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억 장비 때문에 950억 벌금, 국산 3000t급 잠수함서 벌어진 일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bemil@chosun.com
▲ 도산안창호함에 장착된 국산 어뢰기만기 발사관. 선체 양 측면에 여러 기가 장착돼 유사시 총 30여발의 어뢰기만기를 발사할 수 있다. 도산안창호함을 건조한 대우조선해양은 어뢰기만기 결함으로 납기가 지연돼 총 950여억원의 지체상금(벌금)을 물게 됐다. photo 대우조선해양 |
“와, 성공이다!”
지난 7월 20일 새벽 경북 포항 인근 동해 300여m 바다 밑에 잠항해 있던 첫 국산 3000t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함내에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지난 1년간 속을 썩여왔던 어뢰기만기 ○발이 모두 성공적으로 발사됐기 때문이다. 어뢰기만기는 잠수함 스크루와 비슷한 소리를 내서 적 잠수함이나 함정에서 발사된 어뢰를 엉뚱한 곳으로 유도해 잠수함을 방호하는 장비다. ‘크림슨 타이드’ ‘붉은 10월호’ 등 잠수함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존재다.
2018년 9월 진수된 도산안창호함은 우리 독자기술로 설계부터 건조, 시험평가까지 이뤄진 최초의 3000t급 잠수함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기존 209급(1200t급), 214급(1800t급)은 독일제 잠수함을 기술도입해 생산한 것이다. 반면 도산안창호함은 배수량이 기존 잠수함에 비해 훨씬 커졌음에도 우리 독자기술로 만들어 국산화율이 76%에 달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자 자랑거리였다.
▲ 항해 중인 해군 첫 국산 3000t급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 photo 해군
어뢰기만기 등 국산화율 76% 달해
도산안창호함의 주요 국산 구성품으로는 우선 국방과학연구소와 건조업체인 대우조선해양 등이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한 공기불요추진체계 AIP(Air Independent Propulsion System)가 꼽힌다. 국산 AIP를 통해 도산안창호함은 물 위로 떠오르지 않고도 수중에서 3주가량 작전할 수 있게 됐다. 기존 214급은 독일제 AIP를 장착하고 있는데, 수중작전 기간은 2주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범한퓨얼셀은 그 핵심 구성품인 연료전지 모듈을 개발했고 이화전기, KTE 등 5개사가 주요 부품을 개발해 국산화에 성공했다. 그 외에 잠수함의 두뇌이자 중추신경인 전투체계, 잠수함의 핵심 탐지장비인 소나(음향탐지장비), 추진전동기 등도 국산화됐다. 잠수함 건조검사 및 일부 시험평가 과정에선 한국선급이 처음으로 참여해 첫 독자설계 및 건조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한국선급은 도면검증부터 건조검사까지 1480여건의 결함 사항을 발견해 바로잡았다고 한다.
어뢰기만기의 경우 214급 잠수함에선 수입품을 썼지만 도산안창호함부터 처음으로 국내 중소기업 P사가 국산화해 지난해 7월부터 시험평가에 들어갔다. 어뢰기만기는 도산안창호함 함체 좌우에 각각 ○개의 발사관을 장착, 총 30여발의 어뢰기만기를 발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한 세트당 가격은 33억원. 1조원짜리 도산안창호함에서 가격 기준으로 차지하는 비중은 0.3%에 불과한 장비였다.
그런데 이 0.3%짜리 장비가 1조원짜리 잠수함을 큰 위기에 몰아넣었다. 군에서 정한 시험평가 기준을 계속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에서 정한 기준은 3단계에 걸쳐 총 20발 이상의 어뢰기만기를 발사해 모두 성공해야 하는 것이다. 1단계에선 잠망경 심도로 불리는 수심 50m, 2단계에선 수심 100~150m, 마지막 3단계에선 최대 잠항심도에 가까운 수심 350여m에서 각각 ○발의 어뢰기만기가 모두 성공적으로 발사돼야 ‘합격’이었다. 그런데 1, 2단계에선 잘 작동하던 어뢰기만기 발사관이 마지막 3단계에만 가면 ‘먹통’이 됐다. 수심 350여m의 엄청난 수압 때문에 생긴 장비 이상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인력과 기술이 부족한 중소기업 P사 단독으로는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어려웠다. 대우조선 관계자들이 P사에 달려가 수개월간 주말에도 달라붙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올 초까지 별 진전이 없었다.
원래 도산안창호함이 해군에 인도되기로 한 시한은 지난 4월이었다. 인도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업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핵심 장비가 아닌 만큼 인도 후 문제를 해결하는 조건부 인도를 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군에선 시험평가 규정을 내세워 요지부동이었다. 특정업체 봐주기 방산비리 의혹에 휘말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지난 3월 이후 최대 잠항심도에서도 어뢰기만기 발사관들이 정상 작동하기 시작해 지난 7월 20일 최종 성공을 거뒀다.
어뢰기만기 문제 때문에 도산안창호함은 지난 1년간 최대 잠항심도까지 무려 16차례나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가야 했다. 최대 잠항심도는 잠수함이 어느 정도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갈 수 있는 최대 수심이다. 최대 잠항심도까지 내려가면 선체 피로도가 높아지는 등 부담이 크기 때문에 평상시엔 잘 내려가지 않는 깊이다. 보통 잠수함은 수심 250m 이내 깊이에서 항해하는 경우가 많다. 잠수함에 밝은 한 전문가는 “어뢰기만기 때문에 도산안창호함에 잘못하면 비극적인 사고가 생길 수도 있었고, 취역도 하기 전에 선체 피로가 커져 ‘중고’ 함정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고 전했다. 어뢰기만기 시험조건이 독일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가혹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세계 최고의 재래식 잠수함 선진국으로 꼽히는 독일은 어뢰기만기의 경우 잠망경 심도, 즉 우리 기준 1단계에서 3발만 쏴보는 것으로 테스트를 마친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산안창호함은 지난 8월 13일 해군에 인도됐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약 950억원가량의 벌금(지체상금)을 물게 됐다. 당초 계획보다 함정 인도가 110일가량 늦어져 인도 지연에 따른 벌금을 내게 된 것이다. 계약가(1조원)의 10%에 달하는 수준이다. 대우조선해양의 한 관계자는 “죽기살기로 노력해 도산안창호함을 인도했지만 지체상금으로 영업이익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됐다”며 “5㎏이 넘는 우량아를 낳았는데 (산모인) 우리 회사는 죽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경직된 규정이 부른 4개월 인도 지연 사태
인도 지연의 직접적 원인은 어뢰기만기 결함인데 어뢰기만기를 직접 만들지도 않고 조립만 한 조립업체(대우조선해양)에 엄청난 벌금을 물리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어뢰기만기를 만든 P사는 33억원의 10%인 3억3000만원만 벌금(지체상금)으로 물게 된다. 또 지체상금률이 너무 높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2017년 지체상금률이 낮아졌기 때문에 이를 소급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950억원의 지체상금은 지체상금률 0.15%를 적용해 나온 수치인데 지난 2017년 지체상금률은 0.05%로 낮아졌다.
군 당국의 지나치게 경직된 규정 적용은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3단계에 걸친 어뢰기만기 시험평가 기준은 무기 도입의 핵심 조건인 군 작전요구 성능(ROC)에 포함돼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합참 시험평가부와 해군 전평단(전력분석평가단)이 만든 시험평가 절차서에만 규정돼 있을 뿐인데 군에서 너무 융통성 없는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군 당국의 이런 태도엔 과거 통영함 불량소나 납품 등 방산비리 사건으로 호된 홍역을 치른 후유증이 크다는 지적이다. 기존 규정을 조금이라도 바꾸거나 융통성을 발휘하면 ‘업체 봐주기’로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를 받기 쉽기 때문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근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는 “비싼 잠수함을 잘 만들어 놓고도 주 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일부 장비의 시험평가 지연으로 장기간 인도가 지연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시험평가 기준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정부는 함 인도가 수개월 지연돼도 지체상금만 부과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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