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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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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명령 무시하고 병력 출동시킨 장태완∙정병주 장군 / 허화평 당시 보안사 비서실장 특별 출연 [제5공화국 역사의 증언]
[모던 경성] “기생의 가곡, 망국가요가 조선인을 망친다” [모던 경성] “기생의 가곡, 망국가요가 조선인을 망친다” [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 이광수·김억·김동환·홍사용 등 시인, 유행가 작사에 뛰어들어 조선일보 입력 2021.11.27 06:00 1932년 빅터레코드사에서 '황성옛터'를 취입해 인기 정상을 달린 이애리수. 같은해 말 춘원 이광수가 노랫말을 쓴 '쓰러진 젊은 꿈'을 불러 주목을 받았다. 황성옛터와 쓰러진 젊은 꿈은 전수린이 곡을 썼다. 이광수는 기생의 가곡을 조선인의 영혼을 해치는 악성 가요라며 증오했다. 그는 직접 노랫말을 써서 유성기 음반으로 취입하기도 했다. 1932년말 한 신문이 그해의 ‘엽기적 유행’으로 ‘유행가’를 꼽은 기획기사를 썼다. 당대 스타 이애리수가 부른 ‘쓰러진 젊은 꿈’이 소개됐다. ‘그날이 덧없다/바람 갓하라/젊..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서거에 전 국군기무사령관 허평환 장군이 올린 글 ■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서거에 전 국군기무사령관 허평환 장군이 올린 글 오늘(2021.11.23) 전두환 전 대통령님께서 서거하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두 눈가에 고였다. 곧바로 창문을 열고 북한산 보현 문수 두 산봉오리를 바라보면서 대통령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이분 만큼 자유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일반 국민을 잘살게 하도록하는 통치자의 역할을 다하고도 생전에 갖은 치욕을 당하신 대통령은 없을 것이다. 그분을 떠나 보내면서 그분의 공적과 진면목을 한 번쯤 되새겨보고 맘 편히 보내드리는 것이 이시대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사는 한 국민의 도리일 것 같아 이 글을 쓴다. 1. 국가민족을 구하라고 하늘이 내리신 분이셨다. 당신의 목표는 육군 참모총장이었다고 직접 수없이 말씀하셨는데..
간디가 손자에게 남긴 말 (★)▶ 간디가 손자에게 남긴 말 (★)▶[검] 댓글수0 메뉴 더보기 공유 신고 다음블로그 이동 간디가 손자에게 남긴 말 (★)▶[검] 윤성 2021. 10. 4. 12:22 댓글수0 간디가 손자에게 남긴 말 사회를 병들게하는 7가지 악덕 21세기 사회가 직면한 일곱가지 도전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 간디의 화장터인 라즈가트라는 곳이 있다. 그 곳 추모공원 기념석에는 간디가 말한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일곱가지 惡德 (7 Blunders of the world)이 새겨져 있다. 간디가 손자 아룬 간디에게 남긴 글이다. ? 1. Politics without Principle. (원칙 없는 정치) 철학 없는 정치다. 정치가 무엇인지도,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권력욕, 정권욕에 사로 잡혀 통치한다면 국민..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에 조문을 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에 조문을 왔다 열받는다 아마도 국짐당 국회의원(김기현원내총무로 추정)인듯 하다 공식조문이 아닌 개별조문은 당에서 문책하지 않는다고 해서 왔다고 자랑스레 너스레를 떤다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허위조작 불법사기탄핵의 원흉들인 김무성 유승민 권성동등 62적에 장악된 이준석을 비롯한 국짐당뇌부가 소속 의원들의 전두환 전직대통령 조문 조차 문책을 하는등 억압을 하는 모양이다 역시 조문계획이 없다는 문재인공산주사파집단의 묵시적 지령을 받는듯 하다 이따위 야당은 우파로 정권교체의 대안정당이 아니라 정권연장의 이적정당으로 보인다 역사적 진실이 밝혀진다면 1980년 3월 당시 김대중이 (국가내란소요사태 주모자로 기억됨) 구속되자 서울을 비롯한 전라도 광주등지에서 엄청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연장선상으로..
1980년 5월 정국을 관장한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의 인터뷰! https://m.blog.daum.net/chs625/1530573 1980년 5월 정국을 관장한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의 인터뷰! 전두환대통령 에 대해서 잘 모르는년놈들이 항상 짜맞추기씩으로 말하고 있다! 너! 너말이야! 알지도 못하는것이 요리조리 원칙도 없이 말바꾸기나 하는 년놈들! 너! 제대로 읽고 공부하자! 1980년 대학교 화장실에는 낙서들이 많았다. 용변을 해결하면서 볼펜·사인펜을 꺼내 몰래 적거나, 이미 휘갈겨놓은 낙서들을 차근차근 읽었던 것이다. 그 시절의 언로(言路)였다. 숱한 낙서들 중에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전두환’ 이름이었다. 학생들은 전두환(全斗煥)을 한자로 ‘剪頭漢(머리를 자르는 놈)’이라고 적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광주 학살 주범'이다...
** 救國의 英雄 全斗煥ㅡ ** 救國의 英雄 全斗煥ㅡ 그는 獨裁者라고 욕을 먹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치 않는다. 그는 나라를 구한 英雄이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렇다. 朴正熙 대통령이 서거하고 나라가 흔들릴 때, 그는 나라를 꽉 틀어쥐고 혼란을 막았다. 당시 그가 아니면 그런 역할을 누가 맡았겠는가?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때 金日成이 남침을 强行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 결정적인 순간이 5ᆞ18광주사태다. 독재시대가 끝났다며 소위 민주화물결이 봇물 터지듯 몰려올 때다. 金泳三ᆞ金大中 양씨는 민주화 名分의 先鋒에 서서 국민을 독려했고, 특히 김대중은 이미 다음 대통령은 자신의 것으로 기정사실화 했다. 이런 와중에서 5ᆞ18 광주사태가 일어났다. 나는 확신한다. 광주사태는 市民革命이 아니고, 북한군과 함께한 暴動이..
? 청조(부산고)구국연대에서 펌 ? 청조(부산고)구국연대에서 펌 저는 공무원 시절에 전두환을 싫어했읍니다. 정권의 정통성도 없고 공무원들에게도 너무 심한 강압적 태도로 일관하고 군 최우선 정책으로 군인들이 너무 설쳐 공무원들의 자존심을 심하게 깎아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집권 7년 동안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은 박정희 대통령 18년 정책을 찬란하게 마무리 지은 결실이었고 그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선진국 진입과 민주정치 실현이 가능하게 되었읍니다. 전두환 7년은 나라를 살리고 그 자신은 불명예 속에 생을 마감하게한 나라 행운과 개인 불행의 7년이었다고 할수 있읍니다. 그가 없었다면 박정희 혁명의 성과는 무산되었을 것이고 바보 김영삼이나 빨갱이 김대중이 집권하여 밤낮 민주주의나 친일파 타령이나 하면서 과거의 잘못이나 파헤치는데 국력을 낭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