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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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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25 戰爭 72周年이다!? ?오늘은 6.25 戰爭 72周年이다!? .?72년전 1950년 6월25일 새벽4시 북한(北韓)김일성은 38도선을 넘어 대한민국(大韓民國)을 공격(攻擊) 공산화(共産化)를 목적(目的)으로 기습적(奇襲的)으로 일요일 새벽 남한 침략(南韓 侵略)을 시도(試圖)한 6.25사변 72주년(周年)이 되는 날입니다. ???그것이 동족상잔(同族相殘) 6.25 한국전쟁(韓國戰爭)(KOREAN WAR)이다. ?우리들의 부모님(父母任)선배(先輩)형님(兄任)들은 조국 (祖國)이 위태(危殆)로울 때 자발적(自發的)으로 자원(自願)또는 학도병(學徒兵)으로 참전(參戰).젊은 나이에 목숨 바쳐 오늘날의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지켜 내셨읍니다. ??그때 만약 대한민국(大韓民國)이 6.25전쟁(戰爭)에서 패(敗)했드라면 오늘날 우리들은 북..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 - 석산 -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 - 석산 - 1973년 대한민국 재벌의 탄생… 1973년은 1차 오일 쇼크로 전 세계의 경제성장이 멈췄던 해이다. 승승장구하던 미국, 일본, 북유럽 국가들은 1973년을 기점으로 성장률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1973년을 기점으로 계열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1972년 8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사채동결조치” 때문이다. 믿기진 않겠지만 지금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기업 현대와 삼성과 LG 같은 기업도 그 당시엔 모두 사채 빚에 허덕이며 밤마다 부도를 걱정하면서 회사를 운영해야 했다. 은행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국민들은 저축을 할 여유가 없으니 은행엔 돈이 없었고, 대부분의 돈은 일제 시절부터 어둠의 방..
<우파국민의 형성과정과 태극기 시위의 역사적 의미> - 최진덕(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철학) - 단군 이래 처음으로 1948년 대한민국이란 이름의 민주공화국이 탄생했다. 이 민주공화국의 경제적 기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였고 그 정치체제는 자유민주주의였다. 대한민국은 우파 국가로 태어났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파 국가를 받쳐주는 우파 국민이 아직 없었다. 애국애족의 마음은 가득했지만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대통령 이승만 말고는 거의 없었다. 해방공간에서 좌우를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민주주의를 떠들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중)민주주의 간의 구별은 늘 모호했다. 이런 상황에 1946년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0퍼센트가 경제체제로는 사회주의가 좋다고 답했다. 사회주의에 대한 지식인층의 선호도는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건국 당시 대한..
6월 13일부터 16일까지 국회에서 개최한 사진전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이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6월 13일부터 16일까지 국회에서 개최한 사진전 이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좌파에 의해 뒤집힌 6.25전쟁의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서 전시내용 그대로 e- Book으로 만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도록 부디 널리 전파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국회의원 정경희 올림 https://online.fliphtml5.com/edtxg/xfwo/
[實錄] 朴正熙 대통령과의 마지막 5년 link http://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A&nNewsNumb=202207100014
[實錄] 朴正熙 대통령과의 마지막 5년 [實錄] 朴正熙 대통령과의 마지막 5년 10·26 아침 “李군, 어제 입었던 그 양복과 구두 가져다주게” 글 : 이광형 박정희 전 대통령 비서 ⊙ 朴 대통령, 1979년 2월 초부터 옛 문서 正書 지시, “타이핑 연습 많이 해두게”… 물러날 생각한 듯 ⊙ “오늘 같은 날 골프 나가면 좋겠다” 하다가 “골프 나가면 경호차들이 많이 움직이니 기름도 많이 들겠다. 관두자” ⊙ 초소 근무자에게 “발이 시리지 않으냐?”며 군화를 벗게 하고 양말까지 직접 확인 ⊙ 집무실 전화기가 오래되어 교체하자 “아직 쓸 수 있는데 왜 바꿨나?” ⊙ “에어컨은 外貨를 벌어들이는 곳에서 사용하는 것”… 숨이 콱콱 막힐 정도로 더운 날 땀을 훔치며 부채질 ⊙ 여름날 창문으로 파리 날아들면 직접 파리채 들고 파리 잡아 [편집자 註] ..
[더 한장] 우크라이나를 보며 6. 25를 생각한다 [더 한장] 우크라이나를 보며 6. 25를 생각한다 - 우크라이나로 보는 전쟁의 참상 조인원 기자 입력 2022.06.25 06:15 1951년 1월 4일, 1.4 후퇴 당시 남하하는 피난민들. 추운 날씨에 철길을 따라 서로 의지하며 걷고 있다/ 조선일보 자료사진 72년 전 오늘 6.25가 일어났습니다. 그날 북한 김일성 정권이 대한민국을 침공했고, 그들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전쟁 초기엔 우리 정부가 낙동강까지 밀렸지만 연합군의 도움으로 북으로 밀고 올라간 적도 있습니다. 당시 평양을 찾은 이승만 전대통령을 환영하는 평양 시민 10만명이 열렬한 환영을 하는 사진도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군대의 개입으로 다시 밀려 내려와 1951년 1월 시민들은 서울을 떠나야 했습니다. 살기..
부산의 예모습 1 [스크랩] 부산의 예모습 1 작성자도연(권우혁12회)|작성시간13.12.05|조회수697,922 목록 댓글 3 글자크기 작게가 글자크기 크게가 가야 굴다리 부산시청(1960년) 공화춘(부산 최초의 짜장면집 1955년) 광안리 해수욕장 1 광안리 해수욕장 2 구포 신병훈련소 (현 구포초등학교 6,25때) 구포다리 국제극장(59년) 좌천동 금성고등학교 주변에서 영도 방면으로... 남부민동 해양고 주변과 송도까지 남포동(1950년대) 남부민동에서 남항... 대연동(화살표가 못골 저수지) 독일 뤼브케 대통령 방한 (서면 로타리부근 1967년) 동국제강 위로 수산대학(현 부경대학)과 분개 해수욕장 동명극장 선전판 서면 동보극장(1969년) 락희 공업사 (연지동 럭키의 본산) 동광동 메리놀 병원(1954년) 문화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