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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12.07 19:52 | 수정 : 2012.12.07 22:34
오는 19일은 후보와 국민 운명 함께 결정짓는 날
누가 고령화· 국가 大戰略·경제 앞날 앞당겨 걱정하고 있나
- 강천석 주필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에게 이제 남은 날은 열하루다. 넉넉잡아도 이백 몇십 시간 후 한 사람은 대통령 당선자, 다른 한 사람은 낙선자로 갈린다. 낙선자는 퇴장이다. 패자부활전은 없다. 대선 주연들만 가차없는 운명을 맞는 게 아니다. 조연(助演)들도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 무대 뒤로 사라진다.
문 후보가 낙선하면…. 안철수씨는 그 순간부터 책임 추궁에 쫓긴다. 그를 중심으로 야당이 재편(再編)되리라는 건 순진한 기대다. 문 후보가 당선되면…. 그땐 길이 둘로 나뉜다. 하나는 대통령을 장식하는 '추종적(追從的) 2인자'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과 권력을 다투는 '경쟁적 2인자'의 길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추종적 2인자'는 잠시 반짝하다 빛이 바래면서 태풍의 기억처럼 소멸(消滅)한다. '경쟁적 2인자'로 생존하는 건 선대(先代)로부터 거대한 고정 지지층을 유산으로 받은 박근혜 후보쯤 돼야 누리는 혜택이다. 구름 모였다 흩어지듯 하는 안씨 지지층은 구름 사다리나 한가지다. 이렇게 주연과 조연의 운명이 정해져도 국민 운명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후보들의 미래 설계 한 번 제대로 듣지 못한 채 기표소로 향해야 하는 게 우리 팔자라서다.
일본은 22년 전과 완전히 다른 나라였다. 정치인도 국민도 그때 그 모습이 아니었다. 거기도 선거판이었다. 독도를 되찾겠다며 정부 행사로 '다케시마(竹島)의 날'을 선포하고, 센카쿠열도(중국명·댜오위다오)를 지키겠다는 결사적 자세를 공약으로 내건 자민당이 과반수에 육박하는 제1당이 되리라고 했다. 전직 소설가인 '망언(妄言) 제조기'가 이끄는 당이 제2당, 집권 민주당은 제3당으로 내려앉는다고 했다. 지난 20년간 연평균 성장률 0%를 기록한 장기 불황은 국민을 바꿔놓고, 바뀐 국민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에게 무방비(無防備)로 휘둘리고 있었다. 눈덩이 덮치듯 일본을 덮친 초고속 고령화(高齡化) 앞에선 백약(百藥)이 무효라고 했다.
미국의 대표적 일본 옹호론자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일본 현상'을 중국 부상(浮上) 앞에서 갈피를 못 잡는 자신감 상실로 진단했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 수뇌부는 미국의 점진적 쇠퇴와 중국의 급속한 대두를 놓고 불길한 예언만 늘어놓을 뿐 손을 놓아 버렸다. 강대국으로 떠오르는 중국 속에서 기회와 위기의 가능성을 함께 보면서 기회를 활용하고 위기에 대비하는 국가 전략의 새 판을 짤 기회를 놓쳤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을 유식한 학자들은 '자기 실현적 예언(self fulfilling prophecy)'이라고 한다. 꼭 그 케이스다.
내놓는 제품마다 세계 시장을 제패하던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대표 기업들이 요 몇년 해마다 최대 적자(赤字) 기록을 경신하고있다. 일본 경제의 세 가지 비밀 병기(兵器)라던 '종신고용제' '연공서열(年功序列)' '기업별 노동조합'은 혹이 된 지 오래다. 어제 성공했고 오늘 성공하고 있으니 내일도 성공하리라는 성공 신화(神話)의 덫에 걸려 현실을 읽지 못한 탓이다.
우리가 내일의 운명을 염려한다면 일본의 오늘을 직시(直視)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신기록 보유 국가였던 일본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다음, 다음 대통령 무렵 손을 써봤자 이미 늦다. 지금 어느 대선 후보가 고령화 사회의 경종을 울리고 있는가.
20년 전 한국은 소련과 통하고(通蘇) 중국과 새로 벗하며(通中) 김일성으로 하여금 이대로 갇히고 마는(封北) 게 아니냐는 두려움에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미국을 한국 북방(北方) 외교의 최대 협력자로 묶어둘 수 있었다. 군사정권의 때를 벗지 못했다던 노태우 정권 시절의 한국 외교가 이랬다. 그랬던 우리 외교가 북한이 미국과 통하면서(通美) 대한민국을 고립시킬까(封南) 걱정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중국을 움직여 북핵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려면 중국을 열 열쇠를 찾아야 한다. 큰 문이라고 꼭 큰 열쇠로 여는 게 아니다. 외교적 상상력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어느 대선 후보가 이런 한국 외교의 대방략(大方略)을 논하고 있는가.
20년 전 일본 반도체 산업에 황혼이 내리리라고 예측한 전문가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 일본 반도체 산업이 폐허가 됐다. 우리 기업이 5000만 국민을 먹여 살릴 미래의 쌀 같은 신수종(新樹種) 제품을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언제 들은 적이 있는가. 대선 후보 가운데 누가 이런 사태를 앞당겨 근심하고 있는가.
복지를 퍼올린다고 고령화가 멈추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중지한다고 나라의 새 길이 뚫리고, 한·미 FTA를 재협상한다 해서 미래가 환해지는 게 아니다. 일본 국민은 20년 전 '경제는 1류지만 정치는 3류'라고 겸손해했다. 그러나 끝내는 '1류 경제'가 앞 못 보는 '3류 정치'에게 잡혀먹히고 말았다.
오는 19일은 대선 후보 운명만 결정짓는 날이 아니다. 그보다 몇 백배 중한 국민 운명을 국민 손으로 결정짓는 무서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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