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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문물

부산의 슈바이처, 고인 된 안철수 父 안영모는 누구

부산의 슈바이처, 고인 된 안철수 父 안영모는 누구

거대 양당의 통합의 자리 된 장례식장

 유슬기 기자 |  2022.04.21

안철수의 아버지 안영모 원장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 그는 안철수 아버지 이전에 부산의 슈바이처라 불렸다. 안영모 원장은 안철수 위원장이 대선에 나가기 전까지 부산 진구 범천4동에서 범천의원을 운영 했다. 1963년에 문을 열었으니 50년 가까운 세월이다.

2014년 인터뷰 당시 안영모 원장, 조선DB

안영모 원장은 애초에 부산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범천동에 자리를 잡았다. 의료보험체계가 생기기 전까지 진료비는 시내 병원의 절반만 받았다. 그가 신문배달하다 크게 다친 소년을 치료해주고 병원비를 받지 않은 이야기는 당시 지역 일간지에 미담으로 실리기도 했다. 처음엔 하루에 2~30명의 환자가 왔는데 나중엔 150명가량이 몰려왔다. 밤이고 낮이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아예 살림집도 병원 위에 마련했다. 당시 두 살이던 안철수는 이곳에서 초··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의사였던 안철수의 아버지   

2014년 기자와 만난 안영모 원장은 정치권에 나간 아들이 책읽을 시간을 빼앗기고 몸과 마음이 상할까 걱정하는 부정을 전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범천의원 집 큰아들 안철수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조용히 뭘 하고 있나 들여다 보면 책을 읽고 있거나 마당에서 닭을 키우거나 토끼를 키우고 있었다. 한번은 메추리를 부화시키겠다고 이불 위에서 메추리알을 품다가 잠이 들어 알을 깨트린 일도 있었다. 라디오는 물론이고 시계, 모형 비행기까지 그의 손이 닿으면 꼭 한 번은 속에 있는 것을 모두 토해내야 했다. 어느 날은 친척집에 갔다가 어른들 이야기가 길어지자 벽에 걸린 괘종시계를 분리했다. 아주 작은 부품까지 분해하는 데는 성공했는데 다시 원래대로 맞추지는 못했다. 한바탕 혼이 났다.

밑으로 남동생이 하나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한 번도 동생들을 괴롭힌다거나 친구와 싸운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어요. 초등학교 땐 공부를 중간쯤 했고, 중고등학교 때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더니 졸업할 때는 부산고등학교 전체에서 1등을 했어요. 다니던 학교에 도서관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거기 있는 책은 다 읽다시피 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곧잘 해서 공대에 가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기계 다루는 걸 워낙 좋아했으니까요.” (안영모 원장, 2014년 당시 인터뷰 중)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안철수 인수위원장의 부친상에 찾아 조문하고 있다, 뉴스1

아들이 정치권에 합류한 뒤 의원을 닫고 조용히 살아온 그는 2022 4 19일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다른 곳에선 어떨지 몰라도 부산에서 안철수는 안영모의 아들이다. 그가 전 재산 중 절반을 사회에 환원한 것도,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공부를 계속해 온 것도, 공부한 결과를 사회에 나눈 것도 모두 아버지의 가르침이자 유산이다. 빈소는 며느리인 김미경 교수가 재직했던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가족들은 조문과 조화, 조의금은 사양한다고 전했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이 조화를 보냈고, 김부겸 총리와 한덕수 총리 후보자가 조문을 다녀갔다. 이외에도 당을 초월한 여야 인사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삶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