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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친일 행각이 아닌가?

이것은 친일 행각이 아닌가? [4]
최성철(rakhe) [2009-11-16 09:44:15]
조회 2557  |   찬성 43  |   반대 3  |  스크랩 0

이것은 친일 행각이 아닌가?

지난 일요일 (2009년 11월 8일) 효창공원에서 민족 문화 연구소라는 곳에서 친일 인명사전발간 보고대회를 가졌다고 하는데 친일 행적에 대한 잣대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에서는 ‘직위나 일부 친일 성향의 글을 문제 삼아 낙인을 찍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했다.

 

4389명이라는 숫자에 달하는 친일 분자가 명단에 오르게 되었으며 보류된 384명은 수록 기준에는 해당되지만 정보가 지나치게 소략하거나 확증이 어려워 확인 중이라고 한다.

민족 문화 연구소장은 “민족 반역자 전부, 부일(附日) 협력자 중 일정한 직위 이상자, 그 외 정치적ㆍ사회적 책임을 물어야할 친일 행위가 뚜렷한 자에 대해 역사적ㆍ실증적 검증을 거쳐 선정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말과 글은 그 민족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는 뿌리이다.

그런데 조선 총독부는 1912년에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을 만들었으며, 1919년에 있었던 독립만세 사건 이후로 무단정치 대신 유화정책으로 1921년에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 대요’를 만들었으며, 이어서 1928년에서 1929년에 걸쳐 아동들의 학습 능률을 향상과 조선어 철자법의 정리와 통일을 도모하고자 새로운 언문철자법을 만들었다.

1928년 제1차 조사회에는 박승두, 박영빈, 심의린, 이세정 등이 조사위원으로 조선 총독부 학무국 원안을 작성하였으며, 1929년부터 제2차 조사회에서는 권덕규, 김상회, 신명균, 심의린, 이세정, 이완응, 장지영, 정열모, 최현배, 오꾸라(小倉進平), 다까하시(高橋亨), 다나까(田中德太郞), 니시무라(西村眞太郞), 후지나미(藤波義貞) 등이 조사위원으로 원안을 심의 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 총독부 정책에 동조하여 녹봉을 받으며 언문 철자법을 만든 사람들은 친일 행각에 해당되지 않는가?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할 사항은 이때 만든 언문철자법으로 인하여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정신이 크게 훼손되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정신을 크게 훼손시키며 조선 총독부 정책에 공헌한 사람들의 행위는 친일 행위에서 제외되는가?

 

광복 후 북한에서는 일본인 개인이 경영하던 조그마한 공장의 지배인 직위에 있었다는 죄목으로 2년 징역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선고를 받은 예가 있다.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ㆍ사회적 측면으로 본다면 조선 총독부의 정책에 동조한 위의 조사위원들은 모두 친일 행각을 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광복 후에 만일 대한민국에서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반민족 행위자에 대한 숙청이 철저하게 이루어 졌다면 조선 총독부 정책에 동참했던 위의 조사위원들이 무사하였을까?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대한민국 정부는 친일파들이 득세하여 반민족주의자들이 도리어 활개를 치고 심지어 건국 유공자 대접을 받고 있다.

정치적으로 볼 때 조선 총독부 정책에 동조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반민족 행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한글날 562돐을 맞아 경복궁 집현전에서는 외솔회가 「집현전 학술대회」라는 것을 주최 하였는데 외솔 최현배를 항일독립운동가로 떠받들고 있다.

그 논문에 의하면 조선어학회를 항일독립단체로 치켜세우고 조선어학회 사건을 마치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미화시키고 있으며,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모두 항일독립투사인 것처럼 찬양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이희승도 항일독립투사임에 틀림없거늘 어째서 그는 친일명단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까 의문이 생긴다.

일석 이희승은 총독부 정책에 동참하지도 않았으며, 외솔 최현배와 똑같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광복 후에도 이 나라 국문학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런데 외솔은 건국 유공자로 대접을 받고 일석은 친일분자로 대접을 받고 있으니 형평을 잃은 처사가 아닐까?

 

그 논문에서 외솔 최현배의 행각에 대해서 1929년에 조선 총독부 정책에 참여했었다는 이야기는 쏙 빠지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난을 치른 이야기만 조명하고 있으며 마치 외솔이 일제하에서 홀로 어문항쟁을 벌여 적극적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한 것처럼 조명하고 있다.

“외솔 최현배는 무인(武人)으로서 총칼을 들고 항일독립운동에 앞장 선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무(武)보다 더 무서운 힘이 문(文)에도 있음을 보여준 인물이었다.”라든가, “한마디로 최현배의 한글운동은 일제에 대한 반체제집단으로서의 대종교와 조선어학회에 가담한 자체가 적극적 항일운동의 일환이었음을 확인했다.”고 논문 발제자는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조선어학회를 대종교 비밀결사에 하나로 보는 것은 착각이다.

조선어 학회 몇몇 회원이 대종교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해서 마치 조선어학회가 대종교의 비밀결사라고 단정하여 조선어학회를 대종교와 밀착시키려는 것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기술을 본떠서 조선 총독부 정책에 협력한 인물을 항일독립투사이자 건국 유공자로 변신시키는 이 나라 국문학계가 불쌍해 보인다.

과연 외솔 최현배는 항일독립투사이며 건국 유공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일까?

차라리 미당 서정주처럼 왜 친일 했느냐는 질문에 “일본이 그렇게 쉽사리 망할 줄 몰랐기 때문에 친일을 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오히려 더 떳떳해 보이지 않을까?

일석과 외솔을 비교해 볼 때 친일의 저울이 형평을 잃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한글 연구회

최 성철

댓글쓰기 [4]
김형선

seedofkorea

3
동감합니다.사람이 하는 일에 어이 감정이 안 뭍혀지겠습니까? 감정이 뭍힌다는것 자체가 공평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2009.11.16 21:30:07
김형선

seedofkorea

3
동감합니다.사람이 하는 일에 어이 감정이 안 뭍혀지겠습니까? 감정이 뭍힌다는것 자체가 공평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2009.11.16 21:30:07  
김영선

kicbal

1
40 년간의 일제 치하에서 그 시대에 한번도 살아 보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무슨 잣대로 ' 친일인명사전'을 정확하게 단죄하여 규명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언젠가 남과 북 통일의 시점이 된다면 반세기 넘게 북한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 민족 반역자 전부, 공산주의 협력자 중 일정한 직위 이상자, 그 외 정치적'사회적 책임을 물어야할 행위가 뚜렷한 자 - 를 만들어 ' 좌익인명사전'을 만들어 또 한번 떠들썩하게 단죄할 것인가? 시대적 아픔의 통찰없이 어떤 잣대를 그어 분류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앞선 사람들의 행위? 혹은 업적?은 끊임없이 사가들이 규명하고 재조명하고 있지 않은가? - 죄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쳐라!-
2009.11.17 09:0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