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ssue

서울 강남 사는 30대 맞벌이 박혜진 씨 가계부 들여다보니…

서울 강남 사는 30대 맞벌이 박혜진 씨 가계부 들여다보니…

2년간 소득 7% 늘 때 식비 28% 뛰었다

동아일보 | 입력 2011.06.17 03:11 | 수정 2011.06.17 10:01 | 누가 봤을까? 40대 여성, 경기

 

[동아일보]

서울 서초구 서초동 109m²(33평형)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박혜진(35·여·가명) 씨 부부는 네 살, 16개월 된 두 딸을 둔 맞벌이다. 박 씨 부부의 연소득은 세후 8500만 원 선이다. 중산층을 자처하는 박 씨 부부의 연소득은 통계청에서 발표한 올 1분기(1∼3월) 가계소득 기준으로 전국 상위 10% 안에 든다.

주위의 외벌이 친구들은 "부부가 같이 버니 좋겠다"며 부러워하지만 박 씨의 가계부는 겨우 적자를 면할 뿐이다. 집 때문에 대출을 떠안고, 아이 보육비로 끙끙 앓고, 장볼 때마다 손이 떨린다. 씀씀이가 헤픈 게 아니라 꼭 써야 할 데 돈을 쓰는데도 요새는 늘 쪼들리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박 씨는 2006년 결혼 이후 줄곧 가계부를 써왔다. 동아일보는 이 가운데 2009년 5월과 올해 5월의 지출명세를 식비, 의류·생활용품비, 건강의료·문화레저비, 교통·차량유지비, 육아·교육비, 용돈·보험, 대출상환·이자, 통신요금·공과금 등 8가지 항목으로 나눠 분석해봤다.

○ 둘째 태어나고 보육비 부담 월 65만 원 늘어

올 5월 박 씨 부부의 지출액은 506만597원으로 2009년 5월 391만2000원에서 29.2% 뛰었다. 이 기간 박 씨 부부의 월 소득은 2009년 633만3100원에서 685만9890원으로 7.6%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박 씨 부부의 올해 지출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지난해 태어난 둘째 딸의 보육비다. 첫째 딸은 아이의 외할머니가 보육을 맡았지만 올해부터는 어린이집과 파트타임 베이비시터를 같이 이용했다. 2009년에는 어린이집 비용 28만 원과 외할머니에게 드리는 용돈 40만 원 등 68만 원 정도가 보육비로 나갔다. 하지만 올해는 첫째 어린이집 원비(26만4500원)와 둘째 어린이집 비용(36만2000원)에 부모가 퇴근하고 올 때까지 봐주는 파트타임 베이비시터 비용 70만 원을 더해 매달 132만6500원을 보육비로 쓴다. 2년 전보다 65만 원가량 보육비 지출이 늘어난 것이다. 보육비 부담이 늘면서 박 씨의 남편은 자기계발을 위해 다니던 어학원을 다니지 않기로 했다.

정부에서는 다양한 보육비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맞벌이라 소득이 높은 박 씨 가정은 해당사항이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도시 가정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 자녀 1명을 키우는 데 드는 양육비용은 월 71만8795원이지만 자녀가 2명으로 늘어나면 116만1192원이 든다.

○ 매서워진 장바구니 물가

박 씨처럼 장바구니 물가를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주부들에게 '먹고살 걱정'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박 씨 가정의 식비는 2009년 49만5000원에서 올해 63만7000원으로 28.6% 늘었다. 주말에는 주로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박 씨 가정의 외식 비중은 전체 식비의 3분의 1 정도다. 냉면은 2009년 6000원에서 9000원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장면은 4000원에서 6000원으로 음식값이 훌쩍 뛰면서 박 씨 가정은 이달부터 외식 횟수를 주 1회 정도로 줄였다.

아이들 먹을거리인 과자값 부담도 늘었다. 아이들이 잘 먹는 계란과자는 2009년만 해도 대형마트에서 490원에 살 수 있었지만 요즘은 34.6% 오른 660원에 사야 한다. 수박 한 통(4kg)은 2009년에 8800원에 살 수 있었지만 요즘은 1만3000원 선이다. 삼겹살은 2009년 1근(600g)에 1만3675원이었지만 지난달 삼겹살 1근 가격은 2만2000원이었다. 반찬거리인 계란 한 판의 가격은 2009년 4610원에서 요즘 6000원을 훌쩍 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신선식품지수는 전년보다 21.3% 상승했다.

박 씨는 "첫째 때는 유기농 매장에서만 식품을 샀지만 요즘은 주말 아파트 단지 안에 서는 장에서 채소나 과일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올 초부터는 식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회원제로 운영하는 도매매장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사 근처에 사는 친구와 나누기도 한다.

○ 살림살이 주름살 언제 펴질까

지난달 박 씨의 통장에서 정확히 119만5207원이 바람같이 빠져나갔다. 월급 들어오기가 무섭게 전세를 얻기 위해 받은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합한 액수가 그대로 공제된다. 박 씨는 "강남의 전셋값이 비싸지만 자녀 교육과 보육 등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당분간 강남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2009년만 해도 다달이 기름값으로 20만 원 정도 썼지만 지난해부터 매달 30만∼40만 원씩 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기름값 부담 때문에 박 씨 부부가 각자 몰던 승용차 가운데 박 씨의 준중형 승용차를 최근에 처분했다.

부부 모두 스마트폰으로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통신비도 1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경제생활을 하지 않는 부모님 용돈과 두 부부의 종신보험료를 내면 이렇다 하게 저축하는 돈도 없다. 박 씨 부부는 노후 대비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박 씨는 "맞벌이하는 우리도 이렇게 빠듯하게 사는데 혼자 버는 가계는 오죽하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