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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남극 얼음 아래 ‘숨은 산맥’의 비밀

남극의 빙하 아래 숨어 있는 거대산맥의 비밀이 풀렸다. 길이가 1천200킬로미터에 높이가 2천700미터에 달하는 이 산맥은 1958년 처음 발견되었으며 러시아 지질학자의 이름을 따 ‘감부르체프(Gamburtsev)’라 불린다.

▲ 국제연구진의 노력으로 남극 빙하 아래 묻혀 있는 '숨은 산맥'의 생성원리와 비밀이 최근 밝혀졌다.  ⓒLamont-Doherty Earth Observatory
발견 이후 수많은 질문이 이어졌지만 자세한 데이터가 없어서 지금껏 해답을 찾지 못했다.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왜 빙하 아래에 묻혀 있는지, 왜 그렇게 봉우리가 뾰족한지도 알 수 없었다. 산맥 위로 쌓인 빙하의 두께가 최소 600미터에 달해 지금까지 암석표본을 채취한 적도 없다.

그런데 네이처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그 비밀이 밝혀졌다. ‘남극 동부에서 발생한 열곡현상이 감부르체프 산맥을 들어올렸다(East Antarctic rifting triggers uplift of the Gamburtsev Mountains)’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미국, 영국, 독일, 중국 등 국제연구진의 논문은 지난 100년 간 이어진 남극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0억년 동안 여러 차례의 충격으로 형성돼

지난 2007년과 2008년은 국제과학연맹(ICSU)과 세계기상기구(WMO)가 정한 제4차 ‘국제 극지의 해(IPY, International Polar Year)’였다. 60개국에서 온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남극과 북극에서 연구와 탐사를 진행했으며,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지원 중인 감부르체프 연구진도 그 중의 하나였다.

빙하를 관통하는 레이더, 중력계, 자기계 등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연구진은 남극점을 중심으로 동북부에 위치한 감부르체프 산맥 지역을 조사했다. 2009년까지 3년 가까이 진행된 연구 덕분에 최초로 세부 데이터와 고해상도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마침내 지하산맥의 생성원리가 밝혀졌다.

ⓒNSF

연구결과에 따르면 동식물이 지구상에 등장하지도 않은 10억년 전에 여러 대륙들이 충돌하면서 으깨진 바위가 뭉쳐지기 시작했다. 이 충돌로 인해 감부르체프 산맥의 뿌리라고 할 두터운 지각기저가 생겨났다. 고대 산맥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침식되었고 결국 차갑고 단단한 기저부만이 남겨졌다.

산맥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공룡이 지표면을 거닐던 2천500만년에서 1천만년 전이었다. 여러 대륙이 합쳐진 초대륙 곤드와나(Gondwana)가 찢어지면서 기저부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됐다. 이어진 지질학적 충격으로 인해 지각기저와 남극 동부의 열곡대가 솟구치며 거대산맥 감부르체프가 만들어졌다.

논문 공저자로 참여한 컬럼비아대 러몬도허티 지구관측소(Lamont-Doherty Earth Observatory)의 로빈 벨(Robin Bell) 연구원은 “잿더미 속에서 불사조가 되살아나듯 아주 오래된 암반도 다시 융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과 빙하가 흘러내리며 산봉우리를 뾰족하게 깎아냈고 유럽의 알프스 산맥과 비슷한 장관이 만들어졌다. 3천400만년 전에는 그 위로 빙하가 쌓이기 시작하며 산맥을 덮었다. 덕분에 산맥은 빙하 아래로 숨었지만 침식작용은 면할 수 있었다. 감부르체프 산맥이 여전히 뾰족한 상태로 남은 이유다.

공저자로 참여한 캐롤 핀(Carol Finn) 미국 지질조사소(UGS) 연구원은 “오래된 산맥이 어떻게 생성 초기의 모습 그대로 높고 뾰족한 형태를 유지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밝혀졌다”며 “한 번의 지질학적 사건으로 인해 산맥이 형성된다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여러 차례의 난관을 겪은 감부르체프 산맥의 사례 덕분에 다른 산맥의 형성과정도 설명이 가능해졌다”고 의의를 밝혔다.

ⓒColumbia University
논문의 주저자로 이름을 올린 영국 남극연구소(BAS)의 파우스토 페라촐리(Fausto Ferraccioli) 연구원은 “남극 동부의 열곡대는 지질학의 불가사의로 꼽히는 동아프리카 열곡대와 형태가 아주 흡사하다”며 비교 연구를 통해 더 많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번 연구로 열곡대 내에 최대 규모의 지하호수인 보스토크호(Lake Vostok)의 자세한 모습도 이미지로 재구성되었다.

남극점 정복 100주년에 이룬 쾌거

연구진은 앞으로 빙하에 구멍을 뚫어 감부르체프 산맥의 실제 암석표본을 채취할 계획이다. 벨 연구원은 “달에 있는 암석도 지구로 가져왔는데 지하산맥의 암석표본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암석표본을 분석하면 더 많은 비밀이 풀릴 것으로 연구진은 기대하고 있다.

연구를 지원한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알렉산드라 이선(Alexandra Isern) 연구프로젝트 팀장은 “이번 발표는 1911년 아문젠(Roald Amundsen) 탐험대가 최초로 남극점에 도착한 지 100년 만에 이뤄낸 쾌거”라며 “고된 환경이지만 세부 데이터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참고로 이번 연구에는 영국 국립환경연구협회(NERC), 독일 연방지구과학자원연구소(FIGR), 중국 극지연구소(PRI)도 자금을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