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꼭 한번…" 납북어부 편지는 여기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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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6.16 03:05
45년 전 납치된 서태봉씨 안타까운 사연
南 가족과 8년간 편지… 최근 탈북계획 들킨후 행방불명 소식 전해져
"마지막 소원입니다. 살아생전에 누님과 형제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45년 전 서해에서 납북된 길용호 선원 서태봉(66)씨는 지난 3월 인편(人便)으로 남한에 있던 큰누님에게 편지를 보냈다. 서씨는 편지에서 "인생 말년이 가까워질수록 제 딸 3형제들이라도 고모와 삼촌을 꼭 찾아서 이 태봉이가 얼마나 고향과 혈육들을 찾고 싶어했으며 그리워했는가를…. 살아서 누님, 동생들과 뜨거운 정을 나누고 싶은 마음뿐입니다"라고 썼다.
서씨는 편지와 함께 작년 3월 18일 북한에서 찍은 사진도 보냈다. 사진 속 서씨는 중풍으로 오른쪽 눈과 입이 심하게 비뚤어져 있었다. 1985년 여름 강원도 원산에서 납북 어부 31명이 집단 교육을 받으며 찍었던 사진 속의 늠름하고 건장한 모습은 오간 데 없었다.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서씨는 행방불명됐다.
- ▲ 1966년 납북된 서태봉씨가 작년 3월 북한에서 찍은 사진(왼쪽). 중풍 후유증으로 오른쪽 눈과 입이 심하게 틀어져 있다. 지난 1985년의 모습(오른쪽)과 비교된다. /납북자가족모임 제공
1945년 11월 경북 영일군(현 포항시) 빈농(貧農)의 가정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서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1966년 1월 17일 먼 친척의 소개로 부산에 가서 길용호의 선원이 됐다. 그러나 배를 탄 지 닷새 만인 1월 22일 서씨는 동료 선원 14명과 함께 서해 격렬비열도(태안반도 서쪽 55㎞)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에 납북됐다. 길용호는 실종 당시 "중공 괴선박에 끌려간다"는 무전 연락을 남겨 중국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추정됐었다.
서씨는 2003년 12월 인편을 통해 남한 가족을 찾는 편지를 보냈다. 서씨는 편지에서 "부모 형제들과 헤어진 지도 벌써 38년,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리도록 생사조차 전할 길 없이 헤어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라며 "제 생사 여부를 부모, 친척, 동생들에게 전하고자 한다"고 했다. 서씨는 북한에서 결혼해 딸 셋을 낳아 두 딸은 출가했고, 아내와 막내딸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평남 순천시 비료공장에서 일하다 2003년 12월 퇴직해 순천시 역전동 106반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서씨가 보낸 편지는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59) 대표를 통해 남한 가족들에게 전달됐다. 서씨는 2004년 8월 남한 가족들의 편지와 사진을 받아볼 수 있었다. 이후 서씨는 올해 3월 초까지 남한 가족들에게 6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서씨의 동생 철호(54)씨는 "형님은 2007년쯤 중풍을 맞았다"며 "2009년 남한 가족이 보낸 편지가 북한 보위부에 발각돼 병든 몸으로 6개월여 옥고를 치렀다"고 말했다.
철호씨는 작년 2월 북·중 국경지역에서 서씨와 전화 통화를 하려 했지만 북한 당국의 감시를 받던 서씨는 국경지역까지 나오지 못했다. 서씨는 작년 4월 보낸 편지에서 "뜻밖에 철호로부터 소식을 받았으나 몸이 불편하고, 여비를 마련하지 못해 보고 싶은 동생의 목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하게 됐다"고 한탄했다.
최 대표는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서씨는 고향 생각에 하늘만 바라보며 눈물짓기 일쑤였다"며 "다른 납북 어부들처럼 서씨도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한으로 송환될 때 남쪽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헛된 꿈이었다"고 말했다. 서씨의 소식은 올해 3월 편지를 마지막으로 끊겼다.
최 대표는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서씨는 탈북 계획이 들통나 일가족과 함께 보위부에 끌려간 뒤 행방불명됐다"고 말했다. 철호씨는 6·15 남북공동선언 11주년을 맞은 15일 통일부 장관 앞으로 탄원서를 보냈다. 그는 "형님을 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남한 가족이 보낸 돈과 편지가 발각돼 얼마 전부터 연락이 두절됐고, 행방불명됐다는 소식만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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