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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强盛)에서 ‘강’은 핵무기와 미사일과 땅굴과 ‘주한미군 열중쉬어’이고, ‘성’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접수다. |
최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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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집권 후 줄곧 선군(先軍)정치와 강성(强盛)대국을 내세웠다. ‘선군’은 북한에서 만든 말로 ‘경제보다 군사를 앞세운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계엄사령관(국방위원장)을 정점으로 군부독재 체제의 철옹성을 구축하여 항구적으로 결사옹위하겠다는 뜻이다.
스탈린의 괴뢰정권에선 한때 소련군 대위의 과거를 너무도 잘 아는 갑산파가 경제를 우선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주장하여 북한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양봉업자가 벌집을 쑤셔 벌들이 몽땅 나와서 여왕을 가운데 에워싸고 임시로 나뭇가지에 거대한 덩어리로 뭉치기를 기다리듯이, 김일성은 악어처럼 숨도 안 쉬고 가만히 기다렸다. 일망타진을 노린 것이다. 이것을 김일성의 묵인 내지 명분의 선점으로 오해한 갑산파는 설마 만주파의 우두머리가 빨치산의 양대 동맹세력 중 한 축인 자신들을 남로당이나 소련파나 연안파처럼 감히 어떻게 하진 못하리라고 보고, 박금철과 이효순을 중심으로 경제건설의 상식을 일반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마침내 1967년 3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이 숙청의 칼집에 슬며시 손을 댔다. 박금철는 당시 당 정치위원회 상무위원 겸 비서였지만, 이효순, 김도만과 더불어 바로 반당 종파분자로 낙인찍혔다.
박금철이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당 간부에게 읽혔다는 것도 삼족(三族) 삼대(三代)가 죽을 죄에 해당했다. 박금철이 갑산에서 함께 항일운동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으나 박달처럼 앉은뱅이가 되어 해방 후 업혀서 나오지 않고 살이 피둥피둥 쪄서 나왔다고 생트집을 잡아, 그걸 일제의 앞잡이 노릇한 간접적인 증거로 내세웠다. 항일운동을 최소한 김일성의 만주파보다 월등히 많이 한(그래 봤자 김좌진 장군의 만분의 1도 안 되지만) 갑산파는 모조리 죽거나 갇히거나 탄광으로 쫓겨났다. 그로써 김일성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은 똘마니 만주파밖에 안 남았다.
중국으로 말하면, 중공 시황제 모택동이 유소기와 등소평 등 주자파(走資派)만이 아니라 평생의 동지이자 중국 공산당의 어머니 주은래마저 잠시 귀향 보내는 정도가 아니라 살인멸구(殺人滅口)하고 홍위병의 붉은 깃발 4인방만 남긴 격이다. 김일성은 정통성에 대한 열등감을 이런 식으로 해결하고 유일사상체계를 구축했다. 당연히 그는 경제보다 군사를 앞세웠다. 그것은 김씨왕조를 건설하는 주춧돌이었다. 인민이 조금이라도 배가 부르면 엉뚱한 생각을 품고 쑥덕거리고 시위하고 반란을 꾀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김일성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러자면 항상 미제국주의자들이 남조선 괴뢰를 내세워 언제 어떻게 북침할 줄 모른다며 북한 전역을 극도의 공포 분위기로 몰아가야 한다.
적화통일이 최종목표지만, 그건 굳이 달성되지 않아도 된다. 살아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하여 태양신으로 군림하고, 죽어서는 자유의지를 가진 유일한 인간만이 노동당(조직)과, 방송과 신문과 교과서(이상 사상)와, 군대와 국가보위부와 사회안전부(이상 폭력)를 한 손에 쥐도록, 자손만대에 그리하도록 만드는 것이 김일성의 최우선 과제이자 유일무이한 과제였다. 입에 겨우 풀칠하는 가난한 땅에서는 권력이 곧 총구임을 김일성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조금이라도 배가 부르면, 배은망덕한 인간은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권력을 흔들기 마련이다. 일제 말기 이상의 병영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사탄의 권력을 장악하는 데는 최고다. 외세를 빈 권력투쟁을 통해서, 역시 외세를 빈 남침을 통해서 김일성은 스탈린과 일본 천황과 일본제국주의 육군 총사령관의 권력을 동시에 쥐는 데 성공한다. 그것이 완성된 해가 바로 1969년이다.
유일체제 확립 후 유일한 불안요소는 김씨 왕가 내부에 있었다. 성주(김일성) 동생 영주 또는 외척 외에는 감히 도전할 세력이 없었다. 또 하나의 불씨는 잠재적 왕자의 난이다. 김일성은 한 다리가 천 리라고 동생 김영주 대신 맏아들 김정일에게 권력 투쟁의 왕도를 열어 주었고, 김정일은 처음에는(김영주를 몰아낼 때) 부왕의 뜻을 받들고 나중에는(왕자의 난) 부왕의 뜻을 거슬러 일찌감치 이방원의 동생 이방석에 해당하는 김평일과 이방석의 어머니 신덕왕후 강씨에 해당하는 김성애를 일개 서민으로 강등시켜 버렸다. 태조 이성계가 상왕으로 쫓겨나듯이 1992년 김정일의 50회 생일에 즈음하여 김일성은 ‘함흥’으로 쫓겨났다. 1994년 김일성이 카터를 만났을 때는 이미 김일성은 함흥차사를 화살로 쏠 정도의 권력도 없었다.
조선이나 고려는 천명을 받아 건국 초기에는 나라의 혼란을 바로잡고 백성의 배부름을 군주가 기꺼워하는 정치를, 공자와 맹자의 왕도정치를 베풀었다. 북한은 아니다. 처음부터 소련의 괴뢰정권으로부터 시작하여 고려말 원나라의 기씨황후 일족 중 한 명이 원나라 세력을 뒤에 업고 왕씨왕조를 몰아내고 기씨왕조를 세우듯이 김씨왕조를 세웠다. 고려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북한에선 그것이 현실화되었다.
김정일은 배운 것이 사탄의 권력을 거머쥐는 것밖에 없다. 그에게 경제보다 군사를 우위에 둔다는 것은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라는 것만큼이나 자명한 정책이다. 그에게 개혁개방은 불충이요, 선동이요, 거짓이요, 대역죄이다. 300만이 굶어 죽는 것은 가뭄에 저수지 물이 말라 물고기가 무더기로 죽는 것처럼 사소한 일이지만, 공룡 권력이 새털만큼일지언정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는 것은 천지가 뒤집히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다. 핵무기 1기를 개발하는 것은 원자력 발전소 20기를 건설하는 것보다 수십 배 중요한 일이다. 한국을 넘어 괌까지 날아가는 미사일 1기 개발하는 것은 이승만처럼 농지를 골고루 농민에게 나눠 주어 북한주민 전체가 거지의 손을 내밀지 않고 깡패의 주먹을 휘두르지 않고 스스로 먹게 살게 하는 것보다 수백 배 중요하다. 핵무기와 미사일만 있으면, 절대 미국이든 한국이든 선제공격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여차하면 선제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성(强盛)은 일반적으로 부강(富强)으로 표현한다. 자유민주 국가만이 아니라 봉건 국가에서도 언제나 강(强) 곧 군사력보다 부(富) 곧 경제력을 앞세웠다. 우선 국민의 배가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국가와 폭력집단의 차이다. 그런데 김정일은 부강이라고 하지 않고 강성이라고 한다.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 폭력집단임을 스스로 자랑스레 내세운 것이다.
강성대국에서 ‘강(强)’은 핵무기와 미사일과 땅굴과 주체사상 폭탄으로 거의 달성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성(盛)’이다. 2012년에 강성대국이 완성된다고 김정일은 오래 전부터 호언장담한다. 이것을 한국이나 미국이나 일본이나 좌우 막론하고 북한식 개혁개방으로 백년하청하듯 학수고대한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북한은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구걸과 위협으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아무도 확인할 수 없는 눈 먼 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 핵무기와 미사일과 땅굴로 돌아오고 절대권력의 블랙홀에 빠질 뿐이다. 2012년 이제 2년밖에 안 남았는데, 공장은 이미 노동자들이 고철로 다 뜯어 가고 해안의 철조망도 주민들이 다 끊어 가고 농장은 쟁기는커녕 호미 깊이만큼도 들어가지 않는데(땅을 깊이 파야 비옥해지는데, 이를 심경深耕이라고 함), 배급체제를 간신히 대신하던 장마당도 화폐개혁의 이름으로 단 며칠 만에 뒤엎어 버렸다.
2012년은 노무현의 전주(電柱)만한 대못이 주한미군의 모든 연병장과 병기창과 작전지휘소에 벼락 치듯 박히는 해다. ‘통일은 내 마음 먹기’란 김정일이 마음만 먹으면 세계10위 경제대국 한국은 김정일 마왕의 내탕고로 변할 수 있는 해다. 그것이 바로 강성대국 원년이다. 입법부의 강기갑과 사법부의 386 사조직과 MBC의 PD들이 잠시 환호하다가 사색이 되어 현해탄을 건너고 태평양을 건널 보트를 찾을 해이다. 절대 못 찾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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