되는 것이 3번째로 나왔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士農工商 사상의 폐해라고 생각된다. 이런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왜 士가 맨 앞에 나와 있는가? 이는 유교가 전해준 뿌리 깊은 벼슬아치들의 지배적 사상의 영향이다. 士의 특징은 지배적 권위주의적이고, 서열 중심적 사고이고, 수구적인 의식이 강하다. 그리고 전부 입으로만 다한다. 일도 입으로 하고, 돈도 입으로 벌고, 입으로 국민을 위한다고 한다. 입으로 해서 안 되는 일이 없다. 옛 어른들 말씀에 “입(주둥이)으로 밥을 하면 오천만이 먹는다.”라고 했다. 이것은 말만 하는 행태에 대한 비아냥거림이고 역습이다.

애플의 창업자이자 기술인(工)인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 폰’이라는 기적에 가까운 제품을 전 세계 70억 인구에게 선사하고 떠나갔다. 전 세계 사람들은 잡스가 준 선물에 놀라면서 또 삶을 바꾸고 생활을 즐기고 있다. 기술인(工)과 기업인(商)들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잡스가 증인 아닌가. 士들은 그 틈에서 잇속이나 챙긴다. 工들의 기적 같은 업적이 AI(인공지능)로 나타난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고, 나아가서는 인공지능(AI)이 판사들의 직업도 빼앗아 갈 날이 멀지 않았다. 士農工商의 발상으로는 대응하지 못하는 세상이 곧 도래할 것이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工商農士 의식으로 바꿔야 한다.

또 일자리는 누가 만드는가? 士가 일자릴 만든다고? 그들이 만드는 일자리는 부가가치를 갉아 먹는 기생충 일자리인 공무원 밖에 없다. 공무원 늘리는 것이 일자리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미치지 않았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결국 AI도, 4차 산업혁명도, 일자리도 工商의 기술인과 기업인이 만들어 낸다. 工商은 행동이고, 실용이다.

입으로만 하는 대표적인 士가 정치꾼, 공무원들이다. 그들은 가치 창출이 아니고 가치 소비 집단들이다. 가치를 갉아 먹는 기생충들이다. 기술(工)은 현실이고 행동이고 실천이다. 士들이 할 일은 工商들이 쉽게 창업하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工商들을 괴롭히는 규제를 철폐하고 장애물을 제거해 주면 된다. 쓸데없는 간섭이나, 훼방꾼 짓, 재 뿌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士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벽돌 한 장 놓지 않았다.

工商들이 피땀 흘려 내는 세금이 나라 돈의 대부분이다. 士들은 工商들이 피땀으로 낸 세금으로 먹고 산다. 오히려 工商들에게 감사하고 존경하고 工商들의 사기를 높이고 격려해야 한다. 물론 工商들도 정도로 가야 한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 다시 도약하는 나라가 되어야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무식쟁이 놈들이 힘을 가지면 그 보다  비극적인 것은 없다.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시킨 그 판사도 삼성이 낸 세금으로 월급 받고 살고 있지 않는가?

세계 최고 기업, 工商의 CEO가 죄도 안 되는 일로 감옥살이를 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수치스런 일이고 士의 횡포고 폭거다. 그렇다면 기업들도 이런 나라에 더 머물 이유가 없을 것 아닌가. 이재용 부회장이 죄가 있다면 열심히 일해서 국가에 세금내고, 수십만 개 일자리 만든 것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얼마 전 별세한 이건희 회장은 아마 저 세상에서 아들의 구속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모른다.

조선 실학자 박제가(1750~1815)의 ‘북학의(北學議)’는 네 차례에 걸쳐 청나라의 풍속과 제도를 살펴본 뒤 쓴 책이다. 그는 조선의 부국강병(富國强兵)을 꿈꾸며 개혁과 개방 청사진을 담았다. 성리학이 나라의 사상적 근간이던 시절 그는 상업과 유통, 대외무역의 중요성 등 경제 논리를 강조했다. 일종의 ‘조선판 국부론(國富論)’이다.

그는 ‘북학의’에서 직설적 화법으로 사대부(士)들을 비판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할 생각은 않고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말로 백성들에게는 검소한 삶만을 권하는 사대부(士)들이야말로 위선자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라의 좀벌레들인 사대부(士)는 놀고먹으면서 하는 일이라곤 없다”며 “그들이 입는 옷이며 먹는 양식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들은 권력에 기댈 수밖에 없고, 청탁하는 버릇이 생겼으니 시정의 장사치도 그들이(士) 먹던 것을 더럽다 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놀고먹는 사대부(士)를 상업에 종사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학의’는 고담준론을 논한 것이 아니고 실학이다. 206년 전 부국강병을 외친 실용학자는 결국 士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일본이 실용 노선으로 명치유신을 한 1867년과 비교하면 무려 50여년이나 앞서 선각한 엘리트의 개혁이었으나 뿌리 깊은 士農工商의 벽에 좌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은 21세기 지금도 뿌리 깊은 士農工商의 사상에 빠져있다. 이를 工商農士로 바꾸지 못한다면 나라는 미래도 없고 언제나 士의 그림자에 벗어날 수 없다.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士들이 기술인(工)과 기업인(商)을 우습게 알고, 툭하면 국회로 부르고, 등치고, 멸시하는 후진적 작태를 벗어나야 더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工商은 세상을 바꾸지만 士는 세상을 망치고 있다. ‘工商農士’ 문화로 바꾸자.---죽비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