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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유전자 변형 돼지 심장, 사람 이식 첫 성공... “완전히 그의 것이 됐다”

유전자 변형 돼지 심장, 사람 이식 첫 성공... “완전히 그의 것이 됐다”

[사이언스샷] 수술 3일 경과, 심장 기능 대부분 수행

입력 2022.01.11 07:59
 
 
 
 
 
미국 메릴랜드대 의대 연구진이 환자에게 이식할 돼지 심장을 보이고 있다./UMMC

사람에게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이 처음으로 성공했다. 돼지는 사람과 장기 크기나 해부학 구조가 비슷해 면역거부반응을 극복하면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메릴랜드대 의대 연구진은 10일(현지 시각) “말기 심장병 환자인 57세 남성 데이비드 베넷에게 면역거부반응이 없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수술 3일 지나 심장 기능 정상

이식 수술은 메릴랜드대학병원에서 진행됐다. 8시간의 심장 이식 수술을 집도한 바틀리 그리피스 박사는 “심장 박동도 있고, 혈압도 정상적이며 제대로 작동한다. 완전히 그의 심장이 됐다”며 “매우 흥분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베넷은 수술을 받은 지 3일이 지나 건강상태가 양호하다”며 “이번 이식 수술은 유전자를 변형한 동물의 심장이 급성 거부 반응 없이 사람 심장처럼 기능을 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입증했다”고 밝혔다.

베넷은 여전히 심장과 폐를 우회해 산소를 공급하는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에크모)에 연결된 상태이다. 이는 심장 이식 수술에서 일반적인 일이다. 의료진은 새로 이식한 심장이 이미 대부분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화요일 에크모 장치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베넷은 치명적인 부정맥으로 병원에 입원해 6개월 이상 에크모에 의존했다. 메릴랜드대학병원을 비롯해 여러 이식센터에서 기존 방식의 심장 이식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정받았다. 인공 심장 펌프 역시 부정맥 때문에 쓸 수 없었다. 베넷은 수술 전날 “죽거나 돼지 심장을 이식받거나 둘 중 하나였고 나는 살고 싶었다”고 밝혔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에 진행하는 응급 수술로 돼지 심장 이식을 허가했다. 그리피스 박사는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걸음 가까이 간 획기적인 수술”이라며 “세계 최초로 진행된 이번 수술이 앞으로 환자들에게 중요한 새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돼지 심장을 이식받은 미국 환자 데이비드 베넷(57)괴 메릴랜드 의대 바틀리 그리피스 박사가 10일 공개한 모습. 베넷은 7일 이식 수술 후 현재 정상적인 심장 박동과 혈압을 보이고 있다고 그리피스 박사는 밝혔다./UMMC

◇이식용 장기 부족 해결할 대안

미국 정부에 따르면 현재 약 11만 명이 장기 이식을 기다리고 있으며 매년 6000명 이상이 이식 수술을 받지 못하고 사망한다.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 이식하는 이종(異種)장기이식은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지만 치명적인 급성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킬 문제가 있었다. 1980년대 캘리포니아대에서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아기에게 원숭이 심장을 이식했지만 면역거부반응으로 한 달도 안 돼 사망했다.

과학자들은 일찍부터 미니돼지를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했다. 장기 이식용 미니돼지는 다 자라도 일반 돼지의 3분의 1 크기다. 하지만 몸무게는 60㎏으로 사람과 비슷하다. 심장 크기도 사람 심장의 94% 정도이고 해부학 구조도 흡사하다. 최근 부분적으로 돼지 장기가 사람에게 이식되고 있다. 돼지 심장 판막은 사람에게 성공적으로 이식되고 있다. 당뇨병 환자는 돼지 췌장세포를 이식받았으며, 돼지 피부도 화상 환자에게 임시로 이식된다.

메릴랜드대 의대의 무하마드 모히후딘 교수는 앞서 돼지 심장을 원숭이에게 이식한 바 있다. 하지만 면역거부반응 때문에 사람에게는 적용하지 못했다. 미국의 재생의료기업인 리비비코어(Revivicor)는 메릴랜드대학병원에 급성 면역거부반응이 없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를 제공했다.

리비비코어는 돼지에 유전자 교정과 복제라는 두 가지 생명공학 기술을 적용했다. 먼저 돼지 유전자 10개를 교정했다. 면역거부반응을 유도하는 유전자 3개는 작동하지 못하게 했으며, 인체의 면역체계를 견딜 수 있도록 유전자 6개를 새로 넣었다. 또 이식한 심장이 더 자라지 못하도록 성장 유전자 1개도 기능을 차단했다. 이렇게 유전자를 교정한 돼지를 복제해 수를 늘렸다. 수술 과정에서 기존 면역억제제와 함께 키니스카 파마슈티컬이 개발한 면역억제 신약도 사용했다.

 
 
1997년 이후 줄곧 과학 분야만 취재하고, 국내 유일 과학기자 기명칼럼인 ‘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에서 자연과 역사, 문화를 과학으로 풀어내길 좋아하는 이야기꾼, 이영완 과학전문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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