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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6.20 03:04
1921년 1월 경성을 떠들썩하게 만든 스캔들이 터졌다. 빼어난 미모로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원동 자케트(재킷)'라는 별명의 19세 여학생 김화동이 '동경 유학을 시켜 주겠다'는 어느 바람둥이의 유혹에 속아 '신세를 망친' 사건이 터진 것이다. 오늘날 같으면 사회면의 작은 기삿거리에 불과한 일이지만, 당시 조선일보는 '시대의 죄냐! 사회의 죄냐! 원동 자케트의 애사(哀史)'라는 제목 아래 1921년 1월 23일자부터 무려 11회에 걸쳐 상세한 스토리를 보도했다. 본지는 "이제 갓 바깥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했으나 세상물정에 어두워 참혹히 몸과 명예를 내던지게 되는 여성들의 비극을 널리 강호에 호소하여 느낌 있는 이의 반성을 기다린다"는 게 연재의 취지라고 밝혔다.
김화동은 누구인가. "연애를 상징하는 자주빛 자케트와 유록빛(연초록) 치마에 가는 허리를 맵시 있게 가누면서… 늘 속 빈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다닌다는 원동(苑洞) 사는 어여쁜 여학생"(조선일보 1921년 1월 23일자)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원동 자케트'였다. 본지에 따르면 1919년 봄, 여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집에만 있는 게 무료해 틈만 나면 나돌아다녔다. 어디를 가건 남자들이 따라다니고 하루에 10여통씩 구애편지가 날아들었지만, 그녀의 이상형은 자신을 동경 유학생으로 만들어 줄 남자였다.
'어린 벗'이라는 잡지의 부녀기자로 일하던 1920년 6월, 그녀는 친구로부터 반가운 말을 듣게 된다. "돈 많은 동경 유학생이 함께 공부할 참한 신붓감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남자가 전북의 재산가인 바람둥이 박석규(당시 28세)였다. 화동은 가족들에게 관비 유학생으로 뽑혔다고 거짓말하고 동경으로 건너가 박석규와 살림을 차렸다. 화동의 환상은 곧바로 깨졌다. 그에게 화동은 단지 욕정의 대상일 뿐, 결혼이나 공부시킬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한달 만에 화동에게 싫증이 난 박석규는 다른 여자를 찾아다녔고, 남자의 조카라는 사람이 찾아와 박석규에게는 아내와 아들까지 있다고 말했다.
후회의 눈물을 흘렸지만 때는 늦었다. 그녀는 힘없이 서울로 돌아왔고 아이를 가진 것까지 알게 됐다. 화동은 박석규를 다시 찾아가 임신 사실을 알리며 "내 생사를 그대에게 맡기고자 한다"는 말까지 했으나 냉랭한 남자의 태도에 치욕만 당하고 돌아왔다. 실성한 사람처럼 골방에 처박혀 지내던 화동은 1921년 1월 아이를 유산했다. 의식은 깨었지만 세상 풍파를 감당할 능력을 못 갖춘 모던 여성의 비극이었다. 본지는 이렇게 탄식했다.
"안방과 부엌에서 눈물 콧물로 세월을 보내던 여성들이 불어오는 새 풍조의 혜택을 받아 마침내 넓은 세상터로 나오게 됐다. 그러나 암만 남녀평등을 부르짖어도 이 사회에 나온 그네는 향기를 품은 꽃과 독기를 품은 꽃을 분간 못하고 허둥대는 불쌍한 어린 염소!"
김화동은 누구인가. "연애를 상징하는 자주빛 자케트와 유록빛(연초록) 치마에 가는 허리를 맵시 있게 가누면서… 늘 속 빈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다닌다는 원동(苑洞) 사는 어여쁜 여학생"(조선일보 1921년 1월 23일자)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원동 자케트'였다. 본지에 따르면 1919년 봄, 여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집에만 있는 게 무료해 틈만 나면 나돌아다녔다. 어디를 가건 남자들이 따라다니고 하루에 10여통씩 구애편지가 날아들었지만, 그녀의 이상형은 자신을 동경 유학생으로 만들어 줄 남자였다.
- ▲ 동경유학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속아 신세를 망친 ‘원동 자케트’ 김화동과 바람둥이 유학생 박석규. 조선일보 1921년 1월 27일자에 실렸다.
후회의 눈물을 흘렸지만 때는 늦었다. 그녀는 힘없이 서울로 돌아왔고 아이를 가진 것까지 알게 됐다. 화동은 박석규를 다시 찾아가 임신 사실을 알리며 "내 생사를 그대에게 맡기고자 한다"는 말까지 했으나 냉랭한 남자의 태도에 치욕만 당하고 돌아왔다. 실성한 사람처럼 골방에 처박혀 지내던 화동은 1921년 1월 아이를 유산했다. 의식은 깨었지만 세상 풍파를 감당할 능력을 못 갖춘 모던 여성의 비극이었다. 본지는 이렇게 탄식했다.
"안방과 부엌에서 눈물 콧물로 세월을 보내던 여성들이 불어오는 새 풍조의 혜택을 받아 마침내 넓은 세상터로 나오게 됐다. 그러나 암만 남녀평등을 부르짖어도 이 사회에 나온 그네는 향기를 품은 꽃과 독기를 품은 꽃을 분간 못하고 허둥대는 불쌍한 어린 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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