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승용차가 전기차로 일원화될 수밖에 없는 3가지 이유 [최원석의 디코드]
입력 2021.10.28 11:32
※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요약>
-미래 자동차산업의 진짜 경쟁무대는 파워트레인이 아니라 자동차가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됐을 때의 모빌리티 서비스 시장
-자동차가 소프트웨어로 제어되려면 차량 구조와 동력 계통이 전기·전자 제어와 궁합이 잘 맞아야 함. 그리고 차량 구조가 단순하고 확장성(scalability)이 있어야 초(超)대량 생산과 지속적 원가 인하가 가능한데, 여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전기차
-미래차의 동력원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뿐... 심리스(seamless)한 사용자 체험에 어떤 수단이 가장 적합할지 따져보면 답은 쉽게 나와
전기차 성장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미래 승용차(일반 소비자가 타는 세단·SUV 등으로 자동차시장의 대부분을 차지, 대형 상용차는 제외)의 동력원이 전기차로 일원화될 지, 혹은 수소연료전지차 등으로 분산될 지 혼란스러워 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상황을 파악할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세계적으로 어느 쪽에 돈과 인력이 쏟아져 들어가는지, 그리고 업계 선도기업들이 지금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전기차만 만드는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1조달러(약 1200조원)를 돌파했습니다. 고평가됐다고 말이 많은 이 회사에 돈이 더 몰려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 기존 자동차 업계의 최강자인 폴크스바겐이 2025년에 연간 150만 대, 2030년에 자사 신차 판매의 50%(약 500만 대)를 전기차로 채우겠다고 선언하는 등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차 개발·투자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죠.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GM에 이어 포드, 스텔란티스(피아트·크라이슬러와 푸조·시트로엥이 합병된 회사)도 한국 배터리업체와 합작해 각각4조원에서 10조원의 거액을 투입해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 계획입니다. 전기차에 미온적이었던 도요타조차 지난달 7일 배터리 개발·생산에 16조원을 투입해 2030년까지 연간 200GWh(기가와트시)의 생산능력을 내재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연간 300만대 이상의 전기차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10월 21일엔 이 계획의 1탄으로 북미에 4조원을 투입해 자체 배터리 생산시설을 짓겠다고도 발표했습니다.
2016년 9월 파리모터쇼에서 벤츠의 디터 제체 당시 CEO는 CASE(커넥티드·자율주행·차량공유·전기차)라는 용어를 들고 나왔다. /벤츠 동영상 캡처
특히 전세계 자동차기업 가운데 매출·영업이익·연구개발비 모두 세계 1위인 폴크스바겐은 “미래차를 전기차로 일원화한다”고 못박고 모든 인력과 재원을 전기차에 쏟아붓고 있죠. 몇 년전까지만 해도 내연기관 중심이었던 폴크스바겐의 최근 태도 변화는 놀라울 정도인데요. 여기에 대한 ‘의문’을 풀어보면, 왜 전기차로 일원화될 수 밖에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의문은 ‘다른 선택지도 있는데 왜 전기차에만 집중하는가’입니다.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올인이 살짝 위험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유럽에선 2035년 이후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불허할 방침이지만, 2035년 이후로도 수소연료전지차는 얼마든지 팔 수 있거든요. 수소를 엔진 내부에 분사해 폭발력으로 움직이는 수소엔진차, 공기 중 이산화탄소(CO2)를 채집해 만든 합성연료로 움직이는 차도 판매에 제약이 없지요. 연료 제조·사용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폴크스바겐이 미래 파워트레인에 대해 위험을 분산하지 않고 전기차에 올인하는 이유를 세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전기차만 팔아 수익을 낼 수 있는가’입니다. 내연기관차는 성숙된 기술이라 추가 개발비가 덜 들어가고 마진 폭도 큽니다. 반면 전기차는 이제부터 수조원, 수십조원 단위 투자가 계속돼야 하며 투자비 회수엔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또 전기차로 바뀌게 되면, 폴크스바겐의 기존 인력과 엔진 중심 파워트레인을 통해 축적한 내부 자산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지요. 도요타나 현대차가 수소연료전지차를 미는 이유 중에 하나도 여기에 있습니다. 수소연료전지차를 개발하면 기존의 인력과 자산을 많이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생산자 입장에서는 수소연료전지차가 꽤나 안정적이고 유리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크스바겐은 전기차 일원화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이것은 그냥 절대 쉽게 나온 계획이 아니죠. 폴크스바겐이 테슬라 등의 성공 요인을 자사의 모든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오랜 기간 깊이 분석한 끝에, 자신들이 살아남고 미래에 성장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도출한 것이 지금의 전기차 올인 전략인 것입니다.
그럼 폴크스바겐은 왜 수소연료전지차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준비하지 않고, 다소 불안하게 보이는 전기차 일원화 전략을 택하게 됐을까요? 그리고 왜 시간이 흐를수록 폴크스바겐뿐 아니라 다른 자동차회사들도 미래 파워트레인을 전기차로 일원화하게 될 수 밖에 없을까요?
그것은 미래 승용차 산업에 닥칠 진짜 위험은 파워트레인이 아니라 다른데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돈을 벌 기회는 파워트레인이 아니라 다른 곳, 즉 모빌리티 서비스 시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위기와 기회에 대처하고 최종적으로 승리하려면,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일부에 불과한 ‘파워트레인’을 모빌리티 서비스에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구조가 가장 단순하고 원가인하 여력이 가장 높은 파워트레인에 집중하는게 필연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 답은 전기차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눠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CASE의 경우, 먼저 E(전기차)에 집중하고, 그 다음에 전기차를 기반으로 한 C(커넥티드) 즉 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차량(SDV)을 보급해 S(공유·서비스)로 돈을 벌고, 최종적으로 A(자율주행)를 완성해 나가는 순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벤츠 동영상 캡처
◇1. 복잡성 문제 해결
폴크스바겐을 비롯한 유럽 승용차 회사들이 전기차에 올인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복잡성’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미래 차량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모빌리티 서비스를 구현하는 ‘디바이스’ 역할을 해야 하는데요. 모빌리티 서비스를 잘 구현하려면 차량을 컴퓨터·전자제품화해야 합니다. 나머지 구동에 관계된 부분은 구조가 단순할수록 좋습니다. 가장 단순한 구조의 차량이 전기차인 것이죠.
CO2를 줄이는 것만 따지면, 도요타 가 주장하는 하이브리드카 역할론도 말이 됩니다. 도요타에 따르면, 하이브리드카 3대를 보급하면 전기차 1대를 보급하는 것과 같은 CO2 절감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CO2 양 90을 줄인다고 했을 때, 전기차 한 대에서 90을 줄이나 하이브리드카 3대에서 각각 30씩 줄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하지만 하이브리드카는 복잡하고 섬세한 시스템입니다. ‘배터리·모터’와 ‘엔진·변속기’라는 두 개 파워트레인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또 플러그인은 하이브리드카의 복잡성을 그대로 가지면서 배터리 용량만 큰 형태이지요. 전기차와 내연기관 시스템을 모두 갖고 있는 하이브리드·플러그인과 전동 시스템으로 일원화돼 있는 전기차, 어느 쪽이 더 단순한지는 자명하겠지요.
수소연료전지차는 문제가 훨씬 심각합니다. 수소연료전지차는 기본적으로 전기차입니다. 전기차보다 용량이 작긴 하지만 배터리도 탑재돼 있습니다. 그 위에 복잡한 연료전지 시스템을 추가로 얹은 형태이지요. 전기차에 비해 훨씬 복잡한 시스템입니다.
수소 활용의 유리함으로 본다면, 폴크스바겐 같은 유럽 자동차회사들이 아시아 회사보다 수소연료전지차 보급에 적극적이어야 할겁니다. 아시아 지역보다는 유럽에 ‘그린수소’가 풍부하기 때문이죠. 유럽은 전체 전력생산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는 공급이 수요보다 많을 때 이를 저장해 둘 필요가 있죠. 남은 전기에너지로 물을 분해해 이른바 ‘그린수소’를 대량으로 만들어 놓았다가 필요할 때 전기로 바꿀 수 있습니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부족해 그린수소를 만들기 어려운 한·중·일에선 수소연료전지차의 환경 친화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수소를 생산할 때 화석연료를 태워 만든 전기에너지를 사용한다면, 유럽에 비해 수소 경제를 통한 탄소 배출량 저감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폴크스바겐 같은 유럽 승용차 회사들은 전기차에 올인한다고 못박고 있는 상태죠. 폴크스바겐·스텔란티스 등은 물론, 최근까지 수소연료전지차를 개발해 왔던 벤츠도 이를 포기하고 수소차 개발 부문을 외부의 다른 상용차 회사에 넘긴 상태입니다. BMW가 최근 뮌헨모터쇼에서 수소차를 공개하긴 했지만, 자체 개발이 아니라 도요타의 연료전지 모듈을 구입해 탑재한 수준으로, 대량 생산이나 본격적인 투자는 계획돼 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유럽은 그린수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수소연료전지차 보급에 따른 CO2 실질삭감 효과가 훨씬 클텐데도 말입니다. 결론은, 심플한 전기차를 놔두고 복잡한 수소연료전지차를 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점에 대해 아우디의 올리버 호프만 개발총괄이 최근 인터뷰한게 있는데요. 내용을 옮겨 보겠습니다. 아우디는 폴크스바겐 그룹 내에서 선진기술을 담당해 왔지요. 수소연료전지차나 합성연료 개발을 중단하고 최근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모든 경영 자원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우디는 수소 연료전지차나 합성연료도 오랫동안 개발해 왔지만 이를 중단했다. 수소연료전지차는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매우 뛰어난 기술이지만, 큰 결점이 있다. 연료인 ‘그린수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량의 신재생 에너지가 필요하다. (풍력 등으로 만들어진) 전력을 사용해 (물을 전기분해해) 그린수소로 변환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손실된다. 즉 에너지를 절약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배터리 전기차다. (아시아에 비해 훨씬 풍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이 한정돼 있는 그린수소는 우선 철강이나 시멘트 등 소재 산업 분야에서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배터리 전기차라는 효율이 좋은 해답이 있는 모빌리티 분야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10년, 아니 20년은 배터리 전기차가 정답이다.”
기술 보급에서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단순함’입니다.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면 단순한 쪽이 이깁니다. 단순한 쪽으로 갈수록 비용을 낮출 여지가 많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하지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나 수소연료전지차의 복잡함이 전기차의 단순함을 이기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수소연료전지차는 구조도 복잡하지만, 대량의 수소를 생성해 이를 차량에 주입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 복잡하고 기술적 난제가 상존해 있습니다. 어디서든 기존 전력망에 연결만 하면 되고 효율도 높은 전기차가 있는데, 왜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해야 하냐고 아우디의 최고 기술 전문가도 반문하고 있는 것이죠.
그럼 하이브리드카는 어떨까요? 일부 전문가들은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도 말하죠. 도요타 등이 이미 연간 200만대씩 보급하고 있을만큼 일반화돼 있으니까요. 또 중국 등에서 하이브리드카 보급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다 할 수 없고 변수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카의 문제점은, 이 기술 역시 너무 복잡하고 정교해서 보급에 제약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기차는 범용으로 쓰기에 적합하죠. 조금 어려운 말로 하면 확장성(scalability)이 좋습니다. 하이브리드카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도요타 이외의 자동차 회사가 THS(도요타 하이브리드 시스템)를 채택한 사례는 지금까지 두 건에 불과합니다. 도요타와 자본제휴를 하고 있는 마쓰다와 스바루가 채택한 것이죠. 그 중에 마쓰다가 THS를 도입했다가 곤욕을 치른 사례가 유명합니다. 마쓰다는 준준형차 마쓰다3의 전 모델인 악셀라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을 채택했었는데요. 같은 일본 엔지니어들인데도 불구하고 THS를 도입했다가 실패했습니다. 도요타의 전폭적인 지원에 따라 모든 기술을 제공받았지만, 도요타 차량보다 성능이 훨씬 떨어지는 제품이 나오고 말았던 것이죠.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서 마쓰다 엔지니어들이 도저히 감당을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또 도요타 이외에 제대로 된 풀 하이브리드카를 대량으로 판매하는 회사는 혼다와 현대·기아차가 유일한데요. 혼다와 현대·기아차도 하이브리드에서 차츰 발을 빼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니까 만들고는 있지만 냉정히 말해 도요타만큼의 성능 대비 원가경쟁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전세계 판매 현황을 보면 극명합니다. 하이브리드카 보급이 시작된지 20년이 넘었지만 도요타 이외에는 보급이 부진합니다. 작년에 전세계에서 269만대의 하이브리드카가 팔렸는데요. 이 가운데 도요타가 191만대, 혼다가 47만대를 팔았습니다. 전세계 하이브리드카 판매의 88%를 두 회사가 차지한 겁니다. 특히 도요타는 전세계 하이브리드카 판매량의 71%를 차지했습니다. 즉 20년 넘게 도요타 혼자 뛰고 있는 셈입니다. 다른 업체 대부분이 찬동해주지 않은 채로요.
폴크스바겐의 헤르베르트 디스 CEO는 2025년에 연간 150만 대, 2030년에 자사 신차의 50%(약 500만 대)를 전기차로 팔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위해 자사의 전기차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2025년까지 쇄신한다고 밝혔다. /폴크스바겐 동영상 캡처
◇2. 원가 인하의 여력
또 하나의 문제는 휘발유 차량 원가는 가혹해지는 연비 규제에 대응하느라 계속 올라가는 반면, 전기차 원가는 구조의 단순성, 공용화의 용이성, 규모의 경제 덕분에 계속 내려가게 된다는 겁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기차에 유리한 게임입니다. 하이브리드나 플러그인은 기본적으로 전기차 시스템과 내연기관 시스템을 중복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원가 면에서 내연기관차보다도 불리하죠. 전기차 시스템이 고스란히 들어가면서 거기에 값비싼 연료전지시스템까지 추가로 얹어야 하는 수소연료전지차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일단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현재 원가와 향후 원가 인하 여력을 비교해 볼까요? 한 번 충전으로 400㎞ 정도를 가는 중형 전기차의 배터리 원가는 900만원 정도입니다. 전기차 전체 원가의 40% 가량을 차지합니다. 업계에 따르면, 2025년쯤 되면 이 원가가 400만원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게다가 전기차는 대당 2만 개로 이뤄진 내연기관차 부품 수의 절반이면 됩니다. 전기차 생산이 급증하면 관련 부품의 수평분업이 가속화하고 대부분 부품의 가격도 계속 떨어지게 되겠지요.
중형차 기준으로 휘발유 차량의 제조 원가는 1300만원 정도입니다. 반면 같은 크기의 전기차 원가는 2000만원 정도. 단순 계산해서 2025년이면 배터리 원가 인하분만 반영해도 전기차 원가가 1500만원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다른 부품의 원가 인하분을 감안하면 휘발유 차량과 원가 차이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이브리드카는 어떨까요? 내연기관차와 전동시스템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전기차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래도 현재 판매 가격은 전기차보다 훨씬 저렴하니 앞으로도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원가절감의 달인인 도요타조차도 기존 하이브리드 시스템 원가를 지금보다 더 낮추는게 가능해 보이지 않습니다. 전동시스템과 내연기관 시스템을 동시에 탑재하고 있다는 한계 때문이죠. 물리적으로 합쳐질 수 없는 두 개의 복잡한 시스템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획기적인 원가 절감은 어려워 보입니다. 도요타가 지난 20여년간 갈고 닦아 도달한 것이 내연기관차 대비 추가비용 200만원입니다. 그 이상은 어려워 보입니다.
그럼 원가경쟁력이 가장 높다는 도요타라고 해도 2025년 준중형 기준 하이브리드카 원가는 1500만원(내연기관차 원가 1300만원+200만원) 정도일 겁니다. 2025년에 비슷한 크기의 전기차 원가가 1500만원이 된다고 치면, 전기차 대비 하이브리드카의 원가경쟁력은 4~5년 내에 사라지게 되는 셈이죠.
물론 앞으로 4~5년 정도만 본다면, 하이브리드카 보급이 계속될게 분명합니다. 차를 타보면 참 매력적이거든요. 정교한 기술력에 감탄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전기차처럼 기본구조가 단순해서 전세계 자동차회사들은 물론 신규업체들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보급을 밀어붙이는 것과 같은 일은 하이브리드카에서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수치로도 증명됩니다. 작년 세계 하이브리드카 시장은 2019년보다 6% 늘어나는데 그쳤습니다. 연비가 좋고 배출가스 저감 효과도 탁월한데 말입니다.
하이브리드카가 향후 4~5년 내에 전기차에 원가경쟁력에서 밀리게 된다면, 수소연료전지차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태생적으로 전기차 원가에 맞서기 어렵지요. 수소연료전지차는 전기차 관련 제조 비용이 거의 다 들어가는데다 값비싼 연료전지 시스템이 더해지기 때문에, 아무리 비용 절감을 하더라도 전기차 원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은 수소연료전지차 대량 보급에 결정적인 장애 요인이 됩니다. 몇천대, 몇만대까지는 국가가 세금으로 지원해 보급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몇십만 대, 몇백만 대를 보급할 때는 어떨까요? 감당이 불가능합니다. 2025년 기준으로 전기차는 보조금 없이도 대량 보급이 가능하겠지만, 수소연료전지차는 불가능합니다.
◇3. 모빌리티 서비스를 위한 수단
2016년 9월 파리모터쇼에서 벤츠의 디터 제체 당시 CEO는 CASE(커넥티드·자율주행·차량공유·전기차)라는 용어를 들고 나왔었지요. 이 네 개 단어의 ‘보급 순서’와 ‘연결’을 잘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커넥티드·자율주행·차량공유와 ‘전기차’가 한 세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커넥티드·자율주행·차량공유는 모빌리티 서비스로 돈을 벌기 위한 핵심 기술인데, 이를 위해선 전기차라는 ‘디바이스’가 우선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엔진차는 차량의 중앙 컴퓨터가 모든 기능을 전자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전기차보다 쉽지 않습니다. 하이브리드카 역시 엔진 중심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완전한 스마트카, 완전한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으로 발전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이 테슬라가 인기인 것은 전기차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테슬라’이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는데요. 그것은 테슬라 차량이 ‘전기차’일 뿐 아니라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이기 때문이라는 의미일 겁니다. SDV이기 때문에 타사 차량 대비 더 매끄러운 소비자 체험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죠.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기존 피처폰 대비 뛰어난 소비자 체험을 가능케 해줬던 것처럼 말입니다.
현재 테슬라를 제외한 타사는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을 뿐이지, SDV를 판매하고 있는 것은 아니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전기차가 SDV인 것은 아니지만, 모든 SDV는 전기차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빌리티 서비스가 가능한 차량이 되려면, 전기차만 만드는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회사와 같이 우선 차량의 안쪽(소프트)부터 생각하고, 후에 바깥쪽(하드)을 생각하는 방식으로 개발 방식을 완전히 바꿀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전기차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을 가장 먼저 현실화한 것이 테슬라이고요. 기존 자동차회사 중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개발 조직의 근본부터 뜯어고치고 있는 회사가 바로 폴크스바겐인 것이죠.(발표를 충분히 안해서 그렇지 도요타나 GM도 내부적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폴크스바겐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제품의 중심을 이동시키는 것 뿐 아니라, 자사 차량을 SDV 즉 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로 바꾸려고 하고 있죠. 이를 통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의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것이고, 차를 팔아 차익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소프트웨어 기반의 모빌리티 서비스로 더 많은 돈을 버는 회사로 변신하겠다는 것입니다. 폴크스바겐은 2030년 유럽의 MaaS(Mobility as a Service) 시장이 700억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예측했는데요. 이 시장을 장악할 수만 있다면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늑장을 부리다 테슬라 같은 회사에 이 시장을 빼앗기면 죽는 것이고, 지금이라도 전기차·SDV 개발을 서두르면 승산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폴크스바겐은 이를 위해 전사 역량을 총동원해 개발을 진행중이고, 2025~2026년 쯤 완성형의 전기 SDV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또 자율주행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차량에 탑재된 고성능 컴퓨터가 고속 연산을 반복해야 하는데, 여기엔 많은 전기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내연기관차나 하이브리드카, 플러그인 등은 이런 수준의 전기에너지를 담은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율주행에는 수소연료전지차가 적합하고 말하는 전문가도 일부 있는데요. 자율주행에 필요한 고성능 프로세서는 전력을 아주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배터리 전기차로 이를 감당하게 되면 주행거리가 줄어들 우려가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건 넌센스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세서 발전 속도가 아주 빠르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훨씬 적으면서 연산능력은 탁월한 시스템을 만들어내게 될테니까요. 이미 구글이나 애플이 내놓은 자체 개발 프로세서를 보면 전력소모량 대비 성능이 탁월한데요.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겁니다. 또 자율주행기술 중에도 차량 자체 프로세서의 부하를 줄여줄 다양한 방법이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차량 대 차량, 차량 대 교통인프라를 통신으로 연결할 수도 있지요.
게다가 미래의 자율주행차를 수소연료전지차로 한다는 것은 심리스(seamless)하고 심플한 모빌리티 서비스 체험에도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래 차량은 전기·전자적으로 지금보다 더 복합적인 형태가 될 것이고, 전자제어 시스템이나 각종 센서류가 고도화되면서 비용이 더 올라갈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구동시스템은 최대한 단순하고 저렴할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설계로 다양한 종류의 차를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즉 확장성(scalability)이 뛰어난 구조여야 할 겁니다. 수소연료전지차는 전기차에 비해 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확장성이나 원가 인하 여력도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특히 수소연료전지차 충전소의 접근성 문제, 초고압의 물질을 다루기 때문에 충전을 자동화하거나 간소화하기 어렵다는 문제 등은 모빌리티 관련의 심리스한 사용자 경험을 근본적으로 저해할 우려가 있습니다.
즉 CASE의 경우, 먼저 E(전기차)에 집중하고, 그 다음에 전기차를 기반으로 C(커넥티드)가 되는 SDV(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를 보급해 S(공유·서비스)로 돈을 벌고, 최종적으로 A(자율주행)를 완성해 나가는 순서가 될텐데요. 최종목표인 A까지 가는 로드맵을 그려봤을 때, 미래의 파워트레인은 전기차로 일원화하는 것이 맞다고 테슬라가 먼저 내다본 것이고, 폴크스바겐·GM 등도 이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죠. 이후 스텔란티스, 심지어 혼다도 (그동안 잘해왔던 내연기관은 물론 하이브리드 추가 개발까지 제한하면서) 사실상의 전기차 올인으로 방침을 바꾸고 있습니다.
즉 파워트레인은 자동차회사에 있어서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모빌리티 시장 선점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죠. 다만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해 돈을 벌려면 차량 구조가 단순해야 하고, 원가는 점점 낮아져야 하고, 스마트폰처럼 모든 것을 중앙에서 통제하고, 차량의 모든 동작·기능을 전기·전자적으로 쉽게 제어할 수 있어야 할텐데요. 여기에 부합하는 수단이 전기차 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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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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