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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문물

황룡이 물을 마시는 용산은 제왕의 땅인가?

 

황룡이 물을 마시는 용산은 제왕의 땅인가?

[아무튼, 주말] [김두규의 國運風水]
대통령집무실 옮겨 갈 용산 ‘천도론’으로 분석해 보니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입력 2022.04.16 03:00
 
 
 
 
 

시대 담론은 전혀 예기치 않는 곳에서 시작한다. 윤석열 당선자의 ‘용산 집무실 이전론’이 그것이다(첨부 그림 상의 A구역).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 당시 ‘신행정수도이전건설추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이래 20년 동안 ‘천도론과 대통령 집무실’ 문제를 천착하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론은 윤 당선자가 격발시킨 것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었다. 2017년 10월, 건축가 승효상은 청와대 ‘상춘포럼’에서 “청와대 터가 풍수상 문제가 되니 옮겨야 한다”고 하였다(당시 언론 보도). 문 대통령 취임 후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런데 2019년 1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춘추관에서 공약 파기를 발표한다. “청와대 주요 기능을 대체할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풍수상 불길한 점을 생각할 때 옮겨야 마땅하다.”

두 번째 문장은 불필요한 언사였다. ‘청와대 터가 풍수상 나쁘다!’라고 문재인 정부가 공언한 것이다. ‘청와대 터가 나쁘다’는데, 새 대통령이 굳이 나쁜 터에 들어가고 싶을까? 그때 공약이 이행되었더라면 새 정부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론’도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집무실 이전론’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뜬금없이 ‘용산’이 툭 튀어나온 것이다. 왜 용산일까? 용산이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900년 전인 1101년이다. 당시 풍수설에 빠진 고려 15대 임금 숙종은 풍수관리[日官] 김위제가 말한 “태평성대와 성군을 약속”해 줄 새로운 도읍지를 찾았다. 윤관·최사추 등 조정 대신들이 노원역(노원구), 해촌(도봉산역), 한양(경복궁·청와대), 용산(그림 상의 B구역) 등을 살폈다. 그리고 현재의 경복궁·청와대 터를 낙점하였다. 숙종은 1104년 궁궐을 완성해 두어 달 머무르기까지 했지만, 개경에 돌아오고 다음 해 숨을 거두면서 천도는 무산됐다.

국력에 비례하여 산간 지역에서 평지로 그리고 바닷가로 도읍지를 옮겨야 한다. 이를 풍수에서는 고산룡(高山龍)→평지룡(平地龍)→평양룡(平洋龍) 단계로 구분한다. 고산룡이란 산간분지에 만드는 터를 말한다. 국력이 약할 때는 방어에 유리한 산간분지에 도읍을 정함이 당연하다. 외적을 막아낼 만큼 강할 때는 평지에 도읍을 정함이 옳다. 그러나 이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횡수(橫水), 즉 비껴 지르는 강이 필요하다. 한강을 낀 용산이 바로 그와 같은 땅이다. 평지를 거쳐 바닷가로 도읍지가 나아갈 때 드디어 패권국가가 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Hegel)과 지정학자 라첼(F. Ratzel)의 공통된 주장이다.

 

고건 전 국무총리는 서울 시장 재직 시절 용산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그는 용산을 서울의 “천원(天元: 바둑판 한가운데)의 땅”으로 보았다. 고건 당시 시장은 서울시청을 이곳으로 옮기려 하였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은 서울에서 가장 깊고 크다. 고건 당시 시장이 서울시청 이전을 대비하여 만들었으며, 미군기지로 연결되는 지하철 출입구(현재 폐쇄)도 만들었다(그림 상의 C구역).

‘미래의 도읍지(대통령 집무실) 용산’을 다시 언급한 것은 필자였다. 지금의 논쟁을 예상한 것이 아닌 우연이었다. 1년 반쯤 전, 이 칼럼에서 미군기지 평택 이전과 관련하여 용산을 소개하였다.

“山은 龍이요, 龍은 임금이다. 따라서 임금은 바로 산이다. 그러므로 그곳은 제왕의 땅[帝王之地]이다. 용산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得龍山 得天下].”(조선일보, 2020년 10월 24일자)

그곳은 황룡(黃龍)이 물을 마시는 황룡음수형(黃龍飮水形)의 땅이다. 윤명철 국립사마르칸트대 교수는 “신문명시대에 걸맞은 서울 지역의 개조가 필요하며 용산과 한강 그리고 서해를 잇는 강해(江海)도시” 차원에서 용산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패권국가로 나아갈 대한민국 천년 미래를 위해 ‘도읍지’와 ‘대통령궁’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