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왕국 황태자의 신발론
- 기사
입력 : 2011.09.02 04:23
페라가모家 장손 제임스 페라가모 한국 찾아
신발 보면 그 사람이 다 보여, 키 큰데도 하이힐 신는 여성은 주목받기 좋아하는 성격처럼…
현재 여성가죽제품 총괄 디렉터, 한국 소비자는 장인정신 알아봐
그의 시선이 자꾸만 기자의 신발을 향했다. 왠지 눈을 바라보며 말하는 아이 콘택트(eye contact)보다 발끝을 보는 게 더 편한 듯했다."할아버지가 '발은 얘기한다(Feet speak)'라는 말을 남기셨지요.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나타난다고…. 키가 큰데도 하이힐을 신는 여성은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성격인 것처럼요." 그의 발엔 끈을 단단히 조인 옥스퍼드 구두가 반짝이고 있었다. 옥스퍼드 구두는 끈을 묶는 스타일의 정장 구두로 격식을 중요시하는 이들이 즐긴다.
신발을 마음의 창(窓)으로 여긴다는 이 사람의 이름은 제임스 페라가모(Fer ragamo·40). 신발로 출발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여성 가죽 제품 총괄 디렉터(Women's leather goods director)이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페라가모가(家) 사람이다. 창업주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장손이자, 현(現) 페루치오 페라가모 회장의 장남. 페라가모사(社)는 2006년 전문경영인으로 미켈레 노르사 CEO를 영입했지만 여전히 가족 경영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장손인 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이야기이다. 그가 맡은 분야가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핵심 부문이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주 아시아 시장 시찰차 한국을 방문한 그를 서울 청담동 페라가모 매장에서 만났다. 그는 막 영화배우 전도연씨에게 이탈리아에서 맞춰온 구두를 주고 오는 길이었다. "할아버지가 할리우드에서 배우들이 신을 구두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스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걸 전통으로 여깁니다."
가업(家業)에 대한 자긍심은 '머리'가 아닌 '손'에서 비롯됐다. "어릴 때 공장에서 신발을 상자에 넣는 법부터 배웠어요. 12살 때 처음 만든 구두가 할머니를 위한 검정 '바라' 구두였답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뜬 할아버지 대신 페라가모의 전통을 가르쳐 준 건 할머니 완다 페라가모(페라가모 이탈리아 사장)였다. 지금도 할머니의 옆집에 살며 매일 회사 이야기를 한다. "할아버지가 100단계 이상 거쳐 인체공학적으로 신발을 만들며 우리의 '장인 정신'을 다졌습니다. 모두가 컴퓨터로 일하는 시대가 왔지만 후손들도 수공 과정을 체험하고 계승하고 있지요."
- ▲ “핑크색 구두는 행사를 즐긴다는 걸 드러내죠.”서울 청담동 페라가모 매장에서 자신이 좋아한다는 핑크색‘피오레따’와 함께 포즈를 취한 제임스 페라가모. 사라 제시카 파커, 앤젤리나 졸리 등 할리우드 배우들이 레드 카펫에서 즐겨 신는 신발이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페라가모의 아이콘인 '바라(Vara)' 구두에 얽힌 얘기도 공개했다. 바라는 천 리본을 앞코에 단 스타일로 1978년 만들어진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100만 켤레 넘게 팔렸다. "고모(피암마 페라가모)가 활동적이면서 우아한 모델을 생각하다가 임시로 천으로 만든 리본을 붙인 견본을 신발 제작자에게 넘겼어요. 리본은 신발과 같은 가죽으로 바꿔달라고 했는데 제대로 전달이 안 됐지요. 그래서 천 리본이 바라에 그냥 남았는데 이 리본이 우리 제품의 상징이 됐어요." 지난해 기존 라인보다 가격대를 좀 낮춰 만든 '마이 페라가모' 라인은 그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한국 소비자들에 대해선 "브랜드 철학을 잘 이해하고 명품에 대한 정보가 많다.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장인 정신을 알아보는 것 같다"고 했다. 구두 전문가로서 신발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묻자 "대개 신발 길이만 보지 폭을 많이 보지 않는다"며 "길이만큼이나 중요한 게 폭이란 사실을 잊지 마라"고 했다. "예산이 부족한 여성들이 딱 2개를 사겠다면 일상생활을 위한 굽 없는 발레리나 슈즈 한 켤레와 하이힐 하나를 사서 적절히 번갈아가며 신어라"고 조언했다. 그가 말하는 이번 시즌 유행 신발은 트위드 소재, 핀스트라이프(가는 세로줄) 등이 적용돼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펌프스(앞뒤가 막혀 있고 발등이 파인 여성용 구두)'였다.
'구두의 왕국' 자손인 그에겐 과연 몇 켤레의 구두가 있을까. "25켤레 정도 있어요." 모두 페라가모? "그렇죠. 아, 아니. 딱 하나 빼고요. 나이키 운동화가 있어요. 운동은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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