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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뻔한 길' 민주·통진 연대집권

 

[김창균] '갈 뻔한 길' 민주·통진 연대집권

가지 않은 길

입력 : 2014.12.24 03:06

대다수 국민 '통진당 해산 찬성'… 從北 세력 진짜 얼굴 본 덕분
2012총선 前 順風 탄 통진당, 民主와 연대 집권 문턱까지
'실제 성사됐으면 어쩔 뻔했나' 아슬아슬 비켜간 것에 안도

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사진
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2012년 3월 12일자 조간신문에는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손을 맞잡은 사진이 실렸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4·11 총선에서 야권 연대를 하기로 합의한 순간이었다.

그 며칠 전 실시한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민주당과 통진당이 총선에서 뭉칠 경우 야권 단일 후보는 48.8%, 새누리당 후보는 37.1% 지지를 얻는 것으로 조사됐다. 1%포인트 득표율 차로 수십 곳의 승부가 갈리는 총선에서 지지율 10%포인트 이상의 격차면 승패의 흐름은 결정 난 셈이었다. 민주·통진 야권 연대가 과반 의석을 차지하리라는 것은 덧·뺄셈보다 쉬운 산수였다.

민주당은 통진당이 후보 단일화에 응해준 대가로 지역구 16석을 양보하기로 했다. 통진당의 당시 지지율이면 비례대표 의석도 5석 정도는 무난했다. 통진당이 교섭단체(국회의석 20석 이상)를 구성하면서 제3당으로 원내대표 협상 테이블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얘기였다. 신문마다 '진보 좌파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는 기사가 실렸다.

체급만 따지자면 민주당과 통진당은 동등한 연대 파트너가 될 수 없었다.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31%, 통진당 지지율은 3.1%였다. 의석수는 민주당이 89석, 통진당이 7석이었다. 덩치가 열 배 이상 차이 났다. 새로 지어질 '야권 연대' 주택의 소유권은 민주당이 갖고, 통진당은 셋방살이를 하는 게 공정한 거래였을 것이다. 그러나 양쪽 집안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12월 대선 승리에 목을 매고 있던 민주당은 통진당의 3% 지지층이 몹시도 아쉬웠다. 대선 표로 환산하면 100만표 남짓이었다. 그걸 몰아주기만 하면 통진당에 간(肝)이라도 떼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통진당은 민주당에 '야권 연대를 하려면 열 분야에서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는 청구서를 내밀었다.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같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정책까지 폐기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모두 받아들였다. 통진당 이정희 대표가 시위 현장에서 이런저런 '약속어음'을 발행하면 민주당 한명숙 대표가 뒤쫓아가 '지급 보증'을 하느라 바빴다. 정치적 위상을 보면 통진당이 민주당의 2중대여야 했는데 실제 하는 역할은 거꾸로였다. 어떤 이들은 이런 야권 상황을 '꼬리가 개를 흔든다(Wag the dog)'는 할리우드 영화 제목에 빗대기도 했다.

민주당이 통진당과 연대한 데 힘입어 집권할 경우 두 당(黨)의 공동 정부가 구성되는 것은 정해진 절차였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장관 자리 몇 개를 통진당에 떼줘야 했다. 통진당 사람들은 "통일부 장관과 노동부 장관은 우리 몫"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까마득한 옛날 얘기도, 통진당 혼자 착각했던 것도 아니었다. 2년 9개월 전 정치판이 실제 그랬다. 분위기가 그대로 흘러갔으면 우리는 지금 민주·통진 공동 정부 시대를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랬다면 신은미·황선씨는 요즘 경찰 수사를 받는 대신 이정희 통일부 장관의 후원 아래 '종북(從北) 콘서트'를 진행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연대가 성립된 바로 그 순간부터 통진당은 스스로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대(大)반전이 시작됐다. 통합진보당 청년 비례대표 경선에 나섰던 후보가 우리 해군을 '해적(海賊)'이라고 부른 사실이 논란을 일으켰고, 서울 관악을(乙)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경선에서 통진당 이정희 후보 측이 응답자 연령 조작 지시를 내린 사실이 적발됐으며, 통진당 비례대표 후보를 뽑기 위한 당내 경선에서 이석기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기 위해 대리투표·유령투표 같은 3·15 부정선거 수법을 동원한 사실이 폭로됐다. '민주 세력'이라는 가면(假面) 뒤에 숨겨져 있던 '종북 세력'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대한민국을 뿌리부터 흔들어 보려던 통진당의 꿈은 그렇게 물거품이 됐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리자 이정희 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로 전락시켰다"고 했다. 역사가 후퇴했다는 주장이다. 국민들 생각은 다르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통진당 '해산 찬성'이 61%로 '해산 반대' 28%의 두 배가 넘었다. 국민 대다수가 통진당을 '역사에서 퇴장해야 할 정당'이라고 본 것이다.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해 걷다가 되돌아볼 때가 있다. 자신이 포기했던 길에 대한 생각도 두 갈래다. "그쪽으로 가볼걸" 하는 아쉬움 또는 "안 가길 잘했다"는 안도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프로스트의 시(詩) '가지 않은 길'이 아쉬움 쪽이었다면 통진당에 반쪽 정권을 맡길 뻔했던 국민의 지금 심정은 "큰일 날 뻔했다"는 쪽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