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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깡통 대학'이 사는 법

[태평로] '깡통 대학'이 사는 법

  • 기사
  • 입력 : 2011.05.30 23:10 / 수정 : 2011.05.31 09:30

김형기 논설위원
성균관대 재단에 삼성이 처음 참여한 것은 1965년이다. 대학입시가 전기·후기로 나뉘어 있던 시절 성균관대는 '후기 서울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그러던 대학이 자연과학대를 수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재단에 대한 공격과 비난이 수위(水位)를 넘자 격분한 이병철 이사장은 1977년 철수해버렸다. 그 뒤를 이어 냉동만두 제조업체인 봉명그룹이 재단을 인수했지만 적극적인 투자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결국 사업 부도와 함께 봉명도 1991년 떠나고 관선이사가 들어왔다. 성균관대의 긴 암흑기였다. 학교는 시위로 바람잘 날이 없었으며, 캠퍼스는 낡아가고 수험생들은 성균관대를 외면했다.

그런 성균관대를 작고한 장을병 총장과 정범진 총장이 나락에서 끌어올렸다. 두 총장은 재계와 정부에 조르고 떼쓰고 읍소(泣訴)해서 마침내 1996년 삼성을 다시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1994년 대형 병원을 지은 삼성은 의과대학이 절실했고 성균관대는 의대 설립 인가증을 손에 쥐고 있었다.

돌아온 삼성은 연평균 1000억원씩 돈을 쏟아부었다. 연간 1원 한 푼 내놓지 않는 재단이 40개에 이르는 사립대 현실에서 상상할 수 없는 거금이었다. 성균관대는 이 돈으로 휴대폰학과, 반도체디스플레이공학과 같은 '명품 학과'들을 만들어 입학생 전원에게 등록금과 기숙사를 제공하고 매달 60만원이 넘는 생활비까지 주었다. 인프라를 새로 구축하고 교수들에게 한 해 1억원 이상의 교내외 연구비를 지원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작년 성균관대 입학 경쟁률은 22대 1이었다. 졸업생 취업률은 65.2%로 서울지역 주요 대학 중 1위였다. 교수 1인당 SCI급 논문 게재 실적은 국내 3위권으로 상승했다. 국제 대학평가기관 QS의 올해 아시아대학 평가에서 27위로 작년보다 16계단을 한꺼번에 뛰어올랐다.

15년 전 성균관대는 곳간은 텅 비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 암담한 대학이었다. 건학(建學)이념이 아무리 훌륭해도 재정이 뒤를 받쳐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세계 최고 대학들이 명성을 유지하는 비결도 결국은 돈이다. 대학 재정이 풍부하려면 재단과 학교가 뛰고 또 뛰어 기부금을 모으고 수익재산을 잘 굴려 수입원을 창출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성균관대처럼 좋은 파트너를 구하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성균관대는 한계에 몰린 사립대가 어떻게 회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극적인 사례다.

국내 200개 4년제 대학 중 80%인 159개가 사립이다. 교육재정이 빈약한 정부가 민간에 부담을 떠넘겨온 결과다. 어지간하면 설립 인가를 내주다 보니 그 틈을 타고 돈벌이 목적으로 급조한 '깡통 대학'들이 섞여들었다. 올 입시에 입학정원도 못 채운 대학이 77개나 됐다. 하지만 이들 중에 성균관대 모델을 좇아보려고 노력하는 곳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곳일수록 기부금을 열심히 모으지도 않고 수익사업에도 시들하다. 굳이 굽실거려 가며 파트너를 구하러 다니지도 않는다. 직원들 월급 깎고 열악한 교육환경에 눈 질끈 감으면 등록금만 갖고도 얼마든지 학교 목숨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의욕도 가망도 없는 깡통 대학들은 이제 문을 닫도록 해야 한다. 지금 국회에는 자진 퇴출 대학의 설립자나 재단에게 얼마간 지분을 챙겨 나갈 수 있게 해주는 사립대 구조개선 법안이 상정돼 있다. 고육지책(苦肉之策)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우리 사립대 사정이 심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