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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asure I

[손재식의 사진여행] 황금빛 갈대, 석양을 품다

[손재식의 사진여행] 황금빛 갈대, 석양을 품다

초겨울 해거름이 되면 왠지 마음이 뒤숭숭하다. 배낭을 메고 카메라와 삼각대까지 집어들고도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결국 가방 속에 온갖 잡동사니를 다 넣게 되면 걸음이 경쾌할 리 없다. 종종 깨닫지만 야외촬영엔 꼭 필요한 것만 챙겨야 할 일이다.
손과 발 같은 작은 카메라가 사랑스러울 때가 있다. 맨손은 허전하고 무거운 렌즈가 달린 카메라는 부담스러운 경우다. 그럴 때 보조로 쓰이는 똑딱이 카메라가 의외로 든든한 위안이 된다.

오늘은 처음부터 작은 카메라를 피하고 DSLR 니콘을 손에 쥔다. 촬영을 위해 일찍부터 공을 들였으니 꼭 좋은 사진을 얻어가겠다는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탓이다. 욕심으로 될 일이 아니지만 서울에서 다섯 시간을 달려 순천만에 당도하는 일은 시작부터 하나의 승부가 아닐 수 없다.


▲ 빛깔 고운 진악산(732m)의 가을 풍경.용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석양 무렵의 순천만. / 연둣빛에서 녹색을 거쳐 금빛으로 바뀌어 가는 순천만의 갈대.
축제가 끝나 한산해진 863번 지방도를 타고 와온 해변을 향한다. 순천만의 낙조를 촬영하기 전에 먼저 들러보면 좋은 곳이다. 해가 지려면 한 시간도 더 남았으나 그리 넉넉하진 않다. 농주 마을 입구를 지나 작은 언덕을 넘어가니 곧 구불구불한 물길과 외로운 모습의 솔섬이 눈에 들어왔다. 와온의 빛나는 뻘을 보며 신속한 속도로 풍경 한 점을 건져 올린다.

다시 농주의 갈대밭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한다. 이십여 분 남짓한 걸음 끝에 순천만이 내려다보이는 용산 전망대로 오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웅성댄다. 야트막한 산정엔 주말을 맞아 촬영 나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목조 데크에 삼각대 받쳐 놓을 공간도 만만치 않다.

사진가들로 붐비는 용산 전망대

용산 전망대는 이미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누구나 작가가 된다는 소문으로 사진가들의 발길이 사철 끊이지 않는다. 정말 운이 좋다면 단 한 번에 찬스를 만날 수 있겠지만, 물때와 날씨를 맞추는 일에서부터 순천만 촬영은 시작된다.

우선 물이 빠지면서 에스 라인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 11월이 적기인 이유는 갈대 잎이 무성해지고 일몰의 위치가 가장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는 북적이는 인파로 호젓한 촬영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늘이 잿빛으로 변해갈 즈음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기다리던 해가 구름을 뚫고 나왔기 때문이다. 탐조선의 물결 따라 황금빛 햇살이 출렁거릴 때 눈치 빠른 사진가들이 연속으로 셔텨를 눌러대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때가 절정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 만물은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다. 아쉬움을 달래주는 오늘의 석양이 그것을 말해준다.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는 아바의 30년 전 노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그리스의 검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흐르는  I Have A Dream이 특히 인상적이다. 소피의 떨리는 목소리 Thank You For The Music도 잊을 수 없다.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엄마의 노래 댄싱 퀸과 함께 종영을 알리는 자막이 떠오르면 성급한 관람객은 이미 퇴장을 서두른다. 흥겹게 영화는 끝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듯, 소피의 마지막 노래는 바로 그 때 흘러나온다. 살짝 전율마저 느껴지는 그런 여운을 덤으로 치기는 아깝지만 그것이 바로 감독의 의도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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