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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퍼스트레이디 박근혜가 카터 美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쓴 방법


  • 35년 전 퍼스트레이디 박근혜가 카터 美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쓴 방법

  • 김봉기
    프리미엄뉴스부 기자
    E-mail : knight@chosun.com
    정치부에서 주로 여권(與圈) 취재를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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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3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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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애틀란타에 있는 인권단체 ‘카터센터’가 우리나라 대법원에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구명 요청 탄원서를 보내면서 이 센터를 설립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주목을 받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과 우리나라의 인연은 1970년대 말 박정희 전 대통령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재임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미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인권 문제와 주한미군 철수 문제 등을 놓고 마찰을 빚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지난 1979년 6월 말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모습.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함께 오픈카를 타고 환영 인파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조선일보DB
지난 1979년 6월 말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모습.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함께 오픈카를 타고 환영 인파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조선일보DB
특히 1979년 6월에는 방한(訪韓)한 카터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상 회담 중에 팽팽히 맞서 분위기가 싸늘해졌다고 한다. 주한미군 철수 재고 문제를 거론하지 말아달라는 미국 측 요청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장 45분 간 철수의 부당성을 지적하자, 카터 전 대통령도 긴급조치 9호 해제와 정치범 석방 등 인권문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회담에 배석했던 밴스 미국 국무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카터 대통령이 화를 겨우 참아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적기도 했다.

당시 두 정상의 냉전 상황을 풀기위해 나섰던 게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행하던 박근혜 현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의 방한 때 상황을 지난 2007년 펴낸 자서전에서 비교적 자세히 적어놓았다.

“카터 대통령은 국빈 예우를 마다하고 미8군 영내에서 숙박할 정도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청와대 안주인 역할을 하고 있던 나로서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두 나라 간의 반목을 가져올 수 있었기에 살얼음판을 걷듯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지난 1979년 6월 말 퍼스트레이디 대행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방한한 카터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로잘린 여사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 /조선일보DB
지난 1979년 6월 말 퍼스트레이디 대행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방한한 카터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로잘린 여사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 /조선일보DB

이에 박 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과 함께 방한한 영부인 로잘린 여사를 찾아가 조깅을 예로 들면서 한국과 미국의 상황 차이를 설명했다고 한다. 당시 카터 전 대통령이 방한 중에 미군들과 함께 조깅하는 사진이 보도되면서 국내에서 크게 화제가 됐는데, 이를 실마리로 활용한 것이었다. 아래는 박 대통령이 자서전에 소개한 로잘린 여사와의 대화 내용이다.

박근혜: “카터 대통령께서 조깅하시는 모습을 보고 우리 국민들이 조깅에 굉장히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로잘린: “그런가요? 대통령의 건강비결이 꾸준히 조깅을 하시는 겁니다.”

박근혜: “그런데 어느 정도 체력이 되고 건강한 사람은 몇 킬로미터를 뛸 수 있지만, 방금 수술한 사람이나 몸 아픈 사람은 과한 운동하면 안되지 않나요?”

로잘린: “그렇겠지요. 아픈 사람이 섣불리 조깅을 하면 오히려 몸에 해로울 수 있어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 시절인 지난 1979년 6월 방한했을 때 주한미군 장병들과 함께 왕복 5km 조깅을 하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DB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 시절인 지난 1979년 6월 방한했을 때 주한미군 장병들과 함께 왕복 5km 조깅을 하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DB
박근혜: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라도 마찬가지인 거 같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분단의 아픔을 겪고있는 상황입니다. 북한이 남침을 해서 온 나라가 폐허가 된 지도 얼마 안 됐고, 북한은 지금도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간첩을 보내고, 땅굴을 파고, 심지어 특공대를 보내서 이곳 청와대까지 습격했습니다.”

로잘린: “그 정도인가요?”

박근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쟁을 막고, 한편으론 경제를 발전시켜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지금 한국의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로잘린: “저도 한국이 지금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박근혜: “지금 (카터) 대통령께서 한국의 인권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시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로 고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인권 문제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런데 몸이 아픈 사람에게 건강한 사람과 똑같이 조깅을 하라고 하면 오히려 건강이 상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남북이 대치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발전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 한국은 다른 나라들과 상황이 좀 다르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로잘린: “정말 좋은 말씀이네요. 제가 (카터) 대통령께 당신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실제로 로잘린 여사는 박 대통령이 해준 이야기를 카터 전 대통령에게 전했고, 이 때문인지 그날 만찬 자리에서 카터 전 대통령이 계속 박 대통령에게만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우스갯소리로 ‘근혜-카터 회담’이란 말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지난 1979년 6월 말 퍼스트레이디 대행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방한한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조선일보DB
지난 1979년 6월 말 퍼스트레이디 대행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방한한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조선일보DB
박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이후 카터 대통령의 행동이 달라진 데 대해서 많은 사람이 놀라워했다. 가장 중요한 안건인 주한미군 철수 계획이 결국 없던 일이 됐다. 로잘린 여사가 기자들과의 인터뷰 중에 두 정상의 의견 차이로 대화가 어려웠는데, 나와 대화한 내용을 카터 대통령에게 전달해 그 문제를 푸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도 퍼스트레이디 대행이던 박 대통령에게 “근혜가 큰일을 했다. 장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이번에 카터 전 대통령 측이 우리나라에 보낸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구명 탄원서를 놓고선 논란이 일고 있다. 적법한 우리나라 사법 절차에 따라 1·2심에서 이 전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됐는데도, 카터센터는 탄원서에서 “지난 1987년 이전 군사독재 시절에 만든 억압적인 국가보안법에 따라 선고됐다”는 점만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전 의원에 대한 유죄 선고가 마치 군사독재 하에서 탄압식 재판의 결과로 생각한 것 아니냐라는 말이 나온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