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6년차부터 '나홀로 재판'… 형사1심 92%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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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1.23 03:05 / 수정 : 2010.01.23 07:06
말많은 판결의 진앙… 형사단독 판사 해부
막강한 권한
법원장이 사건배당권 없어 단독판사들 통제 불가능 사법파동 때마다 집단행동
최근 잇따른 여론 무시, 상식 무시 판결이 촉발한 법원 사태 와중에 형사단독 판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강기갑 의원 국회폭력 무죄(14일)→전교조 시국선언 교사 무죄(19일)→PD수첩 광우병 왜곡보도 무죄(20일)로 꼬리를 물며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판결시리즈의 진앙(震央)이 바로 단독 판사가 맡은 재판이었기 때문이다.
법원 관계자들은 "단독 판사 전체가 아니라 그중 형사단독 일부가 문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법권 독립이 훼손될 것으로 우려된다던 대법원도 형사단독을 비롯한 단독 재판부 선발제도의 보완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 문제가 사태의 또 다른 쟁점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과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무엇이 문제일까.
①'행동하는' 판사들=작년 초 촛불재판 개입 논란을 촉발한 이른바 '신영철 사태' 때, 법관 회의를 주도한 사람들은 형사단독을 비롯한 단독 판사들이었다. 이들은 전국의 법원에서 법관 회의를 개최했고, 신영철 대법관이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집단 의견들을 쏟아냈다.
법원 내 이른바 진보성향 판사들의 대부(代父)격인 박시환 대법관은 이를 "5차 사법파동이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1971년 검찰이 판사를 구속하려 하자 판사들이 들고일어난 1차 사법파동에서 시작해, 1988년 대법원장 사퇴로 이어진 3차 사법파동까지 사법파동의 역사에는 모두 형사와 민사단독 판사들의 집단행동이 등장한다.
- ▲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3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애국단체총연합회가‘사법부 개혁’,‘ 이용훈 대법원장 사퇴’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10년 전 서울중앙지법의 형사단독 판사를 했던 변호사는 "그래도 과거엔 법원장·형사수석부장이 주요사건을 배당했고, 튀는 판결을 하면 동료들 사이에서도 왕따당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사건 배당까지 컴퓨터를 활용해 무작위로 이뤄지면서, 이들은 법원 내에서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게 됐다. PD수첩 광우병 왜곡보도, 강기갑 의원 국회 폭력사건도 컴퓨터로 무작위 배당됐다.
③평균 40세, 판사경력 9년차=전국의 형사단독 판사는 297명으로, 전체 법관 2293명 가운데 12.8%를 차지한다.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판사경력 6년차부터 형사단독 판사를 맡을 수 있다.
본지가 서울시내 5개 지방법원(61명)과 부산·대구·광주·대전·전주지법 등 지방주요 5개 지법(47명)의 형사단독 판사 108명을 분석한 결과, 평균연령은 40세였고 판사경력은 9.5년이었다. 서울지역 판사들의 경력이 10년으로 지방(8.8년)보다 길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학번인 이들 대부분은 대학 재학시절 군사정권에서 이른바 문민정권으로의 권력교체를 겪었고, 사법시험 합격을 전후해서 IMF사태(1997년)를 겪었다. 사회학자들은 이들의 동년배들이 IMF사태로 인한 취업난을 겪으며, 때론 386세대보다 더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한다.
④공권력에는 엄격, 개인의 자유 폭넓게 해석=일부 형사단독 판사들은 이른바 '공권력'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폭넓게 해석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서울남부지법의 형사단독 판사들이 불법시위 현장에서 커터칼을 이용해 경찰의 채증카메라를 빼앗은 민노총 간부의 구속영장을 연거푸 기각한 것이나, 검문 경찰을 차로 밀어 넘어뜨린 민노총 조합원 영장을 기각한 것 등이 사례다.
전주지법 김균태 판사가 시국선언을 한 전교조 조합원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방의 한 단독판사는 작년 한 해 동안 소속 법원 전체 형사단독 재판부에서 내린 154건의 무죄판결 가운데 76건을 혼자 쓰기도 했다.
☞ 형사단독 판사
형사단독 판사들은 과거 ‘서울시장 안 부럽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사람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형사재판을, ‘단독’으로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심을 맡는 지방법원의 형사재판부는 합의부(3명)와 단독부로 나뉜다. 합의부가 맡는 재판은 살인·뇌물죄처럼 법정형이 ‘~이상’으로 돼 있는 죄명으로 기소된 사건들에 해당한다.
형사단독 판사는 상대적으로 처벌수위가 약한, 법정형이 ‘~이하’로 된 사건을 맡는다. PD수첩 사건처럼 명예훼손 고소사건을 비롯해 단순 공무집행방해, 단순 폭력과 절도, 교통사고 사건 등이 이런 범주에 포함된다. 검찰이 약식기소(벌금형 기소)한 사건과 경찰이 즉결심판에 넘기는 사건도 형사단독 판사가 심리한다.
과거엔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중요 사건’은 단독 판사 3명이 재정합의부를 구성해 심리하기도 했지만, 최근 이 제도는 유명무실해졌다. 2008년에는 피고인 24만8907명이 형사단독 판사에게 1심 선고를 받았다. 전체 형사재판 피고인의 92.6%를 차지했고, 합의부에서 선고한 피고인(1만9665명)의 12배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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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일 오후 바르게살기운동중앙회와 자유총연맹 등 시민단체 30여 곳으로 구성된 애국단체총연합회 회원 1,200여 명이 집회를 열어광우병을 보도한 PD수첩 제작진에 무죄판결을 한 사법권을 규탄하고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재호 기자 superj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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