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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나눠먹기' 정유4사, 4300억 과징금 물어야

'주유소 나눠먹기' 정유4사, 4300억 과징금 물어야

 

입력 : 2011.05.26 12:00 / 수정 : 2011.05.26 13:44

주유소 확보경쟁을 서로 제한해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로 담합한 SK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등 정유업계 4개 회사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434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키로 했다.

공정위는 26일 “SK 등 4개사가 주유소 원적(原籍 : 주유소가 최초 영업을 시작할 때 이용하는 정유사) 관리를 통해 서로의 계열 주유소에 대한 기득권을 인정하고 경쟁을 제한하는 불공정행위를 해 왔다”며 이들 업체에 4348억8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09년 담합 혐의로 LPG 업체들에 부과한 과징금 6689억원에 이어 역대 두번째 규모다.

회사별 부과내역을 보면 SK가 512억9900만원, SK이노베이션이 789억5300만원, SK에너지가 77억2300만원을 부과받았다. SK는 2회에 걸쳐 회사가 분할돼 계열사 별로 과징금을 부과받게 됐다. 이 밖에 GS 칼텍스는 1772억4600만원, 현대오일뱅크는 744억1700만원, S-Oil은 452억4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공정위는 담합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SK, GS, 현대오일뱅크 등 3개 회사는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주유소 원적 관리란, 정유사들이 자기의 계열주유소나 과거 자기의 계열 주유소였던 무폴주유소(특정상표 정유사를 이용하지 않는 주유소)에 대해 기득권을 서로 인정해 경쟁사의 동의 없이 타사의 원적 주유소를 유치하지 않는 영업관행을 뜻한다. 마치 프로스포츠에서 자유계약(FA) 선수가 구단을 옮기려 해도 종전 구단(원적사)의 동의가 없으면 이적을 제한하기로 담합하는 것과 같다.

◆ 2000년부터 원적관리 담합.. ‘복수상표표시제’ 방해 담합도

정유사들은 지난 1993년 6대 도시에 대한 주유소 거리제한이 철폐된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주유소 확보 경쟁(폴 경재)을 벌여왔다. 주유소 유치 경쟁이 진행되면서 주유소에 대한 자금과 시설지원 증가, 공급가격 인하 등의 압력이 더해져 영업이억이 크게 떨어지자 정유사들은 현재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경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적 관리 담합을 시작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정유 4사는 지난 2000년부터 원적 관리를 통한 기득권 인정과 타사의 원적 주유소 확보 경쟁을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정유 4사 소매팀장들은 2000년 3월 회동을 갖고 다른 정유사가 원적사의 동의 없이 주유소를 유치하는 경우 이에 대응해 유치하는 것을 수용하기로 했다. 또 무폴주유소가 특정 정유사와의 계약관계를 끝내도 3년 동안은 기득권을 인정해 타사 상표로 변경하는 것을 제한하기로 담합했다.

정유사들은 지난 2001년부터 ‘복수상표표시제도’가 도입되자 공동으로 이 제도의 정착을 방해하기로 담합하기도 했다. SK와 GS, 현대오일뱅크 등 3개 회사는 계열 주유소가 복수상표 신청을 할 경우 브랜드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주유소 유치경쟁을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 주유소가 상표 변경 요구해도 일방적으로 거절.. 원적사 포기각서도 요구해

정유사들은 주유소가 거래 정유사의 변경을 요청하더라도 원적 정유사의 포기각서를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거래를 거절하는 방식으로 담합을 실행했다. 정유사 상호간의 협의가 이뤄지기 전에는 타사의 원적 주유소에 폴 사인(정유사 상표) 설치를 거절하거나 유보하고 원적사의 포기각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정유사 간 주유소 담합 합의 교환을 입증하는 내부 문건
또 정유사의 지역 지사장이나 영업사원들이 서로 연락해 ‘주유소 협의 교환(트레이드)’ 행위도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정유사 영업사원들이 각사의 원적 주유소를 협의해 교환한 사례가 전국적으로 최소한 20건 이상 확인됐다”며 “심지어 정유사 3사 간 협의를 통해 ‘3각 트레이드’가 이뤄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정유사들은 불가피하게 타 사의 주유소를 유치하게 될 경우 상호 접촉을 통해 대응 유치를 협의하기로 하고 이를 ‘서로가 동등하게 주고 받은 것’으로 정산한 것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 시장점유율 10년 이상 유지.. 석유제품 가격상승 요인으로 작용

정유사들의 담합으로 시장점유율이 10년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돼 시장 내 경쟁이 사라지면서 이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이 떠 안게 됐다. 주유소 확보 경쟁이 없어 석유제품의 주유소 공급가격이 인하되지 않아 소비자가격 인하 경쟁도 억제됐기 때문이다.
담합 전과 후의 정유사 시장점유율 비교
원적 관리 담합을 통해 주유소의 정유사 선택 기회가 제한되면서 실거래 가격 인하 경쟁도 제한을 받았다.

현재 석유제품의 공급가격은 정유사 본사가 국제유가와 환율 등을 고려해 공장도가격을 산출하고 이를 토대로 시장수급 등 당일 시장상황을 반영해 지역본부로 가격을 통보한다. 실거래가격은 지역본부가 대리점, 주유소 등의 거래조건에 따라 공급하는 가격이다. 담합을 통해 주유소 확보 경쟁이 사라지면서 지역본부에서 결정하는 가격이 곧 최종 소비자가격으로 연결된 것이다.

공정위는 “원적관리 담합이 없었다면 정유사들이 주유소 확보를 위해 더 싸게 기름을 공급했을 것”이라며 “이는 결국 최종 소비자가격 하락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를 통해 “정유사들의 주유소 확보 경쟁이 활발히 이뤄져 정유사의 주유소대한 석유 공급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중소 자영주유소 사업자가 값싼 기름을 공급하는 정유사를 선택하게 돼 주유소의 협상력과 경쟁여건도 개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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