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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문물

121년 전 나라를 해체하며 검찰권을 박탈했던 고종

121년 전 나라를 해체하며 검찰권을 박탈했던 고종

입력 2022.04.16 16:10
 
 
 
 
 
대한제국 초대황제 광무제 고종./국립고궁박물관

1897년 조선 26대 국왕 고종이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대한제국을 세웠을 때 뜻있는 지식인들은 웃지도 않았다. 웃으려고 근육을 움직이는 것도 아까울 정도로 어이가 없었으니까. 그들은 1897년 10월 그날까지 30년 넘도록 고종이 한 일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600년 가까이 중국에 사대하고 근대 일본 위세에 망가진 조선을 살릴 기회라고 여기기도 했다. 1884년 갑신정변 실패로 미국으로 망명했던 서재필이 그 무렵 돌아와 독립협회를 세웠다. 중국 사신을 조선 국왕이 직접 나가서 영접하고 영송했던 영은문을 헐고 그 옆에 독립문을 세웠다. 그리고 서재필이 이끄는 독립협회는 만민공동회 같은 근대적 토론제도를 만들어 종로통에서 새 나라를 설계했다.

설계의 핵심은 입헌군주제였다. 이미 1894년 청일전쟁 이후 갑오개혁정부가 추진했던 새 국가 시스템이기도 했다. 법으로 군주권을 제한한다는 발상에 고종과 생전 왕비 민씨는 강력하게 저항했다. 결국 갑오개혁은 불발되고 민비 암살사건과 러시아 공사관으로 국왕이 달아나는 아관파천이 이어졌다.

그리고 덕수궁(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이 만든 나라가 대한제국이었다. 그 대한제국을 입헌군주국으로 만들자는 발상이 만민 입에서 튀어나오자 고종은 즉각 독립협회 간부들을 체포하고 협회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그게 1898년 10월이다. 그리고 이듬해 7월 황명에 의해 법규교정소라는 기관이 설립됐다.

한 달 뒤 법규교정소에서 법 하나를 떡하니 내놨다. 이름 하여 ‘대한국국제’다. 군주 고종의 무한권리와 인민의 무한의무를 규정한 법이다. 고종은 군주권을 견제할 모든 장치를 없애버리고 황제에게 입법-사법-행정권을 집중시킨 독재국가를 입법으로 합리화한 것이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외교관은 “이 나라는 현재의 혼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1899년 8월 17일 이 법안을 들고 온 법규교정소 총재 윤용선은 고종에게 “외국인 또한 옳다고 한다”고 보고했다.

고종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901년 11월 17일 고종은 기존에 경부 소속으로 존재하던 수사기관 경무청과 별도로 경위원이라는 기관을 설립했다. 경위원은 궁내부 소속이다. 즉 황실 직속이다. 고종은 이로 하여금 황궁 내외 경비, 수상한 위법자를 규찰하고 체포하는 사무를 전적으로 관할하도록 했다. 기존 기관을 무력화한 것이다.

경위원 수장인 총관은 이근택을 임명했다. 이근택이 누구인가. 1882년 임오군란 때 충주 장호원으로 달아난 왕비 민씨에게 잘 보여 관직에 들어선 사람이다. 매천 황현에 따르면 이근택은 1905년 을사조약 때 조약 도장을 찍고 귀가해 “목숨을 건졌다”고 자랑했다가 “나라는 어찌하고!”라며 하녀에게 죽을 뻔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 기록에 따르면 이근택은 이 조약 체결을 전후해 일본공사관으로부터 뇌물 5000원을 받기도 했다.

 
 
 
 

9일 뒤 고종은 이근택을 공석 중이던 사법 수장 법부대신 서리로 겸임시켰다. 이근택은 이후 황실 직속 군사지휘부인 원수부 검사국 총장까지 겸임했다. 대한제국 군사는 민란 진압 같은 치안이 주업무였다. 모든 수사권과 사법권이 고종과 그 꼭두각시한테 집중된 어이없는 사법시스템이 완성됐다.

1904년 7월 15일 중추원 의관 안종덕이 상소를 통해 고종에게 비수를 던졌다. 그 가운데 한 줄을 인용하면 이러했다.

‘탁지부가 있는 이상 내장원은 둘 필요가 없는 것이며, 군부가 있는 이상 원수부는 승격시킬 필요가 없다. 외부(外部)가 있는데 예식원(禮式院)은 또 무엇 때문에 설치하며, 경무청(警務廳)이 있는데 경위원은 무엇 때문에 더 두는가? 법부가 온 나라의 형벌에 관한 정사를 전일적으로 보아야 하겠는데 군법원(軍法院)에 권한을 나눠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위에 안종덕이 나열한 내장원, 원수부, 예식원, 경위원은 실질적으로 모두 황실 그러니까 황제 고종 직속이다. 국가 공동체를 위해 기능해온 외부 기관으로부터 재정과 군사와 핵심 수사권과 사법권을 분리해 황실과 관련된 일은 황실이 제어해왔음을 지적한 상소였다. 고종은 끝내 저 기관들을 해체하지 않았다. 대신 6년 뒤 나라가 해체돼 버렸다.

안종덕 상소 이후 118년이 지났다. 뭐가 바뀌었나. 공화국을 떠받쳤던 대한민국 검찰을 한 달 남은 하루살이 옛 권력이 해체하려고 한다. 어디서 배운 버릇인지 모르겠으나, 자기를 견제하고 통제하려는 기관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들여대던 칼날을 아직도 버릴 줄을 모른다.

‘미국 검찰은 수사권이 없다’는 둥 외국 사법제도에 대해 얼토당토않은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자기네 말이 맞다고 국민을 속인다. 국민이 개돼지인 줄 알고 있는 자만과 오만과 극단적인 권력욕이다.

병자호란 때 서인들은 “명분을 위해서라면 나라가 망해도 좋다”고 주장했다. 구한말에 위정척사파 노론도 그랬다. 그들은 ‘명분’이라도 있었다.

검수완박으로 정권 이양을 기념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나라를 해체하면서까지 집착할만큼 권력이 좋은가? 118년 전 중추원 의관 안종덕이 작심 상소문에서 적어내린 그 문구들을 큰 소리로 한 번 읽어보라. 문해력이 떨어진다면 세 번 네 번 거듭 읽어보라. 그리고 지금 이 나라에 뭔 짓을 하고 하는지 스스로 느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